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를 한국에 개방한 지 28년이 지났다. 현재 한국 지상파 드라마 속 범죄 조직은 야쿠자, 한국 영화의 주연은 일본인, 극장가엔 일본 애니메이션이 걸려 있다. 한국에 스며든 일본 콘텐츠는 주인공이 되고, 서사를 이끌고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비판 없이 받아들인 익숙함의 결과는 아닐까.
ⓒSBS '모범택시3'
25일 SBS에 따르면 지난 21일 금토드라마 '모범택시3'가 1화가 방영됐다. '모범택시 3'는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기사 김도기(이제훈 분)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모범택시' 시리즈의 세 번째 시즌이다.
드라마는 1화 시작부터 일본 범죄조직을 중심에 둔 서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인공 김도기는 인신매매를 일삼는 일본 불법 사금융 조직 '네코머니'에 납치된 여고생의 구조 요청을 받고 직접 일본으로 건너간다. 조직에 잠입한 김도기는 '풍운아 도기'라는 가명을 쓰고 일본어로 대사를 주고 받는다. 드라마가 진행되며 보여지는 조직 보스(카사마츠 쇼 분)의 집, 그들의 옷, 말투 등 모두 야쿠자를 연상시키는 연출이 이어진다. 김도기가 일본 조직에 침투해 일본어로 임무를 수행하고, 일본 배우가 그 중심에서 갈등 구조를 끌고 가는 전개는 "배우들이 너무 잘 소화해 재밌다"는 평과 함께 "지상파 드라마에서 이런 설정은 너무 왜색이 짙다"는 반응이 나왔다.
ⓒ넷플릭스
카사마츠 쇼는 영화 '굿뉴스'에도 등장한다. 지난달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한국 영화 '굿뉴스'는 1970년 일어났던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 일명 '요도호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이다.
비행기를 하이재킹한 공산주의연맹 적군파는 모두 일본인 배우들이 연기했다. 납치된 승객들 대부분이 일본인 역할이고, 부기장 마에다 세이고 역의 김성오는 한국 배우임에도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설정으로 영화 속 대부분의 장면은 일본어 대사로 진행된다. 이는 일본어가 한국 콘텐츠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위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극장가에서는 국내 영화 산업의 하락세와 맞물려 일본 콘텐츠의 인기가 두드러진다. 한국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올라와 있는 영화는 23일 KOBIS 기준 누적관객수 564만6786명을 기록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다. 일본 영화가 연간 1위에 오른것도, 국가와 상관없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
동명의 만화·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3부작 제작이 예고된 '귀멸의 칼날' 최종화의 첫 번째 작품이다. 혈귀의 우두머리인 키부츠지 무잔이 귀살대원들을 혈귀의 본거지 '무한성'으로 끌어들이며 대전을 벌이는 내용을 담았다.
한편 원작 '귀멸의 칼날'은 우익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욱일기를 연상하는 귀걸이를 차고 다니는 점, 작품의 배경이 일본 제국주의 확장기였던 다이쇼 시대(1912~1926년)로 한다는 것, 만화에 등장하는 혈귀 사냥꾼 '귀살대'의 복장이 일제시대 학도병의 옷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이유로 전체주의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영화는 14주차 장기상영에도 높은 좌석판매율을 유지하고 있다.
작품을 수입한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는 "개봉 초반부터 이어진 뛰어난 작화 퀄리티와 압도적인 액션 스케일에 대한 호평이 다양한 포맷의 N차 관람 열풍을 이끌며 흥행세를 견인했다"며 "주차별로 진행되는 현장 증정 이벤트와 팬심을 저격하는 굿즈 상영회와 응원 상영회 등 다양한 이벤트들에 인기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도 계속 막아온 일본 대중문화를 두고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단계적으로 수입 허용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영화·만화부터 시작해 음반, 게임, 방송까지 네 차례에 걸친 개방이 이어졌고 2004년에는 사실상 전 분야에서 일본 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이후에도 일본어 음반, 일본 가수 공연, 일본 방송 콘텐츠는 오랜 시간 정서적 검열 아래 놓여 있었으나 최근 들어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 콘텐츠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
유현재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일본이니까 안된다는 식의 구시대적인 검열보다는, 어떤 콘텐츠가 한국에 스며드는지 살피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유 교수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더 이상 매체나 국가의 경계를 인식하지 않는다"며 "유튜브와 지상파, 한국과 일본의 구분 없이 재미있으면 본다는 감각이 지배적인 시대"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 콘텐츠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전통이 깊고 정서적으로 부드러운 서사에 강점이 있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경계해야 할 지점도 분명히 있다. 그는 "과도한 성적 표현, 맹목적 우익 정서, 가학적인 콘텐츠 등 넘어야 하지 말 '선'까지 넘나드는 콘텐츠는 충분히 비판적으로 보고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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