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의 연애, 정서적 교류의 도구로 급부상
AI 기술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면서, 과거 영화 속 상상으로 치부됐던 장면들이 빠르게 현실과 겹쳐지는 상황이다. 한때 인공지능은 블록버스터가 소비하는 미래적 장치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생성형 AI, 자율주행, 감정형 챗봇, 군사용 드론까지 일상과 산업 전반을 파고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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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형 로봇의 반란을 그린 '터미네이터'(1984)는 기계가 노동을 넘어 전투와 지배의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공포를 드러냈고, 오늘날 휴머노이드는 공장 자동화를 넘어 물류, 돌봄, 안내 등 생활 공간으로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아직 영화처럼 자율적 판단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물리적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적 기반은 이미 갖춰지고 있다.
정보 통제의 서사도 현실과 가까워졌다.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2023)의 엔티티가 전 세계 데이터망을 장악해 진실을 왜곡하듯, 알고리즘 기반 뉴스 배열, 추천 시스템,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가짜 콘텐츠는 정보의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있다. 실제로 메타와 구글은 AI 추천 알고리즘이 사용자에게 편향된 정보를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 수차례 소환됐다.
채용 과정에서의 AI 평가, 범죄 예측 시스템, 신용 점수 산정 알고리즘 등은 이미 제도권 안에서 작동 중이며, 이는 통제의 방식이 물리적 억압이 아닌 데이터 기반 예측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사법 영역까지 AI가 개입하는 상상은 '노 머시: 90분'에서 극적으로 제시됐다. 영화는 AI 재판 시스템 머시가 인간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상황을 설정하지만, 이는 완전히 허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실제로 여러 국가에서 판결 보조 알고리즘과 양형 데이터 분석 시스템이 활용되고 있으며, 에스토니아는 7000유로 이하의 소액 민사 분쟁을 대상으로 AI 판사를 시범 도입한 바 있다.
가장 빠르게 현실이 된 영역은 감정이다. '그'(2013)에서 AI와의 연애는 당시엔 철학적 질문에 가까웠지만, 현재는 상담형 챗봇과 가상 연애 서비스가 상용화되며 정서적 교류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공감, 위로, 감정 반응을 설계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AI 동반자 앱 리플리카는 가입자가 수백만 명에 달한다. 또한 실제 상담사나 가까운 지인 대신 챗GPT에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판단받을 걱정 없이 언제든 들어준다는 점에서, AI는 인간관계가 채워주지 못하는 빈자리를 파고들고 있다.
영화가 그토록 경고해 온 기계와의 파국적 충돌 대신, 오늘날 AI는 효율과 속도를 무기로 보조자와 동반자의 얼굴로 우리의 일상에 안착했다. 비록 스크린 속 기계의 반란은 도래하지 않았을지언정, 인간이 기계에 의탁하는 현상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된 셈이다.
영화 속 장면이 과장이었을지라도 그 상상이 던진 '인간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질문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스크린 속 미래는 이제 머나먼 경고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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