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충충' 백지혜 "정서적 고립·체중 감량, 지숙으로 살아낸 순간들" [30th BIFF]

데일리안 (부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09.22 08:31  수정 2025.09.22 08:31

'충충충' 백지혜 "정서적 고립과 체중 감량까지, 지숙 되기 위해 몰입"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충충충'은 '충동, 충돌, 충격'의 앞 글자를 딴 제목처럼, 세 청춘의 욕망과 불안이 부딪히며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지숙이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배우 백지혜는 가난과 폭력, 애정 결핍 속에서 끝없이 허기를 느끼는 소녀를 연기하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체중을 줄이며 극한까지 자신을 밀어붙였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순간부터 “꼭 하고 싶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는 그는 떨림과 벅참을 동시에 안고 지숙의 세계를 관객에게 건넨다.


영화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지숙(백지혜 분), 용기(주민형 분), 덤보(신준항 분) 앞에 꽃미남 전학생 우주(정수현 분)가 등장하며 시작된다. 우주의 존재가 이들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사랑과 집착, 배신으로 번져가며 파국으로 향한다. 한창록 감독은 이를 MTV 콜라주 같은 파편화된 영상과 질주하는 비트로 표현하며 강렬한 청춘의 초상을 완성했다.


백지혜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충충충'을 선보이게 돼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큰 행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영광스러워요. 믿기지도 않고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박찬욱 감독님을 오가며 마주쳤는데 너무 떨렸어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충충충'에 끌린 건 시나리오를 처음 읽은 순간부터였다. 이야기가 단순히 한 인물의 시선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겹의 시선이 얽히며 인물을 다각도로 드러내는 방식이 강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꼭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다 읽고 나서는 감독님의 단편을 전부 찾아볼 정도였죠. 역시나 인상 깊었고, 그래서 더더욱 이 작품을 만나고 싶었어요. 그렇게 오디션을 보러 갔죠."


애정 결핍을 갖고 있는 지숙은 백지혜에게 연민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긴 인물이었다.


"지숙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구조적으로 가난과 폭력에 노출돼 있어, 작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보였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욕망을 실현하려는 주체적인 인물이기도 해요. 저와 닮은 부분도 있었고요.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갈급함, 마음의 가난함 같은 것들이요. 저 역시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지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지숙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일부러 자신을 철저한 고립 속에 두었다. 원래 밝고 명랑한 성격 탓에, 자칫 지숙의 공허함이 흐려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숙의 삶은 매순간 서바이벌 같았어요. 연기하면서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뭔가를 잃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갈등이 늘 있었죠. 원래 성격이 너무 밝아서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외로워져야 지숙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거식증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 감량도 불가피했다.


"무조건 다이어트를 해야 했어요.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지만, 분장팀이 최대한 황폐하게 보이도록 세심하게 도와주셨어요."


한창록 감독과는 촬영 전부터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던 중 우주를 처음 집에 초대하는 장면에서 받은 디렉션을 계기로, 그는 지숙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됐다.


"우주를 처음 집에 초대하는 장면에서 감독님이 ‘지숙이 과거의 상처를 부끄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연민을 이용해 살아남으려 한다는 감정으로 연기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때 깨달았죠. 지숙은 살아남기 위해 연민마저 이용하는 인물이구나, 하고요."


극 중 지숙에게 우주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마지막 희망 같은 존재다. 아버지에게 느끼던 공포와 무력감을 대신 이겨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 믿음은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극 중 지숙은 우주에게서 처음으로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과 안도감을 느낀다. 그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존재라고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다.


"우주는 지숙이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인물이었을 거예요. 강한 남자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겠죠. 하지만 절대 아니었지만요."


지숙이 우주를 특별하게 여겼다면, 용기는 언제나 곁에 있어 특별히 의식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는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용기는 항상 곁에 있어서 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죠. 그런데 사라지고 나면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존재 같아요. 지숙은 결국 빛을 잃었을 것 같아요. 그 당시엔 몰랐지만,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잃어버린 게 용기였다는 걸 알게 되지 않을까요.”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백지혜는 어린 시절 발레를 오래 배웠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순간이 좋았지만, 순수예술의 길은 너무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런 딸을 본 어머니가 예고 연극영화과 진학을 권유했고, 중학교 3학년 때 연기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때의 설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는 '배우가 돼야지'라는 거창한 꿈을 꾸진 않았어요. 그저 무대 위에 있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책 읽고 이야기에 빠져드는 걸 좋아했는데, 연기는 그 모든 걸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일이었죠."


롤모델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샤를리즈 테론과 배두나를 언급했다.


"샤를리즈 테론처럼 스펙트럼이 넓고 멋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예쁘게만 보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 말이에요. 배두나 선배님도 너무 좋아요. 인형 같은 캐릭터부터 독특하고 실험적인 캐릭터까지 다 소화하시잖아요. 평범하고 착하기만 한 인물은 연기하는 재미가 없어요. 저도 제 안에 조금은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맡아온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개성이 강했죠."


그가 '충충충'에 매력을 느낀 지점도 여기에 있다.


"이 영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어떤 메시지로 강요하지 않아요. 여러 시선에서, 여러 층위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그렇기에 더 중요하고, 많은 분들이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의 꿈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한다.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할리우드 진출도 하고 싶어요. 아시아인으로서 해외에서도 주목받을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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