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 마의 300m 구간 뒤처진 이유는?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입력 2014.09.23 21:05  수정 2014.09.23 22:37

승부처였던 300m 구간서 제대로 힘 발휘 못해

부담 떨칠 나머지 종목서 의외의 선전 기대

박태환은 승부처였던 300m 구간서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했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국내에서 처음으로 치른 국제대회의 중압감은 예상보다 크게 박태환(25·인천시청)을 짓눌렀다.

박태환은 23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8초33를 기록, 중국의 쑨양(3분43초23)과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3분44초48)에 이어 3위로 골인했다.

이로써 박태환은 이번 대회에서 동메달만 3개를 추가, 역대 아시안게임 17번째 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대했던 금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수영 영웅의 역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박태환은 레이스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아무래도 힘이 부치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당초 세워뒀던 전략과는 맞지 않는 레이스였다. 결국 너무 큰 부담을 안게 된 나머지 체력적인 문제에 직면한 박태환이다.

박태환을 전담 지도하는 마이클 볼 코치는 경기에 앞서 “250~300m 구간이 승부수다. 이때 치고 나가야 한다”고 전략을 짰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변수가 있었다.

먼저 쑨양이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치고 나오자 박태환 입장에서도 따라붙지 않을 수 없었다. 장거리 레이스가 전문인 쑨양은 초반보다 중후반이 무척 강한 선수다. 특히 체력 안배가 뛰어나 경기 막판까지도 제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날 쑨양은 초반에 승부수를 던졌다. 쑨양은 150m를 도는 과정에서 1위로 치고 나오더니 그대로 속도를 끌어올렸고, 구간별 랩타임은 점점 빨라져갔다.

그러자 박태환으로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태환 역시 막판 스퍼트에 강한 선수이지만 초반부터 너무 격차가 벌어지면 아무래도 따라잡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기노 고스케가 레이스 초반 오버페이스를 하며 박태환의 리듬을 흔들어버렸다.

박태환은 250~300m 구간을 29초12에 끊었다. 앞선 50m보다 0.17초 빨라진 페이스였지만 경쟁자들과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쑨양과 하기노 모두 28초대를 기록하며 앞서나갔다.

승부처에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체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박태환은 350m를 통과할 때에도 여전히 29초대에 머물렀고, 27초대를 끊으며 피치를 급격히 올린 쑨양, 하기노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말았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 내내 ‘부담’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수많은 대회를 치른 박태환은 자신을 향한 일방적인 응원이 낯설기만 하다. 팬들의 응원은 힘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부담을 떠안은 박태환은 아무래도 후자 쪽이다.

게다가 레이스가 치러진 경기장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태환수영장이다. 세계 스포츠사를 찾아봐도 은퇴가 아닌 현역선수에게 경기장 이름을 헌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중압감이 엄청났다.

실제 박태환도 지난 200m 레이스를 마친 뒤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내 이름이 걸린 수영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무게감이 많았다. 아시안게임 3연패에 대한 단어도 안 들릴 수 없었다"고 고백할 정도였다.

이제 박태환은 자유형 100m와 1500m, 그리고 계영 종목만을 남겨두고 있다. 객관적인 전력상 금메달이 쉽지 않아 보이는 종목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 쏠린 기대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한국 수영 영웅의 끝나지 않은 도전에 힘찬 박수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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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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