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얼굴이 끊긴 한국 영화, 순환 구조의 붕괴 [신인 무덤 된 스크린①]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06 14:19  수정 2025.11.06 14:19

“실패할 여유가 없다”는 ‘위험 회피’가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지 못하면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잠식하고 있다. 제작 편수가 3분의 1로 급감한 2025년, 역대급 공백기를 예고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영화계는 ‘도전’ 대신 ‘안정’을 택했고, 이는 ‘신인 배우’보다 ‘검증된 배우’를 선택하게 했다.


한때 한국 영화는 매해 새로운 얼굴들이 자연스럽게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최민식·송강호·설경구·한석규·김혜수 등이 주연 배우로 자리잡으며 산업의 체질을 바꿨고, 2010년대 중후반에는 김고은·이제훈·박정민·변요한·류준열·김태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하지만 지금도 스크린의 중심은 여전히 송강호·최민식·이병헌·황정민·설경구·이정재 등 기존 세대가 지키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20대 초반 배우들이 이미 주연으로 활약하는 반면, 영화계에서 ‘젊은 세대’로 불리는 이들조차 30대 초중반에 머물러 머무르며 세대 교체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정체는 단순히 캐스팅의 문제를 넘어, 산업 전반의 위축과 맞닿아 있다. 팬데믹 이후 이어진 침체는 산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로 번졌다. 투자 위축의 결과는 2025년 신규 영화 개봉 편수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국내 5대 주요 투자배급사(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가 2025년 개봉 혹은 개봉 예정인 한국 상업영화는 20편에도 미치지 못하며, 올해 촬영이 확정된 신규 프로젝트 역시 10편 남짓에 불과하다. 이는 2023~2024년 연간 35~37편이 개봉됐던 것과 비교해 전체 개봉 편수와 신규 프로젝트 모두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코로나19 이전 제작된 이른바 ‘창고영화’들이 개봉 일정을 채워왔지만, 2026년부터는 이 물량마저 소진될 예정이다.


영화 제작 축소는 신인 배우들이 설 자리를 더욱 좁아지게 했고, 이들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영화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기존에 ‘흥행 수표’라 불리던 배우들조차 빈번하게 흥행에 실패하는 마당에 신인을 발굴해 내세우기에는 버겁다.


일례로 2018년 최연소 ‘1억 관객 배우’ 타이틀을 얻었던 하정우는 이후 주연을 맡은 ‘클로젯’, ‘비공식작전’, ‘보스턴 1947’, ‘하이재킹’, ‘브로큰’, ‘로비’까지 6편 연속 흥행에 실패했다. 하정우란 수표도 부도난 판에 ‘신인 발굴’이란 도전을 할 리 만무하다. 영화계 미래를 위해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지만, 당장의 흥행과 수익을 저버릴 수는 없다.


이러한 한국 영화의 순환 구조가 멈춘 근본 원인은 산업 구조의 경직과 제작 주체의 보수성이다. 투자·배급사들은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위험을 최소화하는 ‘안전한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관객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대신, 실패하지 않을 ‘안정성’을 우선시한다. 시리즈물의 강세가 그런 경향을 방증한다”며 “소재가 새로워도 캐스팅만큼은 안정적으로 가려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전했다.


배급사 관계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야 늘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본질이 수익 창출인 이상, 지금처럼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는 모험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예전에는 연간 제작편수가 많아 일부 작품에서는 신인 캐스팅이나 실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지만 이제는 그런 여유가 사라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일수록 결국은 신선한 이야기와 새로운 얼굴이 답이라는 공감대는 현장에 여전히 있다”며 “지금은 여건이 어렵더라도,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고 생태계의 숨통을 트이게 하려는 시도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위험을 줄이기 위한 안전한 선택은 장기적으로 산업의 노화를 가속화한다. 신인을 잃은 스크린은 결국 미래를 잃는다. 현재의 한국 영화는 새 얼굴이 아닌 매번 봐왔던 배우들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한때 새로운 얼굴이 한국 영화의 가능성이던 시절처럼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지금은 최소한 그 순환을 다시 움직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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