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연구 위해 발로 뛰는 배우들
FOX TV '하우스'는 2004년부터 12년까지 시즌8까지 방송한 인기 미국드라마다. '하우스'의 주인공인 그레고리 하우스는, 허벅지 근육이 마비돼 다리를 절고, 약물중독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냈다간 돌려받는 건 독설뿐이다. 괴팍한 성격, 상처 주는 막말을 달고 살지만 그런 성향을 커버하는 완벽한 의술 능력을 가지고 있어 늘 당당한 자세를 유지한다.
환자를 향한 휴머니즘은 없지만 휠체어 타는 의사에게 자신의 장애인 주차 구역을 빼앗기자 지팡이를 잠시 뒤로하고 자신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 되찾았다. '하우스'는 그레고리가 장애인이란 이유로 무기력해있는 모습이 아닌, 다른 장애인과 어떻게 경쟁하는지, 자신의 장애와 약물중독인 몸 상태를 농담처럼 건네며 유리한 입장에 서는 모습으로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애인을 다룬 여타 영화나 드라마가 교훈적이거나 장애인을 수동적인 면모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면 '하우스'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만 의지하며 장애를 겪는 삶의 태도와 방향을 보여줬다.
그레고리 하우스를 연기한 휴 로리는, 장면별로 하우스가 진통제를 얼마나 복용했는지까지 분석해 촬영에 들어가고, 지팡이 손잡이 위치까지 계산해 다리를 저는 방법을 여러 가지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휴 로리는 '하우스'로 2006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도 철저한 분석과 연구로 장애인 연기를 선사한 배우가 있다. '오아시스'의 문소리, '말아톤'의 조승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 동안 우리가 미디어에서 봐왔던 장애인 연기를 보다 더 세심하게 표현해 호평 받았다. 그 결과 문소리는 제 23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5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신인배우상, 조승우는 제42회 대종상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장애를 가진 캐릭터는 특수한 설정이 있기 때문이 극중 다른 등장인물보다 더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애인 연기는 미화되거나 자극적으로 그리면 바로 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전 조사와 연습을 통해 구축해야 한다.
지난 10월 개봉한 '돌멩이'에서 지적장애인 석구 역을 맡은 김대명은, 자신의 연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는 캐릭터 분석을 위해 보라매에 위치한 지적장애인 시설을 찾았고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지적장애인의 시선과 그들의 생각을 캐치하려 노력했다. 또 그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을 만나 조언을 들은 후 석구의 캐릭터에 반영했다고 전했다.
'돌멩이'를 연출한 김정식 감독은, 실제 장애인 가족을 둔 경험을 적극 반영해 배우들의 연기를 지도했다. 김대명이 여러가지 방향으로 연기를 준비해오면, 김 감독의 조언에 따라 캐릭터의 균형을 맞췄다. 김대명은 석구 캐릭터를 준비해오면 김정식 감독으로부터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8월 종영한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오정세도 지적장애 3급을 가진 문상태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사했다. 특히 오정세는 문상태와 비슷한 지적장애를 가진 첼리스트 배범준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요청에 드라마 스케줄을 조정해 직접 만나기도 했다. 오정세는 극중 문상태의 의상과 공룡인형까지 챙겨 하루종일 배범준과 시간을 보냈고, 이 사실이 배범준 가족에 의해 공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미담만으로 오정세가 지적장애인에 대한 눈높이와 이해가 높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드라마 관계자는 “예전보다는 캐릭터의 역할 등의 측면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법이 성숙해졌다. 하지만 완벽하게 장애인을 이해한 캐릭터가 나왔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장애란 설정 아래 감동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으로도 종종 이용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