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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 손흥민, 우리는 왜 못 키우나


입력 2019.06.17 08:15 수정 2019.06.17 08:15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성적지상주의 교육·수직적 집단적 문화·권위주의적 리더십 변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성적지상주의 교육·수직적 집단적 문화·권위주의적 리더십 변해야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민들이 2019 FIFA U-20 월드컵 '대한민국 대 우크라이나' 결승전 경기를 응원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민들이 2019 FIFA U-20 월드컵 '대한민국 대 우크라이나' 결승전 경기를 응원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강인, 손흥민 모두 우리 시스템이 키운 사례가 아니다. 이 두 선수가 한국에서 성장했다면 오늘날처럼 세계적인 수준이 되지 못했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강인의 플레이를 보며 많은 한국인이 특히 감격한 대목은 상대의 압박을 가볍게 벗겨내는 기술이었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은 압박이 들어오면 당황해서 공을 뺏기거나 조급하게 패스하기 일쑤였다. 백패스도 남발했다. 그에 반해 이강인은 개인기로 압박을 이겨냈다. 특히 남미 선수들의 압박을 기술로 벗겨내는 장면은 남미 축구기술에 주눅 들었던 한국인을 감격하게 했다.

그런데 이강인이 한국에서 컸다면 이런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독특한 시도 자체가 ‘너는 왜 혼자 튀냐?’는 질책의 대상이 된다. 개인 기술을 시도하다 보면 어린 나이에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너 때문에 공 뺏기고 졌다’는 질책을 들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지도자 눈치를 보며, 혼나지 않는 축구, 시키는 대로 하는 축구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과거 경기 중에 지도자가 경기장 옆에 붙어 서서 일일이 지시를 내렸던 전통도 선수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한국 특유의 수직적 서열문화가 어린 선수가 개성을 발현하는 걸 불가능하도록 만든다. 히딩크가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서 바로 취한 조치가 선후배간에 존댓말 금지일 정도로 우리 축구계에 수직적 문화가 심했다. 얼마나 심각했으면 외국인 감독 눈에 바로 띄었겠는가. 이런 수직적인 문화에서 이강인과 같은 어린 천재가 자유롭게 개성을 발현시키기 어렵다.

우리 학교 스포츠는 3학년생의 진학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래서 1학년이 주도적으로 경기에 임할 수 없다. 이런 것도 이강인 같은 천재를 질식시키는 요인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학교 스포츠에선 당장 이겨서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것도 학생들 진학과 관련이 있다. 실력 키우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명문 학교로의 진학이다. 축구도 명문대에 가야 선수로도 성공하고 지도자로의 길도 열린다. 정정용 같은 흙수저 감독이 성공하는 건 극히 드문 사례다.

이렇다보니 선수 개인의 개인기, 창의성 등을 길러줄 여유가 없다. 무조건 당장 성적을 내는 팀으로 조련돼야 한다. 개인기나 창의성, 자율적인 판단능력 등을 기르려면 기본기를 다지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모험적인 플레이도 해야 하는데,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판에 그런 걸 용인해줄 수가 없다.

그렇다보니 당장 이기는 조직 전술에 몸을 맞추는 훈련만 하는 것이다. 개인의 기술, 기본기, 창의성, 전술적 판단 능력 등이 길러지지 않는다. 있던 재능도 죽이는 곳이 한국 학원축구계라는 우려도 있다. 이강인, 손흥민이 한국에선 불가능했을 거란 지적이 이래서 나온다.

어쩌면 수많은 이강인, 손흥민들이 한국 시스템 속에서 열심히 뛰기만 하는 ‘투혼’형 선수로 자라났을지 모른다. 감독에게, 선배에게 예쁨 받는, 착하고, 모범적인, 그리고 규격에 맞는 선수로 말이다.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윽박질러가며 이룩한 최대치가 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대회 4강이었다. 하지만 개인 기량이 미약한 선수들은 20세 이후에 서구 선수들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개인 기량이 부족하니까 어떤 전술을 내놔도 백약이 무효, 백패스만 쌓인다.

어렸을 때 기본기를 다지고 개인 기량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마음 놓고 발달시킬 수 있는 그런 지도 환경이 돼야 더 많은 손흥민, 이강인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적지상주의 교육과 수직적 집단적 문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 있을까?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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