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보신뢰·참여공정 무너지면 ‘괴물’
“드루킹 댓글조작 수사신뢰 상실, 특검 뿐
文정부 시간벌며 핵협상만 믿을 상황 아냐”
[칼럼] 정보신뢰·참여공정 무너지면 ‘괴물’
“드루킹 댓글조작 수사신뢰 상실, 특검 뿐
文정부 시간벌며 핵협상만 믿을 상황 아냐”
일찍이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이라는 개념으로 ‘미래사회’의 특징을 설명했던 프랑스의 지성인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특히 ‘IT 기술’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이것이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가지 단서를 달긴 했지만 한국이 ‘미래에 중심적인 국가’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명성을 빌리는 것이 아니다. 아탈리가 20년 전에 언급했던 그 ‘디지털 노마드’는 이미 한국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서 우리의 생활세계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은 그 사이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이 되었다. 미래에 중심적인 국가, 단지 꿈만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시대는 벌써 ‘블록체인 기술’을 언급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 한국의 미래 성장동력이 무엇인지를 거듭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근대 민주주의 발전에서 뒤처졌다. 정당과 의회 발전은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까지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러나 그 짧은 역사에도 불과 70여년 만에 아시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적 발전을 이뤘다는 점은 경이로운 일이다. 어디 정치 뿐인가. 경제와 교육, 문화 등 각 부문의 발전상도 참으로 눈부시다. 이제 한국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디지털 민주주의(Digitalcracy)’를 주도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추고 있다. 비록 근대 민주주의는 늦었지만 디지털 민주주의만큼은 세계적인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생명은 정보의 신뢰성과 참여의 공정성에 달려 있다. 정보의 신뢰성이 무너지고 참여 메카니즘이 불공정하다면 디지털 민주주의는 오히려 위험한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모바일과 빅데이터는 그 괴물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드루킹 일당이 ‘매크로’라는 불법적 기계까지 동원해서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김경수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댓글 조작에 깜짝 놀랐던 국민들은 이제 문재인 정부의 여권도 이런 수준이냐며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인들의 댓글조작을 국정원의 그것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조작에 분노하며 촛불을 들던 바로 그 시간에 민주당원들도 조직적으로 댓글작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에서 드러난 사실은 아직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물론 김경수 의원이 어디까지 개입됐는지, 지난 대선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관건이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도 궁금한 대목이다. 하지만 김경수 의원의 해명을 보면 잘 납득이 되질 않는다. 일방적으로 연락이 왔다고 하더니 실은 자주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텔레그램 외에도 다른 메신저로 연락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셈이다. 게다가 김경수 의원의 보좌관이 돈을 받았고 최근에야 돌려줬다는 얘기는 기본적인 신뢰감마저 무너지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어떤 관계이기에 보좌관이 돈까지 주고받았다는 것인가. 자고나면 새로운 사실이 나오고 있으니 경찰의 수사를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경찰의 태도를 보면 정말 수사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궁금할 따름이다. 여당과 관련된 사건이고 심지어 김경수 의원과 과거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내는 지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동안 시간을 질질 끌다가 여론에 밀려 압수수색에 나서더니 압수한 휴대폰들마저 처음엔 대부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사의 기본인 그 일당들의 계좌추적마저도 뒤늦게 나선 형국이다.
경찰 수사는 이미 신뢰성을 잃어버렸다. 이를 지휘하는 검찰도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은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특히 여권과 연루돼 있으니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으로 가는 것이 옳다. 과거 야당 때 민주당 주장도 같은 차원이었다. 마침 김경수 의원이 특검을 받겠다고 했으며 청와대도 여야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청이 서로 손발을 맞춘 듯 민주당이 태클을 걸며 사실상 여야 협상을 방해하는 일만은 없기를 바랄뿐이다.
디지털 민주주의에 관한 담론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사실 노무현 정부 때였다. 당시 노 대통령이 워낙 디지털 마인드가 강하기도 했지만 특히 전자정부에 대한 성과는 그 의지의 산물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디지털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뒤를 잇는 문재인 정부는 그들에 의해 디지털 민주주의의 기본이 무너지는 범죄 앞에 서있다. 전통적인 민주주의 원칙마저 파괴시킨 셈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드루킹 일당의 범죄 행위를 ‘양념’에 불과한 ‘장난’으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특검을 해서라도 진실을 밝히고 ‘노무현 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할 것인가. 지금 시간을 벌면서 ‘판문점’만 믿을 상황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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