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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연기 그만둘까 고민, 전환점 맞고 극복"


입력 2016.12.05 09:05 수정 2016.12.09 08:34        부수정 기자

발전소 직원 재혁 역 맡아 극 이끌어

"절망적인 현실과 맞닿은 작품"

배우 김남길은 영화 '판도라'에 대해 "절망적인 현실을 담은 영화"라고 강조했다.ⓒ뉴

영화 '판도라'서 재혁 역 맡아
"절망적인 현실과 맞닿은 작품"


배우 김남길(35)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다. 드라마 '나쁜 남자'(2010), '상어'(2013) 때문일까. 김남길은 다가가기 힘든 '센 남자' 캐릭터다.

그런 그가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에서 딱딱한 옷을 벗었다.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인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작 기간만 총 4년인 이 영화는 민감한 소재와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안일한 모습을 담은 탓에 외압 의혹에 시달렸다.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판도라'는 원전 폭발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한반도를 스크린에 담아내 호평을 얻었다. 원전 문제를 끄집어 낸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영화라는 평이다. 김남길은 극 중 발전소 직원 재혁 역을 맡았다.

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김남길은 영화 속 재혁과는 다르게 살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 전날 VIP 시사회를 마친 그는 "몸이 아파서 일주일 입원했더니 살이 빠졌다"고 했다.

경상도 사나이인 재혁은 전형적인 츤데레다. 겉으론 툴툴대지만 살뜰히 챙겨준다. 김남길은 캐릭터를 표현하려고 일부러 살을 찌웠다. 특유의 '차도남' 이미지를 벗고 싶었단다.

"데뷔 초에는 양조위, 장첸 등을 롤모델로 삼았어요. 아픔이 있는 남자 캐릭터를 닮고 싶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혔더라고요. '판도라'에서는 철없는 막내아들을 연기했는데 관객들이 절 보고 어색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수더분하게 보이려고 체중도 늘리고, 평상시 입고 다니던 제 옷을 입었어요. 잘 씻지도 않았고요(웃음)."

배우 김남길은 "영화 '판도라'를 통해 센 이미지를 벗고 싶었다"고 전했다.ⓒ뉴

'판도라'는 기획부터 배우 캐스팅, 투자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김남길은 "이야기가 재밌었고, 욕심나는 장면이 있어 출연을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감독님께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주문하셨어요. 부담감은 없었지만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까 걱정하긴 했죠. 여러 주변 상황 말고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잘할 수 있는 걸 영화를 토해 보여주는 건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김남길을 끌어당긴 장면이 궁금해졌다. 재혁이 대통령 담화문을 듣고 "사고는 느그들이 치고, 수습은 국민들이 하라고?"라고 외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단다.

극 초반 영화에는 대통령 순방 모습이 나온다. 이때 재혁은 투덜거리며 "잘사는 사람만 잘살고, 못사는 사람만 못사는 게 무슨 정책이냐"고 대통령은 비판하는데 이 부분이 편집됐다. 재혁은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큰 캐릭터라고 배우는 설명했다.

그리고 또 있다. 재혁과 동료들이 원전 안으로 뛰어들어갈 때 원래는 대통령이 헬기 타고 와서 재혁과 악수하는 장면이 있었다. 재혁은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냐. 쇼하는 거 아니냐. 이게 무슨 나랍니까"라고 울분을 토한다. 박 감독은 이 장면이 너무 '짠하다'는 이유로 영화에 넣지 않았다.

마지막 재혁이 처절한 상황을 맞는 장면은 눈시울을 자극한다. 인간 본연의 고독과 외로움이 오롯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스스로 무너졌어요. 재혁이도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데 막다른 상황에 다다른 거죠. 어린아이 같이 무서워하면서 엄마를 부른 장면이 참 와 닿았어요. 성인 남자가 갖는 공포를 표현했습니다."

배우 김남길은 "많은 관객이 영화 '판도라'를 봤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뉴

김남길은 영화에서 추리닝(트레이닝복)을 자주 입는다. 실제로 김남길은 '추리닝 마니아'다. 추리닝 중심으로 쇼핑하고, 무릎 부분이 '툭' 튀어나오지 않게 매끈한 추리닝 패션을 선보이는 팁도 안다. 추리닝 예찬이 이어졌다. "편한 걸 좋아해서 추리닝을 자주 입어요. 추리닝을 멋있게 입는 게 정말 힘들어요. 브랜드마다 특색도 있고요. 편한 추리닝 입는 게 제 모습인데 그런 부분을 '판도라'를 토해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영화가 보여준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 아수라장이 된 대한민국은 공포로 다가온다. 이는 어느 정도 순화해서 표현한 거다. 김남길은 "감독님이 워낙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재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며 "난 한국적인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집중했다"고 말했다. "동료애, 가족애를 포괄한 인간애에 중점을 뒀어요. 할리우드 영화 '아마겟돈'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영웅은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우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죠. 극한 상황에 있으면 무서울 수밖에 없는 심리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김남길은 시사회 당시 "내 사투리 연기를 보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의 친구들은 김남길을 혼냈다. 사투리를 언급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사투리에만 신경 쓸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경상도 사투리가 캐릭터 한 축을 담당하잖아요. 사투리 선생님이랑 함께 연습하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야기 전달에 더 신경 쓰면서 연기했는데 후시 녹음을 할 때 사투리가 어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완벽하게 구사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재혁이가 투덜거리는 모습에 신경 썼죠."

재난 영화의 현장 분위기를 물었더니 "그야말로 재난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분위기 좋았다는 말, 그거 다 거짓말입니다. 긴박하게 상황을 표현하다 보니깐 어쩔 수 없었어요. 재난 상황과 캐릭터의 감성을 동시에 안고 가야 해서 힘들었습니다. 고성이 난무했고요. 하하. 그래도 서로 돈독해졌답니다. 서운한 점은 술 한잔 하면서 잊었어요."

배우 김남길은 "'판도라' 속 재혁을 통해 성인 남자가 느끼는 공포를 표현했다"고 밝혔다.ⓒ뉴

작업복을 입고 벗는 것도 일이었다. 답답하고 습해서 폐쇄공포증을 느낄 정도였다. 김남길은 "신체 한 부분이 터져나갈 것 같았고, 미칠 듯한 기분이 들었다"며 "옷 때문에 너무 불편했는데 선배들은 힘든 내색을 안 하시는 걸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앞서 박 감독은 '판도라'에 대해 '탈핵'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김남길은 "인재에 대한 이야기"라며 "영화를 찍으면서 원전의 위험을 느꼈고, 대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체 에너지에 대한 개발이 안 된 상황에서 '탈핵'에 대한 찬반을 확실하게 나누긴 어려울 듯하다"고 강조했다.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 데뷔한 김남길은 '굳세어라 금순아'(2005), '미인도'(2008), '선덕여왕'(2009), '나쁜 남자'(2010), '상어'(2013),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무뢰한'(2014) 등에 출연했다. '상어'와 '해적'을 찍은 후 정체기가 왔다. '연기가 나한테 안 맞는 건데 내가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건가?', '이제 그만 둬야 하나?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인데'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유의 강하고 센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무뢰한'을 찍을 때 힘을 빼고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힘이 들어간 부분이 보이더라고요. 연기 전환점을 맞은 순간이었죠. 다른 모습을 찾아야겠다고 하던 찰나 '판도라'를 만났는데 장르가 이래서...하하. 계속 소리를 지르는 연기라 어려웠어요. 근데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잘하셔서 감탄했죠."

'판도라'는 제작비 150억이 든 대작이다. 흥행 부담이 있을 법한데 이 배우는 "모든 걸 내려놨다"고 했다. "잘 안되면 투자자분들의 타격이 크긴 큰데 영화 한 편이 잘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계에서 '천만 영화', '대작 영화'에만 집중하다 보니깐 소재의 다양성도 없어지고 작은 영화는 제작도 안 되더라고요. 근데 전 흥행을 미리 생각해서 출연을 결정하지 않아요. 그랬더니 제 지인분들이 그러셨어요. 넌 '하고 싶은 작품과 해야 할 작품을 구분해야 한다'고. 그래서 '해야 할 작품이란 게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배우 김남길이 주연한 영화 '판도라'는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다.ⓒ뉴

그러면서 확고한 연기관을 밝혔다. "훌륭한 배우는 한, 두 작품으로 완성되지 않아요. 천만 영화 한 편 했다고 해서 좋은 배우가 되는 건 아니랍니다. 예전에는 개봉 전 분위기가 좋으면 뛰어다녔을 텐데 이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영화는 혼란스러운 현 시국과 맞물려 개봉한다. 득일까 실일까. "시국과 상관없이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해요. 절망적인 현실을 담은 영화라 보고 나면 얘기할 거리가 많을 겁니다."

드라마 출연 계획은 없느냐고 했더니 "섭외가 안 들어온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이제 '아재' 나이입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스타성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전 이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드라마는 좀 힘들 것 같아요. 하하."

김남길은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의 대표이기도 하다. 2012년 소셜 브랜드로 시작해 2013년 홈페이지를 열었고, 지난해 2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했다. 길스토리는 문화예술 소셜 브랜드이자 글로벌 문화예술 소셜 플랫폼이다. 예술을 통한 사회적 공유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을 도모한다.

김남길은 사비를 들여 단체를 운영한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쑥스러워한 그는 "이벤트로 보일까 봐 알리지 않으려 한다"며 "작은 일을 통해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다"고 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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