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칼럼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허상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그러니까 현 정권을 구성하는 양대 축은 어쩌면 이렇게도 남의 제도 흉내 내기와 베끼기에 열심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국민주권 정부’라는 용어부터가 그렇다. 근대적 의미의 국민주권주의는 미국의 헌법(1787년)과 프랑스의 인권선언(1789년)에서 핵심적 가치로 표방됐다. 그런데 한국의 좌파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기치로 내걸고 있는 국민주권주의의 구호(이를테면 국민주권정부)는 라틴아메리카 형에 가까워 보인다.
19세기 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의 초기 공화국 정권들이 ‘국민주권정부’라는 표현을 공식 문헌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제1공화국은 독립헌장(1811년)에서 “이 공화국은 국민주권에 기초한 정부이며…”라는 표현을 구사했다. 멕시코의 초대 공화정(1824년)도 헌법 해설 자료에서 국가를 ‘국민주권적 정부’로 규정했다.
미국은 헌법제정권자로서의 ‘국민’을 가리켰다. 무제한적 권력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헌법에 구속돼야 한다는 헌정 원칙 담보자로서의 국민이었다. 프랑스 인권선언 제3조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으며…”에서의 ‘국민’은 정치권력의 철학적 바탕인 국민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19C 초 라틴 아메리카에서 배웠나반면에 라틴아메리카 초기 공화국들의 ‘국민주권정부’ 선언은 민중을 정치에 동원하고, 새 정권의 정통성·정당성을 주장하는 정치적 선언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신생 독립국 혁명정권의 등장에 헌정된 상징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건 용어로서의 의미를 가졌을 뿐 권력의 실체일 수는 없었다. 권력의 실제 장악 및 행사자는 정치 실력자들이었다.
국민은 집권세력이 떠받들어 모시는 주인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동원되는 하인이었을 뿐이다. 정권 측은 민중 동원의 정치를 펼쳤고, 이를 위한 기술 혹은 수법으로서의 민중추수적(民衆追隨的) 태도를 보인 것이다. 포퓰리즘 정치세력은 민중의 감정·분노·좌절을 부추기며 무조건적 동의를 표함으로써 그들을 정치과정에 동원한다. 포퓰리즘 정치가 남미 여러 나라에서 두드러졌고, 여전히 건재하다고 말해지는 배경을 이로써 짐작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주권정부’의 기치를 들었다. 대한민국 헌법이 이미 표방하고 있는 바가 국민주권이다. 즉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의 규정이 국민주권주의의 선언 아닌가. 그런데도 좌파 정권들은 대를 이어가며 ‘국민’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들 가운데서도 이재명 정권이야말로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치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대중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간다, 대중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대중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말이라면 어떤 것이든 소리쳐 외친다”는 기세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정부는 25일 국가공무원법상 ‘복종의 의무’를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변경하는 등의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이와 함께 구체적 직무 수행과 관련한 상관의 지휘·감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지휘·감독이 위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행을 거부할 수 있으며, 의견제시·이행거부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면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공무원 사회에 갈등·분열 씨 뿌리나공무원은 수적으로나 영향력에서나 엄청난 파워를 가진 집단이다. 포퓰리즘 정권이 이들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하급 공무원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당근을 제시한 셈인데, 수행할 직무가 ‘위법’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문제다. 위법 여부는 결국 재판에 가서야 가려질 텐데, 그 이전에 이행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 수 있는가?
더욱 고약한 것은 지난 21일부터 본격 가동되기 시작한 ‘헌법 존중·정부 혁신 TF’가 내란 참여 및 협조 여부를 전수 조사할 대상이 75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25개 정부 부처를 포함한 49개 중앙행정기관에 설치된 TF에는 550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한다. 전체 국가공무원을 잠재적 내란 참여·협조자로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공공연하고 위협적인 공무원 사회 기강 다잡기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공무원 사회를 무력화하거나 분열시켜 정권의 편리한 도구로 쓸 생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항명 검사들을 쉽게 파면시키기 위해 검사징계법을 폐지하기로 한 민주당의 행태도 모순적·상충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국가공무원들에게는 상사에 대해 복종을 거부할 권리를 부여하겠다면서 정권의 의도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이는 검사들은 단호히 처벌하는 것이 곧 검찰개혁이라는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장동 일당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 노만석 전 검찰총장 대행의 결정에 반발했다고 해서 여당이 해당 검사장 18명(이 중 2명은 사직)을 고발하고 정부는 이들을 평검사로 보직 이동시키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태도는 또 어떤가?
집권 전에는 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대해 ‘정치 검찰’ ‘정치 보복’ ‘야당 탄압’이라고 소리를 질러대던 사람들이 지금은 눈치껏 처신하지 않는다고 검찰을 매도하다니! 내년 10월 2일이면 검찰청은 폐지된다. 그런데 왜 이처럼 검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민감하고 강경하게 대응하는가. 기소 업무만을 맡게 될 검사들이라 해도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인가. 아니면 공수처나 중수청 등에도 검사들이 진을 칠 수 있을 것이어서 미리 대비하자는 것인가.
국민추천제 통해 정실인사 제도화한쪽으로는 하위직 사기 진작책을 내밀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위기감을 조성하는 이런 상충적 조치를 동시에 태연하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이 정권 측의 특성인가? 그런데 국가공무원은 수적으로 말하자면 대중이지만 잘 훈련되고 조직된 특별한 대중이라는 점을 잊으면 곤란하다. 처음엔 권력의 위세로 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은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일이다.
‘국민추천제’를 공무원 인사 제도로 공식화한 것도 납득이 안 되는 시책이다. “국민주권시대를 활짝 열어갈 진짜 일꾼을 찾으려는 취지”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인데 기실은 엽관제(정실·연고·정치적 보은·코드·보위세력 강화 인사 등 망라)를 제도화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난 6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간 인사처 국민추천제 홈페이지와 이메일, 이 대통령 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통한 장·차관, 공공기관장 추천 건수가 무려 7만 4000건이었다고 한다. 제도까지 마련된 이상 추천장이 엄청나게 밀려들 것이다.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생각하면 제도의 성격은 분명해진다. 정실인사·연고인사의 명분을 위한 제도이거나 ‘로또 인사’가 되기 십상이다. 관객 모독이 아니라 주권자 모독 드라마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면서 기어이 77년의 역사를 가진 검찰청을 폐지키로 한 정권 측이 공수처의 수사 및 기소권은 안 건드릴 모양이다. 국가기관으로서의 검찰청은 정치적 중립성을 믿지 못하겠다면서 특정 변호사를 정점으로 하는 특검수사를 남발하는 데 대해서도 합리적 논리적 설명이 부족하다. 어떻게든 조직과 기구를 휘저어 정권의 장악력을 강화하면 이 대통령의 사법적 악몽이 끝난다고 여기는가?
겨우 빠져나온 청와대로 복귀라니입에 ‘국민’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를 서두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도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집무실 이전이 검토되고 아예 외부에 새로운 집무실을 만들겠다고 공약한 대통령도 있었다. 이들이 결국 포기한 일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실행에 옮긴 게 지금의 용산 대통령실이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광화문 시대를 선언하고 거창한 집무실 및 관저 이전 구상을 밝혔던 문 전 대통령이 이를 포기한 이유가 바로 ‘정부서울청사의 공간 부족과 이 일대 교통·행정시설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 해명을 못 들었을 리 없는 민주당 사람들이 끈질기게 용산 대통령실을 비판했고 이 대통령은 정권을 잡기 무섭게 청와대 복귀 방침을 천명했다.
청와대는 지난 22년 5월 20일부터 지난 8월 1일까지 3년 2개월여 국민적 관광명소가 됐었다. 국민 832만여 명이 찾았다. 그곳을 둘러본 국민들은 그 거대한 규모와 호사스러움에 압도당했다. 거기로 다시 가겠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정한 대통령실이 싫다고 해도 국민을 위해 참아줄 일이지 기어이 청와대로 들어가야 하겠다는 심사는 뭔지 정말 궁금하다. ‘모든 국민을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로 약속하더니 거액을 들여 청와대 보수하는 일부터 벌이다니!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담당하게 된 데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할 입장이 아니다. 국민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가 운영을 책임진 세력에게는 일개 필부도 말을 보탤 권리가 있다. 그건 민주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하거니와 제발 ‘국민’을 가지고 장난하는 일만은 더 이상 없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개별적 사회·국가 구성원으로서의 국민, 헌법상의 권리·의무 주체인 국민, 유권자로서의 국민, 정치적 구호에 동원되는 추상적 국민, 특정 지지층을 일컬을 때의 국민(이를테면 친이재명 성향을 가진 대중), 일반의지의 담지자로 주장되는 허구적 존재로서의 국민 가운데서 어떤 국민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을 부를 때마다!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11월 26일

민주, '대법원장 무력화' 속도전… 사법개혁 아닌 '사법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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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진흥공사 운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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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I (건화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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