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정상회담 통해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 1년 유예해 일단 '봉합'
美,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문제 언제든 재연할 수 있다고 판단
美, 日·호주 등과 희토류 협력…G7은 핵심 광물생산 동맹 출범키로
기술력·정제 노하우 등 부족 美, 희토류 등 공급망 복원 요원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 광물 무기화’에 대응해 대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십자군’을 조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상회담을 통해 희토류 문제를 일단 ‘봉합’함으로써 ‘관세전쟁’ 확전을 피했지만,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문제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만큼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희토류 문제는 부산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에서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1년간 유예하기로 했으며 이후 유예를 매년 연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특히 10월 들어 중국이 돌연 희토류 수출규제를 한층 강화하면서 희토류 통제가 단순한 무역협상의 도구가 아니라 중국이 필요할 때마다 미국을 압박하는 전략적 무기임을 명확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중 간의 희토류 ‘합의’는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가까이, 정제의 90%가량을 차지하며 사실상 공급을 독점하는 중국이 수출통제 조치를 관세전쟁의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지난달 9일 희토류 함량이 0.1%만 포함돼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수출통제 강도를 끌어올렸고, 이에 미국은 중국의 공급망과 지배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을 강화해 왔다.
이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7개국(G7)은 31일(현지시간) 중국의 희토류 통제 강화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 협정을 포함한 ‘핵심 광물생산 동맹’을 출범시켰다고 미 블룸버그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협정은 중국이 과잉 공급 또는 수출통제 등으로 핵심 광물 시장을 조작하는 것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중국의 희토류 광산. ⓒ AP/연합뉴스
G7 정상들이 앞서 지난 6월 캐나다 캐내내스키스에서 합의한 광물 공급망 보호계획을 기반으로 하는 이번 협정은 구매자가 핵심 광물 광산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고정가격에 구매하도록 약속하는 ‘오프 테이크’(offtake·사전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핵심 광물의 가격 하한선과 비축 계약과 관련된 내용 등이 담겼다. .
미국은 이와 함께 정부 산하 국제개발금융공사(DFC)와 아부다비 국부펀드(ADQ), 금속 전문 투자 사모펀드 오리온 리소스 파트너스가 컨소시엄을 구성, 18억 달러(약 2조 56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핵심 광물 확보에 나섰다. 컨소시엄은 3개 기관 외 투자를 더 받아 펀드 기금을 50억 달러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 펀드는 단기간 내에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을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0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85억 달러 규모의 핵심 광물 및 희토류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와 연계해 미국 수출입은행(EXIM)은 호주 내 7개 광물 프로젝트에 대해 22억 달러 규모의 금융 지원을 검토 중이다. 미 전쟁부(국방부)는 서호주에 100t급 첨단 갈륨정제소를 세우기로 했다. 갈륨은 반도체와 군수용 전자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광물로, 현재 세계 생산의 9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이어 아시아 순방 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말레이시아가 미국에 핵심 광물 및 희토류 원소 수출을 금지하거나 할당제를 두지 않으며, 미 기업과 협력해 핵심 광물 및 희토류 산업의 신속한 발전을 추진하는데 합의했다. 28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 직후 희토류를 포함한 주요 광물 확보 및 공급망 강화를 위한 공동 문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지난달 20일 워싱턴DC 백악관 회의실에서 서명한 핵심 광물 협정을 보여주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 CNN방송에 따르면 미·일 정상은 "미국과 일본의 국내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및 희토류 원자재·정제 공급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급망 기본합의‘(framework)에는 미·일 양국 정부와 민간 부문이 광물 채굴 및 정제 분야의 투자를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을 위한 공동 노력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지난 4월 미국의 고율관세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은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가 70% 가까이에 달해 수출통제 조치 이후 포드를 비롯한 미 자동차 업체의 일부 생산라인이 일시 중단되는 등 산업 전반에 차질이 빚어진 탓이다.
미 전쟁부는 지난 7월 미 희토류 업체 MP머티리얼즈에 4억 달러를 투자, 최대 주주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캐나다의 희토류 업체 유코어 레어 메탈스가 루이지애나주에 첫 상업용 희토류 공장을 건설하는데 1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유코어의 팻 라이언 최고경영자(CEO)는 "이건 단순한 산업 프로젝트가 아니라 맨해튼 프로젝트급 과제"라며 "이 일을 완수하려면 속도가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미 백악관도 캐나다 광물탐사 기업인 트릴로지 메탈스의 지분 10%를 인수하기로 했다. 미 경제전문 매체 CNBC방송에 따르면 백악관은 지난달 6일 알래스카 앰블러 광산 지구에서 구리와 기타 필수 광물을 채굴하는 트릴로지 메탈스와의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 파트너십에는 3560만 달러의 투자가 포함된다. 이를 통해 미 정부는 트릴로지 메탈스의 지분 10%를 보유한 주주가 됐다.
ⓒ 자료: 미국 지질조사국(USGC)
미 에너지부 역시 9월30일 오리건주 리튬 광산 태커패스를 소유한 리튬 아메리카스의 지분 5%를 인수하기로 했다. 태커패스 프로젝트에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당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제공된 대출 22억 6000만 달러가 투입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희토류 자석과 심해 채굴, 아프리카 광산 등 중국 영향권 밖 자원에도 추가 투자도 검토 중이다.
이런 가운데 미 정부는 희토류 산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MP머티리얼즈에 '가격 하한제'를 보장하기로 했다. 중국의 가격 덤핑이나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급락할 때 기업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한 조치다. 토마스 크뤼머 희토류 애널리스트는 “국제 공급망은 ‘즉시 납품’(Just-in-Time) 체계로 돌아가지만, 중국은 특정 수출 허가를 내줄지 말지 몇 달씩 결정을 미루는 행정 관료주의에 갇혀 있다”며 “이런 불확실성이 결국 서방의 공급망 자립을 재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간 자금 또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JP모건체이스는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국가안보산업투자 프로그램'을 출범시키고, 그 첫 단계로 미 아이다호의 안티몬 생산업체 퍼페투아 리소스에 75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3%를 취득했다. JP모건은 앞으로 3년 내 4200만 달러 규모의 워런트(신주인수권)도 보유하게 된다. 로이터통신은 “이 광산이 2028년 가동하면 미국의 연간 안티몬 수요의 35% 이상을 공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안티몬은 군수·배터리·합금산업의 전략 자원으로, 중국 의존도가 80%를 넘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전시 상황에서 주로 사용하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근거로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채굴을 지원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핵심 광물 사업에 금융·대출 등 투자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희토류 공급을 둘러싸고 더 이상 중국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 자료: 미국 지질조사국(USGC)
이 때문에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가 오히려 미국 등 서방의 핵심 광물산업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존 오머로드 희토류 산업 컨설턴트는 “중국이 잠자던 거인을 깨웠다”고 평했다. 시장조사업체 아다마스 인텔리전스는 오는 2030년 미국의 희토류 자석 생산능력 전망치를 3배 이상 상향 조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을 복원하려면 아직 ‘요원’하다는 시각도 있다. 희토류 정제 등 기술력과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무역관계 회복을 위한 장기적인 합의를 할 경우 서방이 다시 중국 핵심 광물에 의존하는 ‘쉬운 길’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희토류는 채굴보다 정제가 관건인데, 그 과정에서 환경오염 요인이 많다는 점도 서방 선진국들이 희토류 자체 공급망을 갖추는 걸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여기에다 희토류 산업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희토류 산업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반짝 부활에 그쳤고, 서방권의 핵심 광물산업은 수십 년간 중국에 밀려 자금력과 기술력이 크게 약화한 상태다. 더욱이 미·중 양국이 장기적인 무역 정상화에 합의한다면 서방 기업들이 다시 중국산 광물에 손을 뻗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WSJ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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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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