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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마녀사냥, 집단지성의 민낯


입력 2022.07.21 14:00 수정 2022.07.21 13:22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배드 럭 뱅잉 (Bad Luck Banging)’

혐오와 차별은 우리 곁에 늘 있었다. 하지만 특정 집단과 세력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사회가 발전하고 인권의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지성이 발휘되면서 차별과 혐오는 많이 줄었다. 그러나 양극화가 심화되거나 전쟁으로 국가적 위기상황 발생 시 이를 악용해 정치적 입지를 넓히려는 시도는 여전히 존재해 왔다. 중세유럽의 마녀사냥과 같은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비인권적 행위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루마니아의 차세대 거장 라두 주데 감독은 28일 개봉할 영화 ‘배드 럭 뱅잉’을 통해 인종 차별, 여성 혐오, 지적 위선 등으로 얼룩진 오늘날의 풍경을 영화에 담아냈다.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알린 영화는 마녀사냥에 맞서는 에미의 이야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다. 교사인 에미(카티아 파스칼리우 분)은 남편과 합의하에 찍은 섹스 비디오가 포르노 사이트에 유출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 비디오가 빠르게 퍼지면서 이를 알게 된 교장(클라우디아 이레미아 분)과 동료 교사, 학부모들이 에미를 해임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심판대에 서서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하던 에미는 결국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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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출연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마스크를 쓴 채, 연기하는 것은 물론 스태프와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부쿠레슈티 시내를 배회하는 에미를 따라가며 펜데믹 시대 속 일상생활을 현실적으로 담는다. 일반적으로 촬영할 때만큼은 마스크를 벗지만, 감독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위험에 직면한 상황에서도 영화를 찍겠다는 일념과 더불어 촬영 당시의 시대적 환경과 분위기 그리고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촬영했다고 밝혔다.


루마니아의 암울한 역사를 들춰낸다. 총 3개 챕터로 구성된 영화는 영상물 유출을 두고 누구의 잘못인가를 묻는 책임 공방이 핵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논쟁이 지속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루마니아의 민낯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집권한 안토네스쿠 총리 시기를 기점으로 루마니아의 굴곡진 근현대사를 전방위적으로 꼬집으며 현재까지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과거의 농단을 풍자의 대상으로서 삼는다. 두 번째 챕터에서도 무의미한 단어와 푸티지 영상이 기록 사진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몽타주 이미지를 통해 루마니아의 근현대사와 폭력, 여성과 인종차별, 독재와 공산주의 등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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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을 당하는 에미를 통해 집단 무지성의 광기 또한 드러낸다. 의도하지 않게 부부의 섹스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에미는 마녀사냥의 심판대에 올라 비난받는 상황에 처한다. 음란한 교사를 명문학교에서 교사로 두는 건 이미지 실추라며 에미를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집단적인 혐오는 약자인 여성에 대한 폭력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자신의 조상들을 옥죄었던 파시즘의 또 다른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SNS로 인해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는 혐오와 차별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마녀사냥을 통한 집단광기의 비인권적인 폭력들이 일상화 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배드 럭 뱅잉’은 섹스 비디오 유출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보편적 가치인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와 전체주의 등 해결되지 않고 있는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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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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