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만에 2조6000억 증가
수익률 모두 1~2%대 그쳐
내년 수수료 개편에 '촉각'
국내 5대 은행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이 최근 석 달 동안에만 세 배 가까이 불어나면서 4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증시 부진의 영향을 피하지 못하면서 수익률은 고꾸라졌다. 정부가 퇴직연금 수수료에 운용 성과가 반영되도록 제도를 개편한 만큼, 앞으로 이 같은 저조한 수익률은 은행들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3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3조7302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240.1%(2조6333억원)나 늘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자동 투자하는 제도다. 확정기여형과 개인형퇴직연금을 대상으로 한다. 그동안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원리금보장상품에만 투자한 이후 방치하면서 평균 1%대라는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해 왔다.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다.
디폴트옵션 시장에서는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의 양강 체제가 견고해지는 모습이다. 신한은행의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1조171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251.3% 늘어나며 1위를 수성했다. 이어 국민은행이 1조143억원(증가율 225.3%)으로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시장 형성 초기에 3위를 차지했던 하나은행은 농협은행의 거센 추격에 자리를 내줬다. 이 기간 농협은행은 6951억원으로 5배 이상 늘어나며 5대 은행 중에서도 압도적 성장을 자랑했다. 하나은행이 5776억원(291.3%)으로 우리은행은 2722억원(328.0%)으로 뒤를 잇고 있다.
은행들은 전국적 영업망을 기반으로 고객을 적극 유치해 적립금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아울러 퇴직연금 전담 센터를 운영하는 등 운용 역량을 강화한 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들 은행의 디폴트옵션 상품 수익률은 전분기와 비교하면 크게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가 지난 2분기 반등세를 보일 때 고위험 상품으로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 5대 은행의 디폴트옵션 중위험 상품 6개월 평균 수익률은 1.25%로 전분기(3.51%) 대비 2.26%포인트(p) 하락했다. 은행별로 봐도 모두 1~2%대 수익률로 지난달 물가상승률(3.8%)에도 한참 못미치는 수준을 보였다. 이들 은행의 고위험 상품 6개월 평균 수익률도 같은 기간 4.92%에서 2.09%로 2.83%p나 하락했다.
이처럼 저조한 수익률은 앞으로 고객 이탈뿐 아니라 은행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내년 4월부터 퇴직연금 수수료 부과 기준에 운용 손익 등을 반영하도록 관련 제도를 개정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IBK기업은행은 최근 퇴직연금 수수료 부과 기준 개편 작업에 돌입했다. 수수료 산정 기준에 적립금 운용 손익, 중소기업과 사회적 기업 여부 등을 반영할 계획이다. 시중은행들도 내부 논의를 진행 중이다. 시중은행들은 "고용노동부와 관련 내용을 협의하고 있다"며 "현재 배포된 가이드라인보다 (산정 기준이) 구체화하면 개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