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술 발전과 인간의 삶 변천사 – 생존에서 협력, 그리고 책임으로

유진상 기자 (yjs@dailian.co.kr)

입력 2025.08.23 10:53  수정 2025.08.23 10:54

최형일 숭실대 명예교수. ⓒ

인류의 역사는 곧 기술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불을 피우고 돌을 갈던 시절부터 인공지능과 로봇이 주도하는 오늘날까지, 기술은 인간의 생존과 자유, 그리고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해왔다. 시대마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며 환경에 적응했고, 때로는 기술이 몰고 온 변화를 주도함으로써 문명을 전진시켰다. 이제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과 나란히 협력하며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가는 전환의 시기에 서 있다.


생존을 위한 도구의 시대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간단한 석기를 제작하던 시절, 기술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생존이었다. 날카롭게 쪼아 만든 돌창으로 짐승을 사냥해 가족과 함께 불가에 둘러앉아 고기를 나눠 먹었다. 또한 어둠 속에서 맹수에 떨던 밤도 불빛이 있으면 훨씬 덜 두려웠다. 농경 기술은 정착 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잉여 생산물은 교환 제도와 사회 조직의 발달을 촉진했다. 이 시기에 기술은 단순히 삶을 편리하게 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존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필수 조건이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견인한 문명 도약


17~18세기 과학혁명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뒤바꿨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하늘과 땅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했으며,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인간 중심의 우주관을 무너뜨렸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 속에서 18~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증기기관과 방직기, 철도, 전신 등은 생산과 물류, 통신의 혁신을 가져왔다. 사람이 직접 실을 뽑아 옷감을 만들던 일을 기계가 대신함으로써 노동이 분업화되고, 대량생산 체계가 형성되었다. 도시는 산업의 중심으로 변화했으며,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공장 노동자로 자리잡았다. 공장에서 일하고 받은 임금으로 기차표를 구입해 옆 도시의 친척을 방문할 수 있게 되는 등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기술은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생산 기술의 대중화가 만든 일상의 변화


20세기 전반에는 전기의 보급과 가전제품의 상용화가 가정 풍경을 바꿨다. 세탁기, 냉장고, 진공청소기 등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크게 줄었고, 자동차와 대중교통의 발달은 인간의 이동 반경을 넓혔다. 라디오와 전화는 사람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정보 전달의 속도를 혁신했다. 이제 기술은 더 이상 일부 산업 종사자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을 더 편리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장치로 자리잡았다.


디지털 혁명과 정보화 사회의 탄생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디지털 혁명은 세상을 획기적으로 연결시켰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과 데이터가 공개되면서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원격 협업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가능해졌다. 이 시기의 기술은 거리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인간 사회의 물리적 공간을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시켰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 협업의 시대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이 단순 반복 노동을 넘어 지적 노동과 물리 노동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의료영상 분석, 법률문서 검토, 맞춤형 교육, 교통 최적화 등에서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일부를 대체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새로운 협업 구조를 만들어낸다. 의사는 AI의 진단을 기반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고, 변호사는 AI가 정리한 법령을 활용해 전략을 세운다. 우리는 점점 더 기술과 함께 '공동 작업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물리 노동 영역에서는 인간의 움직임과 의사소통 방식을 모방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 물류센터, 돌봄 현장에서 실험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특히 고령사회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간병 보조, 재활 훈련, 감정 교류 등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일부 도시에서는 무인 로보택시가 운행되고, 물류운송 분야에서 대형 자율주행 트럭이 인간의 일손을 대신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차는 AI가 인간의 곁에서 '협력자'로 자리잡아가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기술 발전의 그림자와 사회적 책임


그러나 모든 발전에는 그늘이 존재한다. 기술 격차는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자동화가 가속화되면서 일부 직종은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지만, 전환이 쉽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환경 부담 역시 기술 발전이 남긴 숙제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대량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등은 지속 가능성에 위기를 불러온다. 기술이 인간 삶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남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사용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미래를 향한 선택


기술 발전의 변천사는 생존에서 편리, 협력, 그리고 책임으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방향을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기술을 통해 경쟁과 효율만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윤리와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할 것인지는 모두 우리의 몫에 달렸다.


역사가 보여준다. 기술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며, 인간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기술의 기능뿐 아니라 그 사용 목적과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상호 보완하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세상을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의 책임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있다.



<약력>


최형일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전) 숭실대 IT대학 학장

(전) 숭실대 정보과학 대학원 원장

(전) 컴퓨터사용자협회 고문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기고'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유진상 기자 (y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