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한국 장편영화가 베니스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2012년 故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이후 13년 만이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장편영화가 경쟁·비경쟁 부문 모두에서 배제된 상황 속 오랜만에 전해진 희소식이자 박찬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하게 만드는 결과다.
박 감독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로 베니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후 두 번째 진출이며, 칸 감독상을 수상한 '헤어질 결심'(2022) 이후 3년 만의 신작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어쩔수가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해고된 중산층 남성이 재취업을 위해 벌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박찬욱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사회적 통찰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등 국내 최정상 배우들이 참여했다. 박 감독이 앞서 '친절한 금자씨로' 젊은 사자상, 베스트 이노베이션상 등 비공식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어 이번에도 주요 트로피를 노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찬욱 감독의 베니스 경쟁 진출이 더욱 주목 받는 이유는, 베니스 경쟁 부문과 한국영화의 오랜 공백 때문이기도 하다. 베니스영화제는 한국영화와 유서 깊은 인연을 가진 영화제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경쟁 부문에 초청돼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영화가 3대 국제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에서 처음으로 트로피를 거머쥔 사례로 남았다.
이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 김기덕 감독의 '빈집'(2004) 등이 연이어 수상하며 흐름을 이어갔고, 2012년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후 10년 넘게 경쟁 부문 초청은 끊겼고, 한국 대작들이 9월의 베니스보다 5월 칸 영화제 출품을 우선시하면서 베니스와의 인연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 사이 베니스에서는 비경쟁·오리종티 섹션을 중심으로 만 간간히 초청이 이어졌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박찬욱의 경쟁 부문 진출은 단절됐던 명맥을 다시 잇는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초청은 분명한 쾌거지만, 그 주인공이 또다시 박찬욱이라는 사실은 한국 영화계가 여전히 몇몇 '기성 거장'의 이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국 영화의 국제 경쟁력이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 제한된 이름에 집중된 구조는 세계 영화계 흐름과의 간극을 점점 벌어지게 만든다.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후카다 코지, 프랑스의 쥘리아 뒤쿠르노, 중국의 웨이슈준 등 1980~90년대생 감독들이 세계 영화제 경쟁 부문에 꾸준히 진입하며 세대 교체를 이끄는 흐름과 비교하면, 한국 영화계는 여전히 '거장 감독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단순히 젊은 감독이 부족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국제 무대에 설 수 있는 제작 구조와 기획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데 있다. 단편으로 가능성을 인정받더라도 장편 데뷔까지의 간극은 여전히 크고, 데뷔 이후에도 세계 영화제 경쟁 부문을 목표로 한 장기적 설계는 드물다. 많은 경우 상업성과 스트리밍 중심의 기획이 우선되면서, 국제영화제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주제 실험, 연출 지속성은 뒷순위로 밀린다. 박찬욱 감독이 오랜 시간 축적해온 세계관과 연출 언어가 이번 초청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결국 그러한 축적이 가능한 감독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현재 되돌아온 시점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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