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공연 취소…윤석열 정부가 재현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D:이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5.05.15 14:30  수정 2025.05.15 14:30

“계엄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이 시점에 며칠 앞으로 다가온 국가 기관 주최 행사에서 갑작스럽게 섭외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작년에 광장에서 노래했다는 것”


“남북 청소년 관련 행사라 낮은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기로 하고 이미 포스터까지 나온 일에 이런 식의 결정을 한 것은 또 다른 블랙리스트 같은 오해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위에서는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가수 하림 SNS 게시글 中)


경기 양주시 효순미선평화공원에서 열린 고 신효순·심미선 양의 22주기 추모 행사에서 추모공연을 하고 있는 가수 하림. ⓒ효순미선평화공원사업위원회

최근 문화예술계 내에서 정부 기관에 의한 공연 취소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며 과거 정권에서 논란이 되었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이미 탄핵된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이는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검열의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13일 가수 하림은 통일부가 남북 청소년 관련 행사에 섭외됐으나 갑작스럽게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통일부 측은 지난해 하림이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공연한 이력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행사 예정 시기가 대선 기간이라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로 섭외를 중단한 것”이라면서도 “부처 차원에서 배제 방침이나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 및 일각에서는 사실상 정부 기관이 특정 예술가의 정치적 표현을 이유로 활동을 제약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중앙선대위 K-문화강국위원회·문화예술위원회는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특정 정치적 입장을 가진 예술인에게 불이익을 줬다면 이는 명백한 헌법적 권리 침해”라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재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하림의 공연 취소 사태 이전,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 집회 무대에 섰던 가수 이승환 또한 유사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앞서 구미시는 구미시문화예술회관을 이승환에게 콘서트용으로 대관했다가, 지난해 12월 20일 ‘정치적 선동 및 오해 등의 언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청했다가 이승환이 이를 거부하자, 콘서트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대관을 강제 취소했다. 구미시가 제시한 이유는 보수 우익단체와 관객 등의 충돌이 우려된다는 ‘안전상의 이유’였다.


당시 이승환은 “구미시는 대관 일자가 임박한 시점에 특정 시간까지 ‘서약서를 작성하라’는 부당한 요구를 했다”며 “2024년 12월 한 음악인은 공연 직전 ‘십자가 밟기’를 강요당했고, 그 자체가 부당하기에 거부했고 공연이 취소됐다”고 반발했다. 이어 이승환은 김장호 구미시장과 구미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2억5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어 예술계 전반에 걸쳐 큰 파문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전례가 있다. 당시 블랙리스트는 특정 사상이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예술가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거나 활동에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 작품이 수상하자 관련 기관에 엄중경고를 내린 ‘윤석열차’ 예술 검열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공연 취소 및 대관 불허 사태들은 이러한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이러한 검열과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8일에도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대토론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가칭 ‘블랙리스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민주당 역시 “이번 사건(하림의 공연 취소 사건)을 포함한 정치적 배제 사례를 조사해 정권 교체 이후 신속히 시정할 수 있는 대응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정책본부에 제안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1월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화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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