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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때 등장하는 싱크탱크, 싱크는 없고 탱크만 있다


입력 2016.10.11 09:22 수정 2016.10.11 09:37        이슬기 기자

개인의 정치적 흥망성쇠 따라 피고 지고...

"특정 인물 위해 일하는 사조직에 불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대선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 창립 준비 심포지엄에서 조윤제 연구소장과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가 지난해 10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책네트워크 내일이 주최해 열린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혁신, 어떻게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싱크탱크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년 대선이 14개월여 앞으로 다가오자, 정가에선 여야 대권 주자들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구성된 각종 싱크탱크가 속속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 국정을 운영할 'think'의 위력을 선보이겠다는 것이 본 취지다. 다만 여의도엔 'tank' 소리만 요란하다.

야권의 간판급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정책공간 국민성장(가칭)’ 싱크탱크 창립 준비 심포지엄을 마쳤다. 10월 초 현재 500여명의 교수들이 1차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연내 1000명 단위로 몸집을 불려 출범식을 선보일 계획이다. 단연 이날 행사엔 주류 경제학자들과 측근 및 지지자 700여명이 참석, 미니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문 전 대표가 싱크탱크 경쟁에 대형 신호탄을 쏘아 올리자, 야권의 다른 주자들도 바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이다. 지난 8월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일찍이 가동을 준비해온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의 경우, 4.13 총선 이래 학계 전문가들을 모아 세미나를 여는 한편 대선 캠프와도 연계해 아젠다를 생산해 낼 예정이다.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동아시아미래재단’을 재가동, 오는 11월경 재단 10주년 행사를 대규모로 치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달 말부터 지역 강연과 해외 출장으로 대권행보를 본격화 시작하되 다음 달께 출범 예정인 싱크탱크 '희망새물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조직 확장에 나선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008년 본인이 직접 세운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를 토대로 도정 관련 입법제안과 토론회를 활발히 진행 중이며, 김부겸 더민주 의원도 다음 달 교수 그룹을 기반으로 꾸린 정책자문단 형식의 싱크탱크 출범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적·초당파 전문가 그룹...입각도 보편화

미국 워싱턴 D.C 방문자들에겐 ‘싱크탱크 거리’가 필수 코스로 손꼽힌다. 백악관 인근 매사추세츠 거리에 위치한 브루킹스 연구소·헤리티지 재단·카토연구소 등 대형 정책연구기관들을 비롯해 ‘K스트리트’에 둥지를 튼 소규모의 독립 싱크탱크 300여 개가 몰려 있다. 정부나 의회와 연결된 싱크탱크 수십 개도 이곳에 사무소를 뒀다.

유명 싱크탱크들이 오바마나 조지 부시 등의 정부 정책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막후 그룹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을 위한 선거 집단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브루킹스 연구소나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받지 않으며 어떠한 정당과도 연계성이 없다. 자선기금 및 후원금이 주요 자금원이다. 따라서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얽매일 이유도 없다.

이들이 내놓는 단행본·보고서·브리핑 등도 대부분 공개돼있다. 구체적으로 무슨 작업을 하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가시적인 성과로 드러난다는 의미다. 결정적으로 탄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학자 또는 전직 정책 결정자들이 조직의 다수를 이루고 있어, 정부가 바뀌면 이들도 백악관 또는 정부 부처로 자리를 옮기는 입각이 보편적이다. 이렇게 빈 싱크탱크 자리는 이전 정부의 고위 관리들로 채워진다. 집권당이 어느 당이냐에 따라 싱크탱크의 성향도 유동적인 이유다.

미국뿐이 아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해마다 한 번씩 ‘독일 혁신 방안’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발표회를 연다. 이 자리에는 현직 총리가 직접 참석해 연구소장의 발표를 듣는다. 보고서 제출 역시 비서진이 아닌 총리가 직접 나와 소장으로부터 건네받고, ‘인증샷’도 찍는다. 싱크탱크가 국가 정책 결정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총리가 직접 입증하는 셈이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보수성향의 헤리티지재단과 함께 미국 내 쌍벽을 이루는 진보성향의 단체다. 브루킹스 연구소 홈페이지 화면 캡처

특정인 정치적 흥망성쇠와 궤 같이 하는 사조직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싱크탱크라는 용어가 가장 자주 등장하면서도 그 개념을 가장 모호하게 만드는 곳이 정치권이다. 특정 인물의 지지자 중 교수나 인지도 높은 전문가들이 모임의 얼굴로 나서고, 후보의 선거용 공약을 생산해 관련 포럼을 개최하거나 보고서를 낸다. 설립자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면 얼마 동안 선거와 무관한 연구를 이어가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차기 선거철이 다가오면 새로운 간판을 걸거나 조직을 정비해 선거용으로 재가동된다.

지난 2012년 출범한 문 전 대표의 싱크탱크 ‘담쟁이 포럼’은 대선 6개월 전에 만들어졌다. 문 전 대표 본인은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만, 최측근 등 지지자 260명이 문 전 대표의 당선을 돕겠다며 모였다. 그러나 개설 직후엔 성격도, 활동도, 구성도 모호한 채로 부유하다가 결국 대선 캠프에 흡수됐다. 문 전 대표 측에서 이번에 출범하는 국민성장과 관련, 과거의 문제점을 보완해 본래 싱크탱크 취지에 더 가까워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선거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는 “출범 시기도 비전 제시도 너무 늦었다”며 “정책 생산 능력이 부족하고 인지도만 있다보니 성격도 애매모호해서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지난 6일 심포지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싱크탱크는 제가 만든 게 아니고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라며 “그야말로 비전과 정책을 만드는 연구소이기 때문에 ‘정책 공간’이라 표현했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안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지난 2013년 6월에 설립됐다. 정책대안을 낸다는 취지였지만, 언론에선 사실상 안 전 대표의 행보를 유추하는 사조직 정도의 의미로 통용됐다. 실제 안 전 대표가 새정치추진위원회를 꾸려 신당 창당을 추진하던 당시 싱크탱크와 공개 확대회의를 열만큼 정치적 상징성을 지녔다. 이후 새정치연합, 민주당과 합당 과정 등을 거치며 운영진이 물러나고 관심도 하락, 최근 조직 개편 전까지 휴식기를 보냈다.

싱크탱크가 후보 개인에 집중되다보니 구체적인 정책보단 ‘누가 참여하느냐’에만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 역시 참여 인사와 후보 간 개인적 인연 등 인물 면면에 집중된다. 어느 후보가 짧은 시간 내 대규모 인원을 동원했느냐를 판단하는 ‘세(勢) 과시용’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정당이 운영하는 싱크탱크도 있다. 새누리당 산하 여의도 연구소, 더민주 산하 민주정책연구원이 대표적인 예다. 개인이 설립한 것에 비해 지속성은 있지만, 정권 창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당으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공공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 실제 정당법상 정당 국고보조금의 30%는 의무적으로 정책 연구에 사용해야한다. 다만 실상은 타 부서의 인건비를 메우는 등 연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데 쓰이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재정적 독립 시급...특정 계층 중심의 폐쇄성도 허물어야

결국 ‘think tank'의 본 취지를 회복하기 위해선 △싱크탱크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우선돼야 하며 △우리사회의 ‘교수 중심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재정적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물론 정치권이 싱크탱크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우리 사회에 일상적으로 생기는 특정 대선주자의 정책 자문그룹은 사실 ‘싱크탱크’라고 볼 수 없다”며 “싱크탱크라면 적어도 개인과 무관하게 일상적으로 존립하며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더미래연구소는 2014년 새정치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초·재선의원 22명이 자발적으로 재정을 갹출, 진보정권의 집권전략과 정책비전 제시를 목표로 지난해 3월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후 진보진영의 핵심 싱크탱크로 급부상한 미국진보센터의 경우, 오바마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오바마라는 개인의 재선 또는 퇴임 여부와 무관하게 진보진영의 두뇌집단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설립 역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이미 연구 단체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즉 특정인의 정치적 흥망성쇠와 궤를 같이 하지 않는다.

김 소장은 “각각의 싱크탱크들이 이념적·정책적 성향을 가질 순 있지만, 특정 후보의 정치적 흥망성쇠에 따라 좌우되는 것은 싱크탱크가 아니다”라며 “우리나라에서 국고 지원을 받는 정당 산하 연구원은 사실 싱크탱크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있고, 민간기업 관련 싱크탱크는 너무 편향된 데다 정치적 논란도 있어서 지금은 기업 내부 조직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또 “싱크탱크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축소시켜버린 셈”이라고도 했다.

특히 민간에서 운영하는 독립 연구소들은 재정 문제에 부딪쳐 싱크탱크가 아닌 ‘싱크 네트워크’ 형식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 활동에 따른 대가를 받고 생활을 영위하는 전업연구원보다는 현직 대학 교수들의 네트워크 조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전문성이나 정책 생산 능력보다 ‘교수 타이틀’ 자체에만 혈안이 된 학계의 폐쇄성을 극복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아울러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른 재정 후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김 소장은 “미국진보센터는 놀랍게도 ‘자본의 첨단’인 헤지펀드계 거물이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시작됐다”며 “우리도 그만큼 사회 저변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지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장벽이 낮아져야 싱크탱크의 자원도 풍부해진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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