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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죽을 대체할게 없을까?…'국내 최초 라면' 삼양라면


입력 2017.02.19 06:00 수정 2017.02.19 07:06        박지수 기자

[브랜드 100세 시대⑮] 삼양식품, 삼양라면

일본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지난해 리뉴얼된 삼양라면 포장지.ⓒ삼양식품

라면은 국내 식품산업에 큰 획을 그린 제품이다. 대한민국 첫 인스턴트 라면의 발자취는 196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 전중윤 삼양식품 창업자(명예회장)는 남대문시장에서 미군부대가 먹고 버린 잔반을 끓여 만든 '꿀꿀이 죽'으로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노동자들을 보게 됐다. 식량난 해결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50년대 말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받을 때 맛보았던 라면을 떠올렸다. 국내에 도입하면 식량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

전 명예회장은 국내에 라면을 선보이기 위해 일본 묘조(明星)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했고, 마침내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일본에서 생산하는 라면의 중량은 85g이었다. 삼양식품은 국민의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삼양라면을 100g으로 선보였다. 가격도 꿀꿀이죽이 5원임을 감안해 최대한으로 낮춘 10원으로 정했다.

전 명예회장은 라면을 선보이며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명감과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오랜 기간 쌀 중심이었던 식생활이 하루아침에 밀가루 식품으로 바뀌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삼양식품 전 직원과 가족들은 직접 극장이나 공원 등에서 무료시식 행사를 열고, 가두판매를 통해 라면 홍보에 나섰다.

소비자들은 삼양라면을 통해 입맛이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1965년 정부가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을 펼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1960년대 삼양식품 매출은 해마다 최저 36%에서 최고 254%까지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했다.

삼양라면 포장지 변천사.ⓒ삼양식품

긴 역사만큼 포장지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당시 소나 돼지 육수 맛을 낼만한 원료 조달이 어려웠고, 생산원가를 고려해 닭고기 육수를 기반으로 삼양라면을 만들었다. 원조 삼양라면 포장지에 닭 이미지를 쓴 이유다. 1964년부터 닭 이미지를 원 모양으로 바꿨다.

삼양라면에 현재와 같은 포장이 나온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주황색 바탕에 빨강 원, 한결 다듬어진 삼양라면 서체가 나왔다. 이후 여러 번 포장이 바뀌었으나 기술 발전에 따른 맛의 변화를 표기하는 정도였다.

삼양식품은 1994년 삼양라면 맛을 강화해 재출시하면서 세로 포장을 가로로 바꾸고, 원 안에 요리한 라면 사진을 넣었다. 굴림을 준 부드러운 서체 디자인과 테두리에 두른 금테를 통해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도 눈에 띈다. 삼양식품은 지난 2013년엔 삼양라면 출시 50돌을 기념해 한정판 패키지 4종을 선보였다. 고객의 사연으로 패키지 전면을 디자인해 3개월간 한정 판매했다.

지난해 3월에는 삼양식품은 햄 후레이크를 추가해 달라는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햄 맛 후레이크를 더하고 햄 맛을 강화했다. 또 햄 맛을 강조한 조리 이미지를 넣어 '친구라면, 삼양라면'에서 '라면이 생각날 때, 삼양라면'으로 슬로건을 바꾸었다.

삼양라면의 장수비결에 대해 삼양식품은 "1963년부터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소비자의 입맛이 변해가는 것과 함께 삼양라면의 맛도 조금씩 변해왔다"고 귀띔했다.

박지수 기자 (pjs06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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