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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의 얼굴…전혜진의 사랑, 영화 ‘리볼버’ [홍종선의 명장면⑰]


입력 2024.08.07 07:47 수정 2024.08.10 00:55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전도연과 전혜진, 두 카리스마의 만남 ⓒ이하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리볼버’(감독 오승욱, 제작 ㈜사나이픽처스, 배급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의 상영이 끝나자마자 ‘전도연의 얼굴’이라고 메모했다. 볼 때도 계속 주목이 됐는데, 시간이 갈수록 여운이 더욱 크다. 전도연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영화 ‘무뢰한’의 김혜경과는 달라야겠다는 결심, 사람에게서 감정을 걷어낸 결과 하수영 ⓒ

왜일까. 여느 때도 얼굴을 가리는 배우가 아니고 ‘짱구 이마’ 드러낸 채 표정으로 많은 연기를 하는 배우인데, 이번엔 더욱 강렬하게 하나의 이미지로 뇌에 각인된다.


첫 관람 전까지는 영화에 관한 정보에 의도적으로 눈과 귀를 막는 터라 ‘전도연의 새로운 얼굴을 찾아간 영화’라는 오 감독의 말을 알지 못했다. 연출자의 의도였다면 성공했다, 의도를 실현으로 이끄는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힘으로 우리가 34년간 봐온 얼굴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리볼버’의 제1 미덕이다.


지창욱의 낯선 표정. 자신에게 보여줄 마스크가 더 있다는 걸 과시한 캐릭터 앤디 ⓒ

놀라운 건 ‘전도연의 얼굴’, 그 강렬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창욱, 임지연, 김준한, 이정재, 전혜진, 정재영, 정만식, 김종수의 얼굴도 ‘저장’된다는 것이다. 홍보사 딜라이트의 ‘버라이어티한 얼굴들의 향연’이라는 문구에 조금도 과장이 없다.


특히 각 배우의 마지막, 혹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표정들이 압권이고 그 얼굴로 사진이 찍힌다. 주연이든 우정출연이든, 조연이든 특별출연이든 구분 없이 출연 분량의 한계를 넘어 ‘나만의 샷’을 남기는 이 대단한 배우들의 연기력에 감탄이 솟는다. 불가능에 가까운 캐스팅의 배경에는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의 대표, 한재덕의 휴먼 네트워크 파워와 발품이 큰 몫을 했다.


임지연의 표정은 영화로 확인해야 하는 ‘동영상’. 다채로운 표정을 관찰하는 즐거움이 있다 ⓒ

영화를 보기 전에 두 가지를 알고 보면 만족도가 더욱 커질 듯하다. 기자가 오해하거나 희망한 아쉬움의 포인트인데, 역으로 애초 그런 줄 안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개인적 생각이다.


하나, 영화 ‘리볼버’는 전약후강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오승욱 감독은 하수영(전도연 분)이 앤디(지창욱 분)를 삼단봉으로 후려치기 전까지 ‘리볼버’에 시동을 걸지 않는다. 침묵이 쌓이듯 영화가 조용하다. 인물들은 느리게 걷고 감정이나 서사를 개연성 있게 드러내지 않는다. 끝까지 간다고 서사가 세밀해지지 않지만 적어도 감정은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촬영감독 강국현, 미술감독 박일현, 의상감독 조상경 등이 빚은 미장센에 음악감독 조영욱이 현악기로 공감각적 아우라를 드리운 고품격 장면들에 눈과 귀를 연다면 숨죽인 전개에 자칫 벌어질 수 있는 졸음과의 사투는 면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보기 편하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 전도연 덕에 하수영의 얼굴이 더욱 영화적으로 빛난다 ⓒ

드디어 오승욱 감독은 전도연이 강단지게 휘두르는 수영의 삼단봉으로 우리를 화종사 앞 숲길로 데려간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육탄’전을 펼쳐 보인다. 영화의 제목은 ‘리볼버’, 그렇지만 ‘총알’ 몇 개면 간단히 끝나는 싱거운 게임이 아니라 분노로 강화된 의지력과 온몸의 물리력을 팔뚝에 실어 내리치는 전투다. 전반에 숨을 죽여놓은 결과 정점의 폭발력은 실제 고점보다 더욱 높고 뜨겁게 다가온다. 마음껏 즐기고 웃고 누려도 좋다.


웃고라고? 맞다. 분명 심각한 상황인데 낄낄대며 투자회사 이스턴프로미스의 골칫덩이 앤디와 형사 신동호(김준한 분), 마담 정윤선(임지연 분)과 스크린골프장 사장 조재훈(정만식 분)이 벌이는 개싸움과 살아남기 전술을 구경하게 된다. 앤디가 부른 ‘덤 앤 더머’ 주먹들까지 합세해 숲속 블랙코미디를 풍성하게 한다.

아킬레스건을 잘리고도 하수영 앞에서 쓰러지지 않는 그레이스, 배우 전혜진-전도연의 토톱 영화가 보고 싶다 ⓒ

둘, 전도연-전혜진, 공교롭게도 같은 성씨를 가진 두 카리스마 제왕 배우의 만남을 볼 수 있다. 여자 투톱 작품을 보기 드문 상황에서, 연기력이든 내적 공력이든 최고 최대라 할 두 배우의 만남만으로도 흥분이 인다.


기대가 커서일까. 두 배우의 대면 신이 단 한 번이라는 게 두고두고 아쉽다. 스토리 전개상에서도 이스턴 프로미스의 대표 그레이스(전혜진 분)에게 너무 불리한 상황, 즉 앤디가 수영의 손아귀에 잡힌 상황에서 조우하니 전혜진과 전도연의 불꽃 튀는 대결을 보기 어렵다.


그레이스가 ‘선방’ 날리고, 수영이 제대로 반격의 ‘카운터펀치’를 날렸다면 두 인물 간 긴장미뿐 아니라 극 전체의 재미와 균형감이 제고됐을 터이다. 회사명부터 이스턴 프로미스 아닌가.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2008년 연출 명작, 한계까지 밀어붙인 배우 비고 모텐슨의 숨막히는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에서 따온 만큼 대표 그레이스에게 조금은 더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었다.

명쾌하고 솔직한 인터뷰이 전도연 ⓒ

이에 대해 배우 전도연은 5일 서울 삼청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레이스와 수영의 첫 번째 만남 장면이 있었고, 촬영됐으나 편집됐다”고 설명했다.


“선상 보밋(vomit‧구토) 신이 있었어요. 관객께서 보시기에 (큰 투자회사가 수영에게 범죄를 뒤집어쓰는 대가로 약속했던) 7억 원을, 그 정도 돈을 왜 못 줘? 하실 수 있잖아요. 그 중간에 그레이스가 하수영을 불러요. ‘걔 데리고 와 봐, 돈 줄게’. 그런데 막상 만나서는, 단순 변심이죠. 대단한 앤 줄 알았는데 토나 하고, ‘못 주겠다’ (하는 거죠). 애(수영이)가 호락호락하지도 않고 그냥 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내 것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수영이 나락까지 가는 이유가 설명되는 장면이고, 그 7억에 대한 갈증에 대한 관객의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었는데 저도 아쉬워요. 하지만 감독님께서 편집을 오래 하셨고 방향성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해봤을 테니, 그러고 내린 결정이니 감독님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있었으면 좋았겠다, 그레이스에 대한 설명력, 수영이 나락으로 끝까지 가는 것에 관한 설명력이 됐을 텐데 아쉽다, 제 생각을 플러스하자면 그런 거다,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전혜진의 사진이 부족해 선택한 사진이지만, 어쩌면 영화 ‘리볼버’가 불러올 새로운 음주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 위스키에 미지근한 물 한 스푼, 영화와 더불어 유행 예감. ⓒ

영화에 이미 없는 장면을 보태 호평하자는 게 아니다. 기왕에 ‘내돈내산’으로 보는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게 즐기자는 제안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그 인물이 하는 행동의 배경에 공감하면 영화에 더욱 푹 빠져 막힘없이 헤엄칠 수 있다.


다행히 배우 전혜진은 해당 장면 없이도 그레이스의 파워를 충분히 채웠다. 수영과의 유일한 맞대결 장면에서, 사라진 전사(이전 이야기)에서 우리가 못 본 카리스마를 앤디에 대한 지긋지긋하고도 지극한 사랑으로 너끈히 메웠다. 눈빛으로 수영과 싸우고 몸으로 앤디를 구한다. 어떤 사랑인가는 영화의 반전이므로 극장에서 확인하면 좋겠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상황은 원상 복귀가 어렵고 이것은 제작환경에 직격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 시점. 어쩌면 한국영화의 살길은 붕어빵 찍듯 ‘기획으로 만들어내던 대형물’들에 물린 관객의 관심을 새로이 이끌 개성 넘치는 작품들에 있다. 감독의 뚝심이 보존된 영화, 연기파 배우들이 말도 안 되게 한데 모여 ‘낯설어서 더욱 좋은’ 신선도 높은 얼굴을 꺼낸 작품을 기다렸던 당신에게 안성맞춤 영화 ‘리볼버’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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