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 등 5개국에 군함 파견 요구
파병시 한국 상선·중동 파병부대 타깃 우려
중국은 사실상 거부…일본은 시간 끌 여지 커
선제적 파병 결정시 ‘독박’…장기화시 손해 막심
지난 11일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공격을 받은 태국 선적 컨테이너선 마유리 나리호가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다. ⓒ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한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요구하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파견이 이뤄질 경우 현재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에서 활동하는 청해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중동에 파병된 우리 군부대와 민간 선박이 이란의 타깃이 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고, 전쟁이 장기화되면 미국과 함께 ‘전쟁의 늪’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자신 소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을 직접 거론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 개시 후 제3국에 군사작전 동참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파병 요청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던 만큼 조만간 요청을 공식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공식 요청이 오면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우리가 군함을 파견할 경우 이란이 ‘참전’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선박들을 공격하는 방식은 주로 미사일, 드론이나 무인선박 등이다. 전투함인 구축함이더라도 함대 차원이 아닌 단독으로는 촘촘한 대공방어와 근접방어(CIWS)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우리의 군함 파견을 빌미로 이란이 한국 국적선이나 한국을 향하는 상선을 더 집요하게 공격할 우려도 있다.
중동에 파견된 다른 부대가 이란 미사일 공격의 타깃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레바논의 동명부대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아크부대는 주로 인도적 지원활동과 교육훈련 지원 등에 특화돼 있어 대공방어가 취약하다.
우리와 같이 요청을 받은 주변국들이 파병 요청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만 파병을 결정할 경우 각종 리스크는 우리에게 집중된다.
중국은 이미 트럼프의 파병 요청에 “중국은 즉각적 적대 행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중국은 중동 국가들의 진정한 친구이자 전략적인 파트너로서 분쟁 당사국을 포함한 관련국들과 소통을 계속 강화하고, 긴장 완화와 평화 회복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애초에 미국과 국제 무대에서 외교·군사적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중동 전쟁 수습에 군사력을 지원해 들러리를 설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이란 공격 초기부터 중국은 부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이란이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은 공격하지 않고 사실상 ‘프리패스’를 부여한 상황에서 굳이 군함을 파견해 분쟁을 일으킬 이유도 없다.
일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우방이라는 점에서 파병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입장이다. 다만 일본은 공식적으로 정규군이 아닌 자위대의 해외 파병에 복잡한 법리 해석과 국회 승인 등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참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시간을 끌’ 명분이 충분하다.
집권 자민당의 고바야시 다카유키 정무조사회장은 트럼프의 군함 파견 요청이 전해진 이후인 이날 NHK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리에서 자위대 파견 여부에 대한 질문에 “법리상의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지만,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장애물은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미 군함 한 척을 중동에 파견해 놓은 우리와 달리 일본은 군함 파견을 결정하더라도 준비 절차와 중동까지의 이동에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점도 일종의 안전장치다.
프랑스와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국이라는 점에서 한국·일본과 상황이 다르다. 파병을 하더라도 나토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고, 이란도 나토 가입국에 대한 공격은 나토 전체를 전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복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선제적으로 군함 파견을 결정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우리가 감수해야 할 손실은 더욱 커진다. 이란은 전쟁배상금까지 거론하며 미국이 사과 없이 전쟁에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결사 항전하겠다는 태세고, 트럼프는 ‘확실한 승리’를 원하고 있어 전쟁 종료 시점은 가늠하기 힘들다.
내부적으로 사법리스크에 휩싸인 네타냐후의 이스라엘도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길게 끌려는 노력을 지속할 여지가 크다. 발을 잘못 들였다가는 ‘전쟁의 늪’에 빠지게 된다.
전쟁 종료 후에도 이란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의 대이란 공격에 참여한 우리를 ‘적국’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점도 감수해야 한다. 산유국이자 아랍권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을 적으로 둬서 좋을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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