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유출, 위약금 면제만 집착할 일 아니다 [기자수첩-ICT]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입력 2025.09.25 11:23  수정 2025.09.25 17:16

기업 관리 소홀·정부 감독 부재·컨트롤타워 불분명이 드러난 총체적 사건

보상·사퇴 논란보다 보안 프레임워크 재설계와 컨트롤타워 정비가 본질

KT 주요 경영진들이 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네트워크부문장서창석 부사장, 김영섭 대표, 커스터머 부문장 이현석 부사장ⓒKT

24일 국회에서 열린 ‘대규모 해킹 및 소비자 피해’ 청문회는 단순한 정보 유출을 넘어, 기업의 보안 관리 부실과 정부의 규제 완화, 컨트롤타워 책임 불분명이라는 민낯을 드러냈다.


KT는 펨토셀(초소형 기지국) 인증 기간을 10년으로 설정해 관리 공백이 생겼고, 장비 상당수가 회수·삭제되지 않은 채 방치돼 침투를 노리는 자들에게 빈틈을 허용했다.


정부(KISA)가 중국 배후 해킹 조직의 KT·LG유플러스 침해 의혹을 통보했음에도 서버를 서둘러 폐기한 것도 문제다. 뒤늦게 백업 로그를 제출했지만, 그만큼 해킹 경로 추적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초동 대응이 늦어 피해 확산을 자초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다. KT는 공격 징후를 스미싱(피싱 문자)으로 오인해 초기 대응이 늦었다고 인정했다. 피해 범위도 특정 지역으로 한정했다가 각지로 퍼져 가입자들은 뒤늦게 피해 사실을 알아야 했다.


정부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펨토셀에 대해 신고·허가 절차를 완화하면서 '행정 절차를 줄이고 투자비를 절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 보안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키워준 꼴이 됐다.


SKT 해킹 사태 당시 KT·LGU+ 서버는 SKT와 동일 수준으로 전수조사하지 않았다는 것도 청문회에서 확인됐다. 대응 강도를 두고 류제명 차관이 "서버를 전수조사하기에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더 철저하게 감독·관리했다면 로그와 데이터 폐기 과정에서 허점을 잡아내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컨트롤타워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한계로 드러났다. 컨트롤타워의 실질 주체가 국가정보원, 국가안보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분산돼 지휘체계 혼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초동 대응 부실, 피해 확산으로 이어지는 프로세스에서 감독 불균형이 드러났다는 사실은 보안 사고가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총제적 부실이 드러났다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통신을 넘어 산업·국가 보안 프레임워크를 새로 설계해 재발 방지를 도모하는 것이 순서다. 현재 휴대폰과 카드를 안쓰는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국민들은 '내 정보가 또 털리지 않을까', '금전과 일상생활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을까'를 가장 두려워한다.


이런 와중에 과방위 위원들이 집중한 것은 본질과 동떨어진 ‘위약금 면제’와 ‘대표 사퇴’였다. 물론, 위약금 면제를 이끌어 내면 일단 가입자들이 환호하니 표심을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로서는 성과 과시 차원에서라도 힘을 줄 수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2300만명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고, KT도 2만명이 사정권에 있다고 하니 적정한 고객 피해 보상안 마련은 당연하며, 그렇게 돼야 한다.


하지만 과방위 위원들의 그런 태도는 위약금 면제를 가장 시급한 현안이자 성과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보상안과 대표 사퇴가 언론·정치권의 화제가 되면 마치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듯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상 중심 논의가 정책 혁신을 가리면 구조적 대책 요구, 근본적 재발 방지 조치 시행은 그만큼 뒤처질 우려도 낳는다. 지엽적 논쟁에 머무는 대신 한국 산업 전반의 보안 프레임워크를 새롭게 설계하는 데 목소리가 모아져야 하는 이유다.


기업은 원인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보안 투자·로드맵 마련·실행에 뼈를 깎는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고 국회와 정부는 탐지·방어·무력화(김승주 고려대 교수가 청문회에서 언급한) 등을 참고한 보안 컨트롤타워 설립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보안 기준을 상향한 기업에게는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사고 위험을 낮춘 기업이 대접 받는 분위기도 조성해야 한다.


정부가 'AI 3대 강국'을 외쳤지만 현실은 SKT, KT, 롯데카드 등 유력 기업들의 정보가 손쉼게 털린 '사이버 침해 국가'라는 오명이다. 이를 씻어내려면 기업과 정부 모두 과거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 산업 성장은 책임과 안전이 토대여야만 가능하다는 자각 속에 민·관·정이 구조적 혁신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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