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해도 선관위가 대납…정치인들과 소통
감사원에 발각되자 '공장초기화' 해서 제출
나경원 "우리의 한 표, 보호받을 수 있겠냐"
한동훈 "사전투표 없애고 본투표 연장해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세컨드 폰'을 사용해 전국단위 선거를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정치인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그 사실이 발각되자 휴대전화를 '공장초기화' 해서 감사원에 제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중앙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 과정에서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관위 명의의 업무 휴대전화를 개통해 정치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김세환 전 총장은 선관위 예산으로 개통하고 통신요금이 지급되는 이 '세컨드 폰'을 퇴직하면서도 들고 나갔다. 이후 감사원 감찰 과정에서 '세컨드 폰'이 적발되자 김 전 총장은 휴대전화를 제출했지만 이미 '공장 초기화'가 된 상태였다. 감사원은 포렌식을 통해서도 통화내역과 데이터를 복구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김 전 총장은 강화도에서 태어나 인천 선인고를 졸업한 뒤, 지방직 9급 공채에 합격해 강화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선관위 공무원으로 전입한 뒤 기조실장과 사무차장(차관급)을 거쳐 사무총장(장관급)에까지 올랐다.
김 전 총장은 아들 특혜채용 의혹에도 연루돼 있다. 김 전 총장의 아들도 부친처럼 강화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김 전 총장이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이던 지난 2020년 1월 경력채용을 통해 선관위 8급 공무원으로 전입했다. 당시 인천시선관위는 6급 이하 인원이 정원 초과였는데도 중앙선관위의 지시에 따라 1명을 경력채용하기로 했다가, 김 전 총장의 아들이 원서를 내자 채용 인원을 2명으로 늘렸다.
김 전 총장 아들 면접에서 면접관으로 들어간 선관위 직원들은 모두 김 전 총장과 인천시선관위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었다. 이렇게 경력채용된 김 전 총장 아들은 1년도 안돼 7급으로 승진하고, 강화군선관위의 상급기관인 인천시선관위로 옮겼다.
채용비리에 이어 사무총장이 '세컨드 폰'을 통해 정치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까지 드러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선관위와 선거 제도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한동훈 전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청년들의 꿈을 짓밟은 대규모 채용비리와 사무총장이 정치인들과 통화하는데 쓴 '세컨드 폰'은 선관위의 현주소"라며 "공정한 선거관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린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수개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고, 비상대책위원장과 당대표를 거치며 사전투표도 관리관이 직접 날인하도록 하고, 사전투표를 없애고 본투표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며 "선관위 구석구석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 없도록 커튼을 열어젖혀야 한다. 선관위가 더 이상 '가족회사'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의 또다른 대권주자인 나경원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선관위 예산으로 개통한 비밀전화로 정치인들과 밀담을 나누고, 퇴직 후에도 선관위가 요금을 대납한 이 부패 카르텔을 도대체 어떻게 믿으라는 말이냐"라며 "대체 선관위의 '가족'은 어디까지냐. 친인척 외에도 정치적 공생, 기생 관계의 가족까지 포괄이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소쿠리 투표함으로 선거는 부실관리하고, 가족채용 비리에, 세금으로 비선전화를 운영하고, 감사가 들어오자 증거를 인멸한 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나라에서 과연 우리의 한 표가 소중하게 보호받을 수 있겠느냐"라며 "선관위 특별감사관 도입과 국정조사 추진으로 부패 카르텔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자. 이제는 국민이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