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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희망'보다 '위기' 강조한 경제단체장들


입력 2019.12.31 06:00 수정 2019.12.30 17:26        박영국 기자

박용만 "미래 심히 우려", 손경식 "정책 환경이 기업에 부담"

허창수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 기로", 김기문 "새해 사자성어 암중모색"

박용만 "미래 심히 우려", 손경식 "정책 환경이 기업에 부담"
허창수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 기로", 김기문 "올해 사자성어 암중모색"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데일리안 DB

“구조 개혁 자체가 더뎌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미래가 심히 우려스럽다. 기존 산업 보호 때문에 새로 산업 변화를 일으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고착됐다.”(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실물경제 부진 원인은 외부 요인도 있지만,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시행 등 국내적인 정책 환경이 경쟁국들에 비해 기업에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이뤄지면서 기업 심리도 함께 위축된 측면도 있었다.”(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신년사에서)

“올해(2020년) 우리 경제는 다시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 있다. 낡은 규제, 발목 잡는 규제는 과감히 버리고, 사회 전반에 기업가 정신을 살려야 한다.”(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신년사에서)

신년을 맞아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장들이 신년간담회와 신년사를 통해 언급한 발언들이다.

그동안 신년 메시지에는 새해를 맞아 희망을 전하는 목소리가 주가 되는 게 보통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우울한 얘길 해봐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관행을 깨고 한 목소리로 위기 상황을 호소한다는 건 그만큼 기업들의 상황이 좋지 않음을 방증한다.

특히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강한 어조로 암울한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1년 전, 우리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 같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앗 뜨거’ 하기 시작했다”고 우리 기업들의 어려운 상황을 묘사했다.

그는 “정부가 정책 수단을 동원해 고용 등 거시경제 숫자 관리는 잘했지만, 정부 기여율(75%)이 높아져 민간 기여율(25%)이 굉장히 줄었다. 그만큼 민간 기업의 체감 경기가 나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인들이 “숫자는 좋은데 왜 내 사업은 나쁘냐”고 반문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대외 여건이 나빠 단기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더 큰 문제는 구조 개혁 자체가 더뎌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미래가 심히 우려스럽다는 것”이라며 “기존 산업 보호 때문에 새로 산업 변화를 일으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고착됐다. 사업 기회가 없는데 의지만으로 투자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우리 경제는 투자, 수출 등 민간 실물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했다”면서 “외부 요인에 따른 어려움도 있었지만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시행 등 국내적인 정책 환경이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기업에 부담을 주는 방향으로 이뤄지면서 기업 심리도 함께 위축된 측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조업 분야는 국내 생산과 투자가 줄고 고용이 감소한 반면,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 투자는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떠나면서 법인세 인상에도 세수가 감소해 국가재정 수지에 부담이 되는 등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손 회장은 “우리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서고 지속가능하고 건실한 경제 발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경기 부양 등을 위한 정부 재정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시장에 의한 민간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 경제정책의 정석”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민간 경제 살리기보다는 돈을 쏟아 부어 ‘숫자 관리’에 연연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손 회장은 “민간 경제가 위축돼 충분한 세수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재정확장에 의한 재정적자 기조가 이어진다면, 결국 국가 부채를 후세에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법인세율 인하와 상속세 인하, 유연근로제 활성화 입법, 노동제도 선진화 등 기업 활력 제고에 중점을 맞춘 정책기조 변화를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했다. 상법·공정거래법 및 하위법령의 개정,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등 기업 경영권에 부담을 주는 사안들도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신년사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들이 도전정신을 높여야 한다고 독려하면서도 “올해 우리 경제는 다시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 있다”고 위기 상황을 진단했다. 낡은 규제와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할 것을 정부에 주문하기도 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신년사에서 새해 경영환경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암중모색(暗中摸索)’을 선택했다. ‘어둠속에서 손을 더듬어 찾는다’는 의미로, 새해 사자성어로서는 어두운 내용이다. 그만큼 기업들이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상징한다.

김 회장은 “새해에도 우리경제는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엄중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하며 정부에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기업의 지불능력을 반영하고, 영세기업 및 소상공인을 구분 적용할 것, 그리고 화평법과 화관법 등 중소기업을 옥죄는 환경규제를 개선해줄 것을 요청했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우리 주변은 공짜가 늘어 판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다. 세상 이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라며 불합리한 경영 환경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경제단체장들이 회원사들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새해라고 무조건 희망적인 메시지만 전달하고 힘차게 뛰자고 독려할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면서 “경제단체장들의 신년사에서 보여진 암울한 분위기는 정부 정책 기조나 정치권의 지향점이 바뀌지 않는 한 올해도 경영환경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작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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