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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크러시, 2030 평범함 속 여유에 빠지다


입력 2018.05.14 05:34 수정 2018.05.14 06:03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닭치고tv>"아무나 돼" 열풍 확인 계기…사회의 역동성과 진취성은?

이효리가 슈와 함께 출연한 JTBC 예능 프로그램 '한끼줍쇼' 화면 캡처.

노멀크러시는 ‘Normal’(보통의)과 ‘Crush’(반하다)의 합성어로 출세하거나 화려한 삶에 집착하지 않고 평범한 삶 속에서 소소한 만족을 누리면서 살겠다는 뜻이다. 옛날로 치면 안빈낙도, 안분지족, 요즘으로 치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통하는 말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지난해 5월에 수도권 거주 20대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7%가 ‘인생역전 성공스토리보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담은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런 맥락에서 tvN '윤식당‘, JTBC '효리네 민박’, MBC '나혼자 산다‘처럼 소소한 일상을 그린 프로그램들이 뜬 것이다.

옷도 놈코어(Normal+Hardcore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라고 해서, 특별하고 화려한 것보다 일상적인 멋을 추구한다. 홍대앞, 가로수길, 경리단길처럼 유행의 첨단을 걷는 곳보다 도시의 평범한 골목길을 선호한다. 그래서 요즘 곳곳의 골목길들이 뜨고 있다.

노멀크러시 열풍을 확인시켜준 사건이 작년 JTBC ‘한끼줍쇼’ 이효리 출연이었다.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우연히 만난 초등학생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고 묻자 옆에 있던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했다. 그때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했다. 여기에 2030 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말할 수 없이 해방감을 느꼈다’, ‘눈물 나게 좋은 말’, ‘역대급 카타르시스’, 이런 식의 호응이 나온 것이다.

아무나 되라는 말에 감동하는 젊은 세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될 거냐"는 강호동의 질문 자체가 구세대적인 질문이었다. 노멀크러시적 관점에선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무얼 좋아하느냐가 중요하다. 훌륭한 사람 되라는 이경규의 말도 당연히 구세대적인 발상이었다. 훌륭한 사람이라는 노멀하지 않은 결과를 위해선, 삶 자체가 노멀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런 스페셜한 인생은 필요 없다는 게 노멀크러시다. 스페셜하게 노력하느니, 노멀하게 삶을 즐기겠다는 생각.

2017 밀레니얼 세대 행복 가치관 탐구 보고서에서 2030세대는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몰입하기보다 현재의 일상과 여유에 더 집중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 78%가 ‘그렇다’고 답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6월 전국 만 13세~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항목에 ‘그렇다’고 가장 많이 답한 세대가 20대로, 무려 77%였다. 사회통념, 다른 사람 시선 의식하지 않고 나 좋을 대로 살겠다는 것이다. 한국일보의 지난해 조사에선, 2030세대가 고소득이나 사회적 명예 등을 성공한 삶의 조건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세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기성세대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현재의 젊은 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경쟁을 강요당하며 경주마처럼 살았다. 그래서 에너지가 일찍 고갈됐을 수 있다. 치열하게 산 기성세대의 현재 모습을 보며 ‘저게 평생 노력한 결과라면 과연 노력이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우리 사회가 요즘 사회초년병에게 요구하는 ‘을’로서 삶, 초년병이 사회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부조리, 이런 것들이 적극적 사회 활동의 의욕을 꺾는다.

거기다 사다리가 무너졌다. 현재를 희생해서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미래에 얻을 것이 없다. 젊은 시절 고생해봐야 겨우 나중에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살까 말까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파트 안 사고 평생 여유롭게 살겠다는 생각이 퍼졌다. 어렸을 때 배고픈 경험이 없기 때문에 물질적 성공에 대한 강박도 없다.

이런 배경에서 젊은이들이 노멀크러시, 평범한 삶 속 소소한 행복에 빠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지나친 과로사회였고, 개인의 일상적 삶의 질이 무시됐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의미가 있다. 요즘 경영계에서 화두가 되는 ‘워라밸’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모두 여유롭게 주저앉아 일상만 누린다면 과연 사회의 역동성과 진취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젊은이들이 열정을 갖지 않는 사회에서 발전동력이 살아날 수 있을까? 고민해볼 문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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