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가장’은 옛말, ‘재벌돌’까지 등장…금수저‧고급화 마케팅에 빠진 걸그룹 [D:이슈]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입력 2025.07.12 12:19  수정 2025.07.14 16:52

홀어머니‧반지하 숙소‧소녀 가장. 한때 걸그룹 멤버들은 ‘성장 서사’가 있었다. 이 서사는 대중에게, 자신이 ‘왜’ 음악을 하는 지를, ‘왜’ 아이돌 활동을 열심히 활동하는 지를 설명해 줬다. 이 전략을 주효했다. 이들 역시 토크 예능에 나와서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며, 다양한 계층의 팬덤을 구성했다.


ⓒ더블랙레이블

그러나 케이팝(K-POP)의 폭발적인 성장과 해외 시장 확대는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바꿨다. 특히 음악 외 수익을 위한 활동에서는 ‘어려웠던 성장기를 겪은 이미지’보다 ‘부유한 성장 환경에서 자란 이미지’가 더 필요하게 됐다.


속칭 ‘금수저돌 마케팅’은 2016년 데뷔한 블랙핑크부터 찾아볼 수 있다. 블랙핑크는 ‘태생부터 남다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데뷔 초부터 ‘YG 공주님’으로 불리며 고급스럽고 화려한 스타일링과 세련된 비주얼로 화제를 모았고, ‘붐바야’, ‘프리티 새비지’(Pretty Savage), ‘셧다운’(Shut Down) 등의 곡으로 ‘어딘가 다른’ 면모를 자신감 넘치게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이들은 2019년 데뷔 약 3년 만에 제니를 시작으로 멤버 전원이 명품 브랜드의 글로벌 앰버서더를 맡았고, 멧 갈라와 파리 패션위크 등 해외 일정에 참석할 때마다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블랙핑크의 성공적인 ‘금수저 마케팅’ 이후, 다수의 아이돌 팬덤을 홍보하는 ‘입덕’ 콘텐츠에서 여유로운 가정환경을 언급하는 사례가 늘었고, 그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현재 유튜브에 게시된 ‘취미로 걸그룹해도 되는 금수저 아이돌 TOP5’라는 제목의 영상은 550만뷰를 기록했다. 비슷한 내용이 담긴 영상들 또한 150만뷰를 훌쩍 넘겼다. ‘금수저설’에 휩싸였던 엔믹스 해원은 ‘핑계고’에 출연해 “아버지가 판사라는 소문이 있더라. 해명을 할까 말까 했는데 오히려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서서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고, 이채연은 ‘노빠꾸 탁재훈’에 출연해 “금수저는 아니다. 그러나 굳이 해명하지 않겠다. 엄마가 있어 보이게 살라고 했다”고 언급하며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미지의 긍정적인 효과를 넌지시 전했다.


그리고 최근 가요계에는 실제 ‘재벌돌’까지 등장하며 고급화 마케팅의 정점을 보여줬다. 지난달 데뷔한 그룹 올데이 프로젝트의 애니는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외손녀이자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 부문 회장의 딸로, 연습생 시절부터 가요팬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에 힘입어 데뷔곡 ‘페이머스’(FAMOUS)는 국내 주요 음원 차트 1위 뿐 아니라 미국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도 입성하며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러한 고급화 마케팅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도 항상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서 발달 시기인 10대 팬덤에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교사 A씨는 "10대에게 아이돌은 우상이자 닮고 싶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며 "고급화 마케팅이 자칫 타고난 배경이나 외모가 화려한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노력의 가치를 가볍게 여길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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