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홍종선의 배우발견㉞] 등으로도 말하는 안도 사쿠라(백엔의 사랑, 어느 가족)


입력 2022.10.24 15:44 수정 2022.10.26 23:33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깊이 있는 접근과 실감 나는 표현력을 선물하는 배우 안도 사쿠라

배우 안도 사쿠라. 영화 '백엔의 사랑' 스틸컷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씨네룩스

배우 안도 사쿠라에게 반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제71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영화 ‘어느 가족’에서다.


지난 2018년, 프랑스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만비키 가족’(도둑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가족의 진정한 요건과 의미를 묻는 문제작을 보며 고레에다 감독표 일련의 가족 영화 결정판에 전율했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 의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캐릭터, 엉망진창 구성원들을 가족으로 묶어내는 노부요, 큰언니에서 엄마를 자청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안도 사쿠라를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영화 '어느 가족' 스틸컷. 맨 왼쪽이 노부요 역의 안도 사쿠라 ⓒ이하 수입·배급 티캐스트

시바타 노부요는 정말이지 표현하기에 쉽지 않은 캐릭터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다.


물건을 훔쳐 생활하는 시바타 가족, 그들의 더한 도둑질은 어쩌면 사람을 훔치는 일이다. 꼬마 유리를 납치하듯 집으로 데려오는 모습과 구성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 시바타 가족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그 과정을 짐작하게 한다. 오갈 데 없는, 이 사회에 제대로 된 내 자리를 갖지 못한 그들에게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는 ‘시바타네’지만 그저 순수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배경이다.


시바타네 아이들은 일탈도 하고 사회 적응의 힘겨움도 겪는다. 흔들리는 존재에게 뿌리내릴 수 있는 가정은 절실하고, 그 시기를 이미 다 겪고 어른이 된 노부요는 마치 엄마처럼 동생들을 꾸짖기도 하고 어르기도 한다. ‘엄마 대신’의 역할로는 부족하다. 노부요는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시바타 가족에게, 연금과 지원금으로 사회적 도움의 유일한 창구역할을 해준 시바타 하츠에 할머니(모두 할머니를 따라 시바타로 성이 같다, 故 키키 키린 분)가 세상을 떠난 시점에 큰 결심을 한다.


내면으로부터의 진동이 파장으로 전달되는 배우, 안도 사쿠라 ⓒ

나이로는 아버지뻘인 시바타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와 남녀의 관계를 스스로 맺는다. 아빠와 엄마가 되어 울타리가 있는 ‘제대로 된’ 가족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배우 안도 사쿠라는 별다른 설명 없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교합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노부요의 강한 의지를 정확히 전달한다.


매우 낯설고 불편할 수 있는 시바타와 시바타의 결합이고 시각적 이미지로도 일반적이지 않은 남녀의 모습이지만, 어떤 섹스보다 숭고하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 의의를 더하는 게 안도 사쿠라의 힘이다. 과연 서른을 넘긴 배우에게서 나올 수 있는 무게이고 에너지인지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는 우리, 이치코. 영화 '백엔의 사랑' 스틸컷 ⓒ이하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씨네룩스

배우 안도 사쿠라가 20대 후반에 촬영한 영화 ‘백엔의 사랑’(2014)을 보면, 4년 뒤 ‘어느 가족’(2018)이 예견된 명연기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제목이 달랐다면 더 많은 한국 관객이 봤을까 싶을 만큼 가벼운 타이틀. 막상 영화를 보면 안도 사쿠라가 향후 큰일을 낼 배우라는 걸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단지 ‘어느 가족’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기대다.


‘백엔의 사랑’에서 안도 사쿠라가 표현한 이치코는 자신의 인생을 천 원(100엔)짜리 취급한다. 일할 생각 없이 도시락집을 하는 엄마의 집 2층에 기생하며 이혼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동생과 말싸움이나 벌인다. 동생의 아들, 조카와 동급인 듯 온라인 게임에나 몰두한다. 급기야 동생과 머리끄덩이 잡으며 육탄전이 벌어지고, 이치코는 독립을 선언한다. 말은 뱉었고 돈 한 푼 없는 이치코는 엄마의 돈으로 집을 구하고 자주 가던 백엔샵에 일자리를 구한다.


영화 '마농의 샘'에서 제 가슴에 마농의 리본을 꿰매던 위골랭(다니엘 오떼유 분)울 연상케 하는 이치코를 연기한 배우 안도 사쿠라 ⓒ

엄마 집에 기생할 때나 혼자 살며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나 구부러진 등으로 어기적거리며 걷고, 염색한 지 오래된 치렁치렁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닌다. 딱,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에 나와 첫발을 내딛는 모양새다.


이치코의 ‘셀프 천 원짜리 인생’의 절정은 백엔샵에서 바나나만 사가는 한물간 복서가 놀러 가자는 제안에 바로 응하고,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교감도 없이 ‘바나나맨’과 동거를 시작하는 선택에서 드러난다.


스스로 자신을 아끼지 않는데 누가 귀히 여기겠는가. 백엔샵의 동료 남자는 이치코에게 자꾸 술을 먹이고, 취한 틈을 타 모텔로 끌고 오고, 싫다고 거부하며 도망치는 이치코를 폭력으로 때려눕혀 성폭행한다. 이치코는 1차 각성한다. 스스로 지킬 힘을 키우려는 듯 바나나맨이 다니던 복싱클럽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다 ⓒ

더불어 이치코는 자신의 작은 둥지에서 바나나맨을 돌보는 것으로 새로 시작해 보려 하지만, 남자는 이치코의 눈앞에서 다른 여자에게로 옮겨간다. 이치코는 드디어 제대로 각성한다. 어설프게 연애로 누더기 인생을 봉합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을 꼿꼿이 세우기로 한다.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는 인생, 제대로 누구의 격려도 못 받아 온 인생에 한 번은 승리를 안기겠다고 마음먹는다. 경기가 끝나고 승패에 상관없이 상대 선수와 서로의 등을 두드리는 응원을 나누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이치코의 인생에 딴죽을 거는 이는 없다. 타인뿐 아니라 자신을 함부로 대하던 이치코 자신도 없다. 복싱 훈련에 진지하게 매진할수록 굽었던 이치코의 등이 점점 펴 간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 사피엔스가 되어 간다. 배우 안도 사쿠라는 처음부터 자신의 등에 관객이 주목하도록 했다. 등을 입에 올린 적은 없었지만 등으로 숱한 말을 우리에게 건넸기 때문이다. 등으로 말하는 배우라니, 실로 놀랍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링 위에 올라 흠씬 두들겨 맞는 시합, 그 어떤 승리보다 뜨거운 카타르시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것은 그의 복서 연기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많은 배우들이 복서에 도전했는데 안도 사쿠라의 발 움직임, 펀치의 실감, 사소하게는 줄넘기 하나까지 완성도 높은 박진감을 맛보게 한다. 진짜 같은 복싱 훈련과 권투의 결과일까. 영화 절정에 이르러 펼쳐지는 시합, 그토록 사력을 다해 준비하고도 흠씬 두들겨 맞는 이치코의 모습은 흡사 우리네 인생 같아서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경기를 보며, 아무런 부가 설명도 없는 복싱을 보며 감독이 쥐어짠 바 없는 공감의 설움이 솟는다.


어떤 캐릭터를 맡든, 어떤 장면이 맡겨지든 살과 뼈를 바쳐 연기해 내듯 격렬하고도 깊이 있는 접근과 표현을 보여주는 배우 안도 사쿠라. 그의 신작 ‘한 남자’의 빠른 국내 개봉을 기다린다. 영화 ‘토네이도 걸’(2017)에서 함께했던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영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2016)을 연출한 이시카와 케이 감독, 영화 ‘퍼스트 러브’(2019)의 배우 구보타 마사타카가 함께한 영화 ‘한 남자’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