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구와 닮은 부분 많아"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배우 안보현이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새로운 얼굴을 꺼냈다.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 분)를 감시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에 휘말린 청년 백수 길구 역을 맡아, 로맨스와 코미디, 오컬트가 뒤섞인 장르 속에서 서툴지만 마음만은 단단한 청춘을 그렸다.
안보현은 기존의 남성미 강한 캐릭터를 내려놓고, 뜻밖의 상황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인물을 유쾌함과 진정성을 오가며 극을 풍성하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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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를 통해 '악마가 이사왔다'의 완성본을 본 안보현은 촬영 당시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본 화면 속에서 자신이 그려낸 장면들의 의미가 또렷하게 다가왔고, 그 과정에서 작품이 남긴 울림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찍은 지 벌써 2년 정도 됐네요. 다시 보니까 추억이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촬영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려고 했구나'하는 의도나 해석이 보여서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 뭉클했던 순간들도 있었고요.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는 힐링이 됐던 것 같아요."
'악마가 이사왔다'는 당초 김선호가 캐스팅됐지만 사생활 논란으로 하차했고, 그 자리를 안보현이 채웠다. 예기치 못한 시점에 제안을 받은 그는 작품과 감독을 믿고 합류를 결정했고, 결과적으로 필모그래피에 또 다른 결을 더할 기회가 됐다.
"그 동안 남성미 강한 역할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이번 캐릭터를 제안해 주실 때 ‘외유내강’이라는 타이틀의 힘도 있었지만, 이미지 변화를 줄 수 있는 포인트 같았고,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았죠.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길구가 인형 뽑기하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인형 뽑기가 마치 길구 마음 같았거든요. 인적이 드문 시간에 후드 뒤집어쓰고 혼자 인형 뽑기를 하고, 그렇게 모은 인형을 쌓아두는 모습이 길구의 마음이었구나 싶어서요. 하나하나 끄집어 올릴 때마다 마음속에서 꺼내고 싶은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느낌을 받았죠. 그러다 성동일 선배님께 선물로 하나 건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도 길구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어요."
그가 길구라는 인물에 몰입할 수 있었던 건 단순한 상상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인생의 갈림길에 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길구랑 저랑 닮은 부분이 많아요. 저도 인생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었거든요. 운동을 오래 해왔으니까 직업군인을 선택할지, 아니면 새롭게 시작한 연기를 계속할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죠. 그 안에는 부양가족,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야 하는 부담도 있었고요. 성격적으로도 길구처럼 내향적인 편이었어요. 복싱처럼 혼자 하는 운동을 오래 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시간이 많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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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는 외형뿐 아니라 말투와 분위기까지 세심하게 조율했다. 그 결과 현장에서 ‘길구 같다’는 반응이 이어졌고, 그 한마디가 캐릭터 해석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영화 속 길구는 치장에 관심이 없어요. 옷 톤도 거의 회색이고, 말투도 어눌하고 느리죠. 힘을 빼고 연기하려고 했어요. 감독님이랑은 낯을 좀 가리지만 금방 편해져서 호흡이 잘 맞았어요. 선한 역할이라고 해서 편하거나 단순하지는 않아요. 길구를 연기할 때 의도치 않은 행동이나 말투가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게 현장에서 바로 피드백으로 와요. 스태프들이 '길구 같다'라고 말해주고 웃어주는 걸 보면서 선한 역할이 주는 영향력을 새삼 느꼈습니다."
영화는 로맨스, 코미디, 오컬트 등 여러 장르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안보현은 그 안에 길구의 성장 서사 또한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한 청춘이 겪는 변화와 감정이 장르적 재미와 함께 펼쳐진다고 봤다.
"길구 이야기는 결국 성장 서사라고 생각해요. 쉽게 무너지고 큰소리 못 내던 인물이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 진실을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치유해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거죠. 처음엔 악마 선지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끝까지 찾아가고, 결국 자기 길을 찾잖아요."
상대역 윤아에 대한 호흡을 묻자, 그는 작품 속 케미뿐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느낀 배우로서의 매력과 인간적인 면모를 풀어놓았다.
윤아 씨는 함께 있으면 어제 본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사람 냄새나는 배우입니다. 처음엔 얼굴이 너무 예뻐서 털털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지만, 실제로는 털털하고 친근한 매력을 지녔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 오래 함께하고 싶은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현수와 함께한 액션 신은 그에게도 색다른 도전이었다. 평소 운동 실력과 액션 연기로 인정받아온 그는 이번만큼은 능숙함을 지우고, 서툴고 어딘가 어설픈 길구의 몸짓을 만들어내야 했다.
"멋있게 맞는 건 잘 아는데, 길구처럼 우스꽝스럽게 맞는 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 부분이 좀 걱정됐어요.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살려 가볍게 표현하려고 했고, 서로 믿고 맞춰가면서 재미있게 촬영했죠. 촬영하다가 어디를 때려야 할지 헷갈려서 NG도 몇 번 났어요. 그 부분은 신현수 씨한테 정말 미안했어요.(웃음)"
이번 작품은 그에게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나아갈지에 대한 고민과 자극을 안겨줬다. 길구를 연기하며 얻은 확신은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에 도전하려는 마음으로 자리 잡았다.
"데뷔 10년이 됐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더 다양한 색깔을 가진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길구라는 캐릭터도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반신반의하며 시작했지만,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꼈고요. 앞으로도 안주하지 않고 여러 캐릭터에 계속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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