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는 가두지만 기술을 원한다…미국 제조업 부활의 역설[기자수첩-산업]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09.16 07:10  수정 2025.09.16 07:10

조지아주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한국인 기술자 300여 명 구금

미국은 제조업 부활 외치면서 외국 기술자 체류는 제한

이번 사건, 한국 기업이 미국 내 투자 주도권 확보할 계기 될 수 있어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기술자 300여 명이 최근 미국 이민국 단속에 걸려 구금됐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까다로운 미국 비자 제도가 있다. 취업 비자 발급은 절차가 복잡하고 발급 수량도 제한돼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 기술자 상당수가 정식 비자가 아니라 단기 체류용 전자여행허가(ESTA)로 미국을 오가며 근무해왔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불안정한 체류 형태가 반복된 셈이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던 부분인데 이번에 보여주기식 단속으로 과도하게 대응했다”며 “쇠사슬을 채우는 방식까지 동원한 것은 인권적으로도 굴욕적인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 정부는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 산업을 지탱할 외국 기술자의 체류는 막아 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드러난 일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적 태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외국 기업이 미국에 들어올 때 일정 기간 자국의 전문가를 데려와 미국 근로자를 가르치고 훈련시키길 바란다”며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점차 우리나라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외국의 기술은 받아들이되 외국인 고용 확대는 제한하겠다는 메시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일회성 사건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외국 자본과 기술 유치를 원하면서도 인력은 통제하려는 태도를 보인 이상, 같은 갈등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이후 본격화됐으며 현대차그룹, LG에너지솔루션뿐만 아니라 삼성SDI, SK온 등 주요 국내 기업들이 수십조원 규모의 공장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런 투자 행렬에 또 다른 리스크가 있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단순히 공장만 짓는 문제가 아니라, 공장을 운영할 사람을 안정적으로 배치할 수 있느냐는 더 근본적인 문제다.


그렇다고 이번 사건을 단순한 위기로만 볼 필요는 없다.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면서도 숙련된 외국 인력 없이는 생산기지를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셈이 됐다. 결국 비자 문제 해결 없이는 공장 가동도, 추가 투자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전략이다. 미국이 문제 해결 없이는 생산 지연과 투자 차질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번 사태를 새로운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위기를 협상 지렛대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 구금 사태는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미국 내 투자와 운영에서 주도권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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