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철학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 별세…민주주의 토대 ‘공론장’ 첫 정립

김상도 기자 (marine9442@dailian.co.kr)

입력 2026.03.16 16:53  수정 2026.03.16 16:53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2013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강연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20세기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별세했다. 96세.


독일 dpa통신 등에 따르면 그의 주요 저작들을 내온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는 14일(현지시간) 하버마스가 1971년부터 살던 바이에른주 슈타른베르크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dpa는 "하버마스는 20세기에 매우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말년까지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독일에서 정치적 쟁점에 꾸준히 입장을 밝혀온 몇 안 되는 공공 지식인이었다"고 전했다.


하버마스는 1929년 독일 뒤셀도르프의 중산층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9년 괴팅겐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취리히대와 본대 등에서 철학·심리학·독일문학·경제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요람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1950년대부터 학문 경력을 쌓았고, 1960년대부터 하이델베르크대와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강의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1세대 학자인 스승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비판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하버마스의 이름이 본격 알려진 계기는 ‘공론장의 구조 변동’ 논문이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은 시민들이 공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발판이었다. 그는 유럽 부르주아 살롱 문화에 뿌리를 둔 공론장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공공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20세기 들어 대중매체가 힘을 얻고 상업 문화가 확산하면서 공론장의 성격이 변질됐다는 점까지 지적했다.


하버마스가 1981년 발표한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현대 철학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인간 사회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힘이 아니라 합리적인 대화 능력에 의해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나치 체제 붕괴 이후 처음으로 자유로운 정치 토론 문화를 경험하던 서독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버마스는 선천성 구개열로 다섯살 때까지 두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으며 말을 또렷하게 전달하기 어려운 장애를 겪었다. 그가 인간의 의사소통 문제를 깊이 탐구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다. 하버마스는 2004년 도쿄 강연을 통해 어렸을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완벽하게 교류하기 어렸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의사 소통을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하버마스는 ‘행동하는 지성’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독일 사회 일각에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를 당시 사회상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이를 강하게 반대하며 과거의 역사적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작과 발언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반의 정치 논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버마스는 민주주의의 초국가적 확장을 강조하며 유럽 통합을 지지하는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다.


그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와는 구별되는 비판이론 전통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핵심 사상가로 꼽힌다. 1960년대 후반 유럽 전역에서 확산한 학생운동에도 공감과 지지를 보냈다. 그렇지만 과격한 행동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른바 ‘좌파 파시즘’의 위험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군사적 대응에는 신중해야 하며 러시아와의 협상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젊은 지식인들과 우크라이나 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하버마스 열풍’을 일으켰다. 민주화 이후 토론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이 배경이 됐다. 1996년 4월 그의 방한은 관심의 정점을 보여줬다. 하버마스가 2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강연장과 학술 행사마다 수천 명의 청중이 몰려들었다. 그는 제자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가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서울중앙지법에 석방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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