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김다미, 수줍은 소녀(?)가 단단해지기까지… "마녀 이후 두 번째 전환점" [D:인터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30 11:04  수정 2025.12.30 11:04

배우 김다미는 작품 활동 외에 예능 콘텐츠에 얼굴을 비춘 적이 손에 꼽는다. 그러나 몇 안 되는 영상 중에서도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을 홍보하기 위해 최우식과 함께 출연했던 유튜브 '문명특급' 영상이 화제가 됐는데, 이전에 '마녀', '이태원 클라쓰' 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가 유난히 수줍어하며 몸을 잔뜩 웅크린 모습이 의외라는 반응이 뒤따랐다.


ⓒUAA

엠비티아이(MBTI)가 'ISFP'로 알려진 만큼 조용하고 부끄럼 많은 이미지도 그때 한층 굳어졌다. 그런데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 인터뷰 현장에서 마주한 김다미는 달랐다. 조심스러움은 여전했지만 말끝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 "(콘텐츠에 나가면) 많이 긴장이 되기도 하고 제가 재밌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피해가 아닌가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취미도 딱히 없고요. 가끔 드라이브하고 운동하는 정도고 평소에는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해요"


올해 만 서른이 된 그는 연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조금 편안해진 것 같다고 했다. 긴장과 조심스러움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살짝 공간이 생긴 느낌이라고. "예전에는 뭐 하나 잘못하면 집에 가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작품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최선을 다하되 ‘못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마음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말을 고르는 속도는 여전히 신중했지만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라는 문장에는 예전의 김다미가 가졌던 완벽해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한 발 물러선 여유가 있었다. 그가 그 여유를 체감하게 된 작품이 바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다. 김다미는 이 작품을 두고 "필모그래피 중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마녀' 이후 두 번째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제 인생에서 첫번째 전환점이 '마녀'였다면 '대홍수'는 두 번째 전환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만큼 큰 변화를 가져다준 작품이에요. 현장에서 배웠던 지점들도 있고요. 예전에는 스스로에게 칭찬을 잘 못 했는데 이번엔 '그래도 잘 이겨냈다'고 말해주게 되더라고요"


김다미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은 단연 옥상 신이다. 계속 젖어 있는 상태에서 찍어야 했던 장면이기도 했고 극중 감정선이 가장 높이 치닫는 구간이기도 했다. "겨울에 물을 막 내리면서 찍었는데 다 젖어 있기도 했고 감정신 중에서도 제일 '하이'(high)의 감정신이었어요. 그 커트를 롱테이크로 끊지 않고 찍었거든요. 제 클로즈를 세 번 찍고 목소리가 나가서 못 찍었어요. 더 이상은 못 하겠더라고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되게 힘들었던 신이었던 것 같아요"


옥상 촬영은 11월에 몰아서 진행됐다. 처음 자인이와 헤어지는 장면도 그때 찍었다고 한다. 감정의 출발점과 정점이 비슷한 시기에 표현해내야 했다. 그만큼 일정도 촘촘했다. 김다미는 촬영 115회차 중 105회차 정도 출연하며 거의 매주 촬영장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촬영하고 나면 저한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셨어요. 스태프분들이 다음 커트를 준비할 때는 몇 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때도 좀 쉬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주셨던 것 같아요. 시간이 나면 운동하러 가기도 하고요"


그는 "촬영하다가 '내가 이 영화를 왜 선택해가지고 이 고생을 하나'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돌아보면 그 치열함이 결국 더 나은 결과를 향한 시간이었음을 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영화가 잘 나오게끔 하려고 한 거니까요. 감독님도 최선의 걸 하려고 하셨고 그 마음을 아니까 이해가 돼요"


'대홍수'라는 제목 그대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물리적 난관은 '물'이었다. 시야도, 청각도 제한되는 물속에서 연기를 한다는 건 굉장한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처음에 수중 촬영할 때는 되게 무서웠어요. 물 안에서 내가 안 보이고 숨도 못 쉬고 들리지도 않는 걸 이겨내고 마무리할 수 있을지 무섭더라고요"


하지만 수중팀의 존재가 공포를 통제 가능한 두려움으로 바꿔줬다고 한다. "제가 들어가면 수중팀 분들이 한 7분 정도 계세요. 숨이 막힌다는 표시를 주면 바로 달려와서 저를 옮겨주시거든요. 처음엔 무서웠는데 한 번 두 번 겪고 나니까 익숙해졌어요. 신기한 게 하다 보니까 한 번씩 퀘스트 깨는 느낌이더라고요"


수영도 이번 작품을 계기로 사실상 처음 제대로 배웠다. 기본적으로 몇 센티 갈 수 있는 정도였는데, 문제는 숨을 참고 표정 연기까지 해야하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오래 참을 수 있는데 연기를 해야 되니까 힘을 써야 되고 움직이게 되잖아요. 호흡을 빼고 하면 7~8초만 해도 되게 힘들었어요"


지상에서 느끼던 감정이 그대로 표정으로 전달되지 않아 오히려 더 크게 표현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고. "생각보다 지상에서 할 때보다 표정이 감정이 느낀 대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물속에서는 조금 더 과하게 연기해야 했던 지점이 있었어요"


촬영이 끝난 뒤에는 한동안 물 근처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6개월가량 물과 함께한 시간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흐른 뒤에 여행지에 가면 수영장을 찾았어요. 문득 '프리다이빙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물속이 되게 고요해서 좋거든요"



ⓒUAA

김다미는 '대홍수' 시니라오를 받았을 때 처음부터 글로서 엄청 와닿았던 건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저한테는 처음에 글로서 엄청 와닿는 시나리오는 아니었어요. 근데 감독님이 만들었을 때 어떨지가 궁금한 시나리오였어요. 상상할 것들이 많고, 궁금증이 있었죠"


그러나 김다미에게 주어진 안나를 역은 여섯 살 아이의 엄마이자 재난 속에서 아이를 지키는 인물로 이 역할이 생소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엄마라는 것에 대한 불안도 있어서 고민을 좀 했죠. 감독님을 만나서 설득을 해주셔서 하게 됐어요. 엄마라는 지점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그런 지점이 이 영화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다고요"


결국 그는 엄마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해석할지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까 모성은 사랑의 한 형태인 거고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싶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엄마로 완벽하게 보이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엄마라는 역할보다는 사랑에 초점을 맞춰볼 수 있겠다, 안나처럼 사랑을 배워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어요"


김다미의 부모님 역시 영화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 "촬영 내내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까를 자주 떠올렸어요. 어머니들을 정말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걸 체감하는 시간이었죠"


자인 역의 아역 배우 권은성과 호흡을 두고 "평소에 은성이 나이 또래 친구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며 현장에서 아이와 가까워지는 과정 자체가 안나의 서사와 겹쳤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어렵고 낯설었어요. 근데 현장에서 많이 소통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까 저도 안나처럼 은성이를 대하는 마음을 깨닫게 됐고요. 마지막에는 진짜 아들 같은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은성이가 너무 잘해줘서 제가 안나로서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옥상 장면에서 장롱 안에 있던 자인이가 추위에 떨다가도 '컷' 소리와 동시에 감정에 들어가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되게 추웠는데 벌벌 떨면서도 컷 들어가면 정말 프로처럼 연기하는데 대사를 듣는 순간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은성이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영화 속에서 안나의 동행자가 되는 희조(박해수 분)는 현장에서도 김다미에게 '숨 고를 틈'이 돼줬다. 감독과 단둘이 좁혀가던 이야기가 박해수가 합류하면 "확 넓어지는 느낌"이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혼자 있는 촬영이 많다 보니까 지쳐 있기도 했는데 해수 선배님이 오시는 날이면 옆에서 농담해주는 게 엄청난 힘이 됐어요. 다쳐도 티 안 내고 꿋꿋이 하시는 모습 보고도 많이 배웠고요. 현장도 되게 화기애애했어요. 스케줄표 보면서 '언제 오시지'라고 생각했죠(웃음)"


공개 이후 '대홍수'를 둘러싼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김다미는 "반응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라면서도 한국 시청자들이 남긴 반응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극명하게 갈리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 영화가 질문이나 궁금증을 주는 영화라는 점에서는 기분이 좋았어요.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고요. 그런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호불호가 분명한 이유는 기존 재난물과는 조금 다른 서사 구조 때문이다. 김다미 역시 대본을 처음 마주했을 때 어렵다고 느꼈다. "대본 자체가 저한테 되게 어려웠어요. 수학 공식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반복되는 상황이 있다 보니까 그 반복되는 장면 안에서 다른 지점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되게 디테일하게 설정해야 했어요. '이 숫자(레벨) 때는 처음 겪는 건지, 몇 번째 겪는 건지' 그런 걸 다 정해야 했고요. 촬영 전에 감독님이랑 오늘 찍을 커트에 대해 30분~1시간씩 토론하고 세세하게 정했어요"


반응에 대해서는 처음 보고 다 이해하게 하는 건 사실 욕심이었다면서도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해달라고 말했다. "보는 분들이 처음 보시고 다 아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여러 번 보면 예를 들어 강아지가 달라졌다거나, 스티커나 숫자가 달라졌다거나 이런 걸 알 수 있겠지만요. 처음부터 다 이해시키는 건 저희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가 가진 메시지였어요"


그가 예로 든 디테일은 작은 행동과 대사의 결이었다. "예를 들어서 레벨 1에서는 자인이 신발을 챙기지만 레벨 2에서는 맨발로 나가기도 하고요. 같은 이름을 부르는 대사도 "자인아…"와 "자인아!"처럼 대본에 다 체크를 했어요. 다시 보면 보이는 지점들이 있을 거고 그게 재밌는 포인트예요"


다만 이렇게 치밀하게 설계된 행동과 달리, 감정만큼은 본능에 맡기려 했다고도 했다. "행동은 체계적으로 가져가야 했고 감정은 본능적으로 하려고 했어요. 기술적인 것과 본능적인 걸 같이 가져가야 하는 현장이어서 저한테도 어렵고 도전이었죠"


ⓒUAA

돌이켜보면 김다미의 필모그래피에는 유난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주 따라붙는다. 우정을 다룬 '소울메이트', 첫사랑의 설렘과 아픔을 담은 '그 해 우리는', 우정과 사랑을 모두 풀어낸 '백번의 추억' 그리고 모성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번 '대홍수'까지 작품마다 장르와 캐릭터의 얼굴은 달라도 결국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마음이 중심에 놓인다.


"생각해보니까 그렇네요. 처음부터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고른 건 아니지만 연기하면서 여러 형태의 사랑을 배웠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형태가 너무 다양해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근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에 사랑이 제일 좋고 어떤 위대한 감정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모성애도 그래요. 지금은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형태지만 결국 사랑의 한 종류고 누군가를 많이 사랑한다고 믿는 마음으로 접근했죠"


김다미는 작품을 고르는 방식에도 나름의 리듬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어떤 캐릭터를 했는지가 다음 선택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이전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특색 있는 캐릭터를 했으면 다음엔 현실적인 걸 하고 싶고, 현실적인 걸 했으면 다시 재밌고 특이한 걸 하고 싶고… 그런 루틴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는 '마녀'와 '이태원 클라쓰'처럼 강한 인상과 장르성이 있는 얼굴을 보여준 뒤에는, '그 해 우리는', '소울메이트'처럼 인물의 감정과 관계에 가까운 이야기가 끌렸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인물의 개성보다 이야기 자체의 힘이 더 크게 다가오는 작품을 찾게 됐고,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대홍수'였다.


"이 작품을 선택할 때는 캐릭터보다는 커다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재난 상황이 너무 크다 보니까 메시지가 더 크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인물에 초점이라기보다 이야기를 중심으로 봤던 것 같아요"


2022년에 촬영한 '대홍수' 이후 '백번의 추억'으로 다시 현실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기한 김다미는 당장 차기작이 확정된 건 없다고 한다. "지금은 아직 다음 작품을 정한 건 없어요. 그냥 이야기든 캐릭터든 떠나서, 내가 재밌는 거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어떤 특징이든 간에 마음에 와닿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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