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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멈춰야 할 것은 쇳물 아닌 탁상행정


입력 2019.07.12 07:00 수정 2019.07.11 22:26        조인영 기자

위법 판단부터 규제 시행까지 충분한 논의 부재

원칙만 고수 보다 결과도 생각하는 현실적인 행정 필요

위법 판단부터 규제 시행까지 충분한 논의 부재
원칙만 고수 보다 결과도 생각하는 현실적인 행정 필요


포스코 2제선공장 용광로.ⓒ연합뉴스 포스코 2제선공장 용광로.ⓒ연합뉴스

내년부터 세계를 누비는 선박들은 국제해사기구(IMO) 규제에 따라 배출가스의 황함유량(SOx)을 3.5%에서 0.5%로 낮춰야 한다. 해운업체로서는 상당한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시행에 무리가 없도록 전반적으로 대응해나가고 있다.

이는 황산화물 규제가 공론화된 뒤부터 시행까지 무려 12년의 시간이 주어졌던 데 있다. IMO가 이 방안을 승인한 시점이 2008년이다. 당시 4.5% 이하이던 황함유량을 2012년부터는 3.5%로, 2020년엔 0.5%로 순차적으로 낮춤으로써 업계 종사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현실적인 여건을 마련해준 것이다.

최근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이런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십 년간 전세계 철강업계에서 보편적으로 이뤄지던 일을 불법이라며 조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데 단 두 달이 걸렸다.

환경단체가 고로에서 배출되는 연기가 불법이라며 포스코를 고발한 시점이 4월 8일이다. 환경부는 철강업계가 브리더(안전밸브)를 임의 개방해 대기환경보전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자체들은 당진제철소, 포항제철소, 광양제철소에 모두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사전통지했다. 고발부터 행정처분 사전통지까지 2달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특히 당진제철소는 청문 절차도 건너뛴 채 조업정지 10일을 확정했다. 고로 가동을 중지하라는 처분에 놀란 현대제철은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행심위는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제철소 공정 특성상 조업이 중단되는 경우 중대한 손해를 예방해야 할 필요성이 긴급하다"며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여기서 말한 중대한 손해는 결코 만만한 규모가 아니다. 일단 고로 가동을 멈추면 쇳물이 굳기 시작해 재가동까지 3~6개월이 소요된다. 고로 1기당 생산량은 400만톤으로 3개월이면 피해액은 8000억원, 6개월이면 1조6000억원이 날아간다. 복구가 안되면 고로 철거 후 재건설을 해야 한다.

철강업계가 "사실상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자체의 막무가내식 고로 정지 처분을 행심위가 제동을 거는 모습이 연출되면서 철강산업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수준을 보이고 있다. 정부 역시 뒷북으로 민관협의체를 마련하면서 정부와 업계간 진지한 소통이 없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조업정지의 주 원인인 브리더 임의 개방이 법 위반이라면 철강사들이 충분히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이 맞다. 법 규제는 예고부터 시행까지 수 년, 많게는 수십 년이 소요된다. 해운업계가 오염물질 배출을 규제하기 위해 12년 전부터 공론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적으로 준비 가능한 시간을 줘 방법을 찾도록 한 것이다. 스크러버라는 장치도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나중에 나온 방안 중 하나다.

철강업은 어떤가. 수십 년간 해오던 일을 하루 아침에 중단 시키는 현실을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 자행되고 있다. 차라리 철강사들이 기술 개발 등 최종 대안을 찾을 때까지 매년 환경세(?)를 걷는 것이 낫다. 이렇게 덮어놓고 가동 중단을 추진하면 철강업 뿐 아니라 연관 산업인 자동차, 조선, 가전도 같이 무너진다.

환경보호는 중요하다. 그렇다고 석기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원칙만 따져가며 규제의 칼날을 휘두를 게 아니라 그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까지 생각하는 현실적인 행정이 필요하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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