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유아인 '사도', 또 하나의 천만 영화?

부수정 기자

입력 2015.09.13 07:56  수정 2015.09.13 08:31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10년 만에 정통 사극

"영조·사도세자·정조 등 3대에 걸친 관계 표현"

이준익 감독의 정통 사극 영화 '사도'에는 배우 송강호 유아인이 출연한다.ⓒ쇼박스

"넌 존재 자체가 역모다."(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영조와 사도세자의 참혹하고 비극적인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다'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가족사는 그간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 소재였다.

2005년 '왕의 남자'로 1230만 흥행 신화를 기록한 이준익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사도'도 영조와 사도세자 이야기를 재조명했다.

영화 '사도'의 특징은 무엇보다 정통 사극을 지향하는 점이다. 겉으로 보여주는 화려한 기교 없이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만으로 승부한다.

조선 영조시대 재위 기간 내내 왕위 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송강호)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뒤늦게 얻은 총명한 아들 세자(유아인)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으로 키우기 위해 '정도'의 길을 걷길 바랐다.

영조는 세자에게 끊임없이 학문과 예법을 가르쳤으나, 아버지와 달리 자유분방한 세자는 자꾸 어긋나기 시작한다. 세자는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그럴수록 아들에 대한 영조의 집착은 심해지고, 세자는 영조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으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세자에 대한 영조의 어긋난 기대는 대리청정(임금의 허락을 받아 여러 일을 대신 수행하는 것)과 양위파동(임금이 자신의 왕위를 죽기 전 후계자에게 계승시킨다는 뜻)으로 이어지고,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영조는 아들 세자를 뒤주에 가두고, 세자는 8일 만에 불운한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세자가 뒤주에 갇혀있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8일간의 기록'을 다뤘다.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인과 관계를 현재와 과거의 사건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임금이 아니고, 네가 임금의 아들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영조의 대사처럼 영화는 영조와 세자의 비극적인 운명에 집중한다.

세자가 눈에 핏발이 선 채 뒤주에 갇히게 되는 장면에서 출발한 영화는 이후 현재와 과거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영조와 사도, 그리고 주변 인물 혜경궁 홍씨(문근영), 영빈(전혜진), 인원왕후(김해숙)의 심리를 묘사한다.

이준익 감독의 정통 사극 영화 '사도'에는 배우 송강호 유아인이 출연한다.ⓒ쇼박스

영화는 관객들의 눈을 바쁘게 하는 액션, 그리고 심장을 쿵쾅 거리게 만드는 장면 없이 인물들의 내면을 촘촘히 따라가다 극 후반부에 이르러 영조와 세자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에 에너지를 내뿜는다.

영조가 뒤주에 갇힌 세자를 넌지시 바라보며 대화하는 9분 분량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두 사람은 마음속 진심을 마지막 순간에야 서로에게 내보인다.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으면 두 살이 되기 전에 널 세자로 책봉했겠느냐. 네가 칼 장난이나 하고, 개 그림을 그릴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길에 와서야 이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느냐?"(영조), "내가 바란 건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세자)

이후 영조가 죽은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며 서럽게 우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이 감독은 "영조와 세자의 사연과 두 사람의 마음 심리를 따라갔다"며 "비극적인 이야기지만 두 사람의 갈증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사극을 더욱 가깝게 만났으면 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현시점에서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유에 대해선 "누구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비극이 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삶도 그렇다. 비극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많은 상처가 정화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의 말마따나 영화는 인물들의 내면을 느리고, 무겁게 보여준다. 현란한 기교와 양념이 뿌려진 픽션 사극에 길든 젊은 관객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길게 풀어놓는 과정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에는 엄지가 올라간다. '변호인'(2013)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송강호는 "송강호의 연기는 감히 평가할 수 없다"는 이 감독의 말이 딱 들어맞는 준수한 연기를 펼쳤다.

'베테랑'으로 흥행 홈런을 친 유아인은 세자의 변화무쌍한 감정 연기를 놀랍게 소화했다. 광기와 불안감에 사로잡힌 세자는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만나 생생하게 날아 올랐다.

전혜진, 김해숙, 문근영, 박원상 등도 안정적인 연기력을 펼쳤다. 극 후반부에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로 10분 가량 출연한 소지섭의 훈훈한 기럭지를 보는 재미도 있다.

'사도'는 내년 2월 열리는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오스카상) 외국어 영화부문 한국 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9월 1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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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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