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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헬릭스미스, '코끼리 다리 만지기'는 그만


입력 2020.02.19 07:00 수정 2020.02.18 21:46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헬릭스미스 "엔젠시스 약물 혼용 없었지만 3-1상 실패"

CRO에 책임 전가한다는 비판도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가 지난해 9월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엔젠시스 임상 3상 결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모습. ⓒ헬릭스미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가 지난해 9월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엔젠시스 임상 3상 결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하는 모습. ⓒ헬릭스미스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말이 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진다는 뜻인데,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이런 우화가 나온다.


인도의 왕이 어느 날 맹인들을 불러 모아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는 그 생김새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 같다고 하고, 코를 만진 장님은 마치 뱀과 같다고 하고, 상아를 만진 이는 큰 무처럼 생겼다고 답한다. 사물을 볼 때 일부분을 전체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댄 이야기다.


최근 헬릭스미스는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의 애매한 보도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9월 통증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의 임상 3-1상에서 약물 혼용이 있었다며, 정확한 조사 결과는 추후 밝히겠다고 한지 4개월 만이다. 당시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는 약물이 혼용돼서 그렇지 약의 유효성은 문제없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지난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임상 3-1에서는 주평가지표 달성에 실패했다. 이는 엔젠시스 약효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지표의 특수성과 이에 따른 특별한 임상운영(clinical operation) 방법 상의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중맹검으로 진행된 임상 3-1B의 분석을 통해 약물의 안전성과 우수한 유효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당사는 후속 임상 3상을 조만간 진행할 예정으로, 후속 임상3상 프로토콜은 사실상 완성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번 임상 실패가 엔젠시스의 약효 문제가 아니라 통증 지표를 측정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임상 지표인 ‘통증 지표’가 임상이 진행될수록 반응이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임상 후반부(3-1B상)로 갈수록 통증감소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큰데, 전반부(3-1상)에는 상대적으로 통증감소 효과가 적었다는 내용이다. 결론만 얘기하면 엔젠시스 임상 3-1상에서 약물 혼용은 없었고, 약효도 없었다.


하지만 약물 혼용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엔젠시스가 성공하지 못 할 것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헬릭스미스의 언론 대응과 발표자료에서 풍기는 '애매모호함'이다. 이렇게 읽으면 성공이고 저렇게 읽으면 실패 같다.


헬릭스미스의 발표 내용만 보자면 개인 투자자나 대중들에게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다. 임상 3-1상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면서도 임상 3-1B상은 사실상 성공적일 것이라며 물 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임상 3상 실패는 CRO(임상시험 수탁기관) 잘못'이라며 업체 실수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도 실망스럽다. 사상 초유의 약물 혼용 가능성을 제기해 업계의 충격을 안기고는 이제와 혼용은 없었지만 모든 것은 CRO 탓이라니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헬릭스미스는 투자자들에게 언제까지 코끼리 코나 발만 만지게 할 셈인가. 더이상 업계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지 말고, 보다 정확하고 투명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은정 기자 (e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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