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辛成大) 전통무예연구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대한십팔기협회부회장,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우리나라 전통무예 붐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십팔기와 양생기공을 지도 보급중. 저
모든 문화에는 각각의 특정한 생장 토양이 있게 마련이며, 나름대로 다른 민족들과는 차이가 나는 내재적인 특징과 정신적인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먼저 ´문화(文化)´라는 개념부터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대상이 분명하고 성질이 명료하며 범위가 확정되어야만 과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화´라고 할 때 우선 그 범위가 너무 광대하다.
´문화´라는 낱말은 고대 중국의 ´문으로써 교화한다(以文敎化)´에서 시작되는데, 이는 곧 ´무력(武力)에 의한 정복´에 대응하는 말이었다. 이른바 ´문치무공(文治武功)´을 말한다. 《주역》에는 ´인문(人文)을 관찰하면 천하를 개선시킬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옛사람들은 대개 이 시각에서 문화를 이야기하였다.
오늘날 사용되는 ´문화´라는 낱말은 라틴어 ´culture´에서 나온 말로서, 19세기말 일본어 번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자의 근원으로 볼 때 ´culture´에는 ´농사를 짓다´´거주하다´´연습하다´조심하다´´귀신을 받들다´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문화란 하나의 복잡한 총체로서 지식, 예술, 신앙, 언어´ 전통´ 도덕´ 법률´ 풍속´ 제도 등의 인류가 사회에서 얻은 모든 능력과 습관, 그리고 그 사회 현상을 말한다.
´전통 문화´란 기나긴 역사를 통해 자기 민족의 토양 속에 뿌리내려 안정화된 문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융합되어 있으며, 각 시대의 새로운 사상, 새로운 피가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그저 소중한 것, 혹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지난 시대의 유산 또는 유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옛것을 본떠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옛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으로 부단히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무형문화재 보호법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인간문화재´라 칭하기도 하는데, 일본의 제도를 본받아서 사라져 가는, 그래서 보호해야만 할 전통 문화를 살리기 위하여 만든 법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1호는 ´숭례문´이며, 무형문화재 제1호는 ´종묘제례악´이다. 그런데 이 숭례문이 저 혼자 나라를 지켜서 그 공으로 국보가 되었는가? 과거 조선의 왕도(王都)를 상징하는 문이라서인가?
그렇다면 실제 이 나라를 지키던 나라의 무예, 즉 조선의 국기(國技)인 ´십팔기(十八技)´가 무형문화재 제1호가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지키는 데에는 견고한 성곽과 성문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먼저 힘센 군대가 있어야 하고, 당연히 그 군사를 훈련시키는 무예가 있었을 것이 아닌가?
국보 제1호라는 허울 좋은 명패 하나 때문에 사지가 다 잘려나간 몸뚱이만 남아 자동차 물결에 포위되어 옴짝달싹 못하고 매연에 찌들어 있는 모습이나, 삼천리 강산 조선 천하의 군대를 호령하고 단련시키며 외적을 물리치던 우리의 전통 무예 ´십팔기´가 대한민국 땅 어느 한 곳에도 둥지를 틀지 못해 저잣거리를 해매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인식과 문화 정책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막칼 들고 춤추는 팔도의 굿들은 모조리 지정하여 보호하면서, 정작 나라에서 만든 나라의 무예, 국기(國技)는 저잣거리 건달들의 주먹다짐만도 못한 불유쾌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예 무예(武藝)는 문화(文化)에 속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문화를 해치는 무화(武禍), 즉 반문화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희한한 문무(文武) 대비의 발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십팔기 중 창과 검의 교전. 국립민속박물관
무형 문화란 그저 공예, 놀이, 무속´ 소리´ 춤 등 다분히 민속적인 것들만을 규정하려는 습관이 있다. 단순하고, 조잡하고, 궁상맞은 것들을 소박하고, 옛스럽고, 자연스럽다 하여 한국적인 것으로 선호하는 반면, 화려하고 엄격한 것을 배척하려는 심미관이 자리하고 있다. 실은 현재 우리가 ´예술(藝術)´ 혹은 ´예능(藝能)´이라 칭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불과 1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예(藝)´의 범주에 들지 못했었다. 잡기(雜技) 또는 잡희(雜戱)로 불리던 것들이다.
오직 ´무예(武藝)´와 ´서예(書藝)´만이 있었을 뿐이다. 《무예도보통지》 서문에 ´예술의 묘용을 살려 한 권의 책을 펴냈으니, 그 책 이름을 무예도보통지라 한다´고 하였지만, 이 땅의 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무예를 예(藝)의 범주에 넣어 주지 않는다.
검도(劍道)는 굳이 지정하지 않아도(애초에 사라질 염려가 없었으니까) 일본의 국기로서 일본 정신의 지킴이가 되어 있고, 심지어 식민 지배를 한 한국에서도 그 뿌리가 굳건히 내려 있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가 검도와 유도, 그리고 가라테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한번 둘러보라. 한민족이 그만큼 외래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큰가? 부끄러운 식민시대의 유산에 다름 아니다. 중국은 한때 서양의 근대 문명 조류에 밀려 무술을 등한시했으나, 1927년 중앙국술관을 설립하면서 ´문화(文化)는 국학(國學)이며, 무화(武化)는 국술(國術)´이라고 하여 정부의 주도 아래 지속적으로 국술(國術)을 보급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과거 일본군 정신과 미국식 제도로 만들어진 오늘의 대한민국 국군 역시 진정 그 정통성을 제대로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십팔기´를 언제까지 모른 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