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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논란은 명분? 기업은행 갈등에 숨은 고차방정식


입력 2020.01.28 06:00 수정 2020.01.27 20:54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윤종원 행장 출근 무산 20일 넘겨…사태 장기화 국면 돌입

"당·정·청 나와라" 체급 올리는 노조…노동이사제 급부상 왜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기업은행 노조가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일 첫 출근에 나선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은 노조원들의 저지로 약 10분간 대치하다가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간바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기업은행 노조가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일 첫 출근에 나선 윤종원 신임 기업은행장은 노조원들의 저지로 약 10분간 대치하다가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간바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의 출근 무산이 20일을 돌파하며 사상 최장 기록을 훌쩍 넘어선 가운데 노동조합이 제기하고 있는 낙하산 논란은 단지 명분일 뿐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노조가 결국 윤 행장 선임을 막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얻을 것을 얻어내기 위한 행보란 시선이다. 특히 최근에는 윤 행장과 노조 양측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카드로 노동이사제가 거론되면서 금융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기업은행에 따르면 지난 3일 신임 기업은행장으로 공식 임명된 윤 행장은 지금까지도 노조의 저지에 막혀 서울 을지로 본점 사무실에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써 윤 행장은 과거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이 기록했던 14일(2013년 7월 22일~8월 4일)을 넘어 출근 무산 최장 기간 기록을 다시 쓰게 됐다.


노조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출신인 윤 행장이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정부가 최대주주인 국책 은행으로, 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번 행장 인사를 앞두고 ▲관료 배제 ▲절차 투명성 ▲기업은행 전문성 등 3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런 원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물리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예고한 상태였다.


기업은행 노조는 최근 윤 행장 저지 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2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새 지도부가 첫 공식 일정으로 기업은행 노조를 찾으면서다. 한국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으로 각각 선출된 김동명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위원장과 이동호 전국우정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날 오후 기업은행 본점 로비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을 방문, 기업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선거 전부터 기업은행 노조의 낙하산 저지 투쟁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의지는 여전히 강경한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은행장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질문에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며 윤 행장 임명을 굽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금융권은 노조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청와대의 인사 기조를 돌아볼 때 윤 행장 선임을 무산시키긴 힘들 것이란 얘기다. 더욱이 청와대로서도 이미 한 차례 노조의 여론에 밀려 양보한 인사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의 후퇴는 곤혹스러울 수 있다.


당초 청와대는 새 기업은행장으로 반장식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을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기업은행 노조는 반 전 수석이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낙하산 인사라고 강력 비판하며 행동에 나섰다. 그러자 대안으로 떠오른 인사가 윤 행이다. 청와대는 윤 행장이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국제통화기금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 특명전권대사 등을 역임한 만큼 반 수석보다 경제·금융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노조가 진짜 원하는 조치가 윤 행장 인사 철회는 아닐 것이란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노조가 줄곧 윤 행장이 아닌 청와대·여당과 만나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두고, 앞으로 자신들의 체급과 협상력을 끌어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기업은행 노조는 이번 투쟁의 대상이 윤 내정자가 아닌 청와대·정부·집권 여당이라며, 당·정·청의 진정한 사과와 대화 의지가 있다면 노조도 언제든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목받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노동이사제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인사가 회사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사업계획과 예산, 정관 개정 등 경영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더욱 시선이 쏠리는 대목은 이 같은 노동이사제에 대한 견해가 다른 곳이 아닌 기업은행 노조 내부에서 등장했다는데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지난 13일 대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방안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선 윤 행장에 대한 투쟁을 통해 무엇을 챙길 수 있겠냐는 이른바 실리론이 논의됐는데, 그 중 하나로 노동이사제가 제시됐다는 것이다.


노조로서는 노동이사제가 실현되면 투쟁을 접더라도 향후 이사회를 통해 꾸준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남다른 상징적 의미도 취할 수 있게 된다. 아직 금융권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곳이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기업은행 노조가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정부로서도 노동이사제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타협안일 수 있다. 노동이사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노동이사제로 윤 행장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면, 청와대로서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 노조 입장에서 윤 행장을 퇴진시키는데 성공하면 존재감을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취할 수 있는 이득은 없을 것"이라며 "노조 내부에서도 이런 의견이 확산되는 모습인 가운데 결국 현실적으로 접점을 찾을 수 있는 한 수로 노동이사제가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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