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판 된다면…현대차는 GGM을 버려라 [박영국의 디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4.04.26 10:40  수정 2024.04.26 10:43

'반값 임금', '노조설립‧임단협 유예' 약속하고 일자리 창출 차원 출범

GGM 근로자들 '임금 적다 불만'에 노조 설립하고 임단협 교섭 요구

최대주주는 광주시…위탁생산 조건 달라진다면 현대차 철수해도 무관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조립공장에서 근로자가 캐스퍼를 조립하고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

2019년 1월, 현대자동차는 광주광역시와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지속 창출을 위한 완성차 사업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광주시가 획기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적극 홍보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키로 한 것이다.


그 결과물로 ‘광주글로벌모터스(GGM)’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현대차에서 개발한 경형 SUV를 GGM에 위탁 생산을 맡기고, 생산된 차량을 다시 현대차가 받아 판매하는 사업 모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차가 ‘캐스퍼’다.


현대차는 GGM에 투자자자로 참여했고, 일감도 제공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아니다. 현대차가 보유한 GGM 지분은 19%로, 광주시(21%)에 이은 2대 주주다.


협약 체결 당시 현대차는 자사가 사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 않음을 애써 강조했다. ‘광주광역시 주도로 추진되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다’고 밝히며 광주시를 전면에 내세웠다.


최대주주가 되기엔 출자 금액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광주시가 한껏 생색을 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일까.


GGM은 자본금 2300억원짜리 회사다. 최대주주인 광주시(21%, 483억원)와 2대주주인 현대차(19%, 437억원)의 출자금 차이는 46억원에 불과하다. 연 매출 100조원대, 영업이익 10조원대의 회사가 46억원이 아까워서 최대주주 자리를 양보했을까.


배려 차원으로 보기도 어렵다. 어떤 기업이건 합작회사를 설립하면 되도록 지배 지분을 확보하길 원하고, 그럴 수 없다면 합작 파트너와 동일하게 지분을 나눠 갖는 식으로 타협을 보는 게 일반적이다. 현대차 없이는 성사 불가능한 사업을 추진하는데, 굳이 광주시를 배려하겠다고 2대주주로 물러날 이유는 없다.


현대차가 왜 GGM의 최대주주 자리를 마다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최근 GGM의 일부 근로자들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립 당시 누적 생산 35만대 달성까지 무노조를 원칙으로 한다는 약속을 깨고 사내에 두 개의 노조를 설립한 것이다. 그 중 2노조는 강성 노동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에 가입했다.


2018년 12월 5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중회의실에서 '광주형 일자리' 협상 잠정 합의안을 수정 결의한 노사민정협의회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형 일자리의 결과물인 GGM은 태생부터가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일반 완성차 기업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대신, 광주시 및 산하 기관들이 주거, 교통 등의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이런 방식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용섭 전 광주시장은 획기적인 ‘노사민정 상생’의 성과물이라고 자랑했다.


사업이 논의될 당시 현대차에게는 국내에 신규 생산설비 투자 수요가 없었다. 오히려 침체되는 내수 시장을 감안하면 공급과잉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었다. 경차를 만들어 팔 생각도 없었다. 연봉 1억원의 생산직 근로자가 1000만원대 경차를 만드는 구조로는 팔면 팔수록 손해만 늘어나는 장사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사업에 참여한 것은 광주시가 ‘반값 임금’을 바탕으로 낮은 생산비용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GGM이 위탁생산 기업으로서 현대차에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신, 현대차는 GGM에 안정적 일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6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노동계(한국노총 광주전남본부)에서도 합의한 내용이고, 근로자들도 근로 조건을 충분히 인지하고 입사했다.


누적 생산 35만대 달성까지 ‘무노조’ 및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 유예’라는 조항을 넣은 것도 쟁의 없이 임금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하지만 GGM 일부 근로자들이 노조를 설립함으로써 이런 안전장치가 깨질 수 있다는 신호를 던졌다. 1노조는 사측에 임단협 교섭을 요구하고 있고, 2노조는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다른 완성차 공장의 절반에 불과한 임금’에 대한 불만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 가입은 거대 노동단체의 힘을 빌려 회사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태생 자체가 ‘반값 임금 공장’이었고, 그 덕에 자신들이 일자리를 얻게 됐다는 점은 벌써 망각한 듯하다.


이제 현대차가 최대주주 자리를 마다한 이유가 명확해졌다. 현대차가 최대주주였다면 GGM 노조가 현대차 본사 근로자들만큼의 대우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떼를 써서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현대차는 GGM의 최대주주가 아니다. GGM에 생산을 위탁하는 고객사이긴 하지만 경영을 책임지는 위치도 아니다. GGM의 상황이 설립 취지와 다르게 돌아간다면 지분을 빼고 물량 위탁을 중단하면 그만이다.


마진을 남기기도 힘든 캐스퍼 한 차종 정도 안 판다고 현대차가 큰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캐스퍼 EV 역시 마찬가지다. GGM에 일정 기간 일감을 보장하겠다던 약속도 지킬 필요가 없다. GGM 근로자들이 먼저 35만대 달성까지 무노조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깼으니 말이다.


캐스퍼 생산을 못하게 된 GGM이 다른 데서 물량을 따오건, 공장이 폐쇄돼 근로자들이 거리에 나앉건 현대차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책임은 오롯이 GGM 구성원들이 져야 한다. 그런 미래가 바람직하게 여겨진다면 절반 이상의 직원이 민주노총에 가입해 GGM을 민주노총 판으로 만들고, 현대차만큼의 연봉을 달라며 파업을 벌이면 된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