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PC(정치적 올바름)' 전략이 이번에는 제대로 통했다.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주토피아2'는 전작이 남긴 씁쓸함과 실사 영화 '인어공주'·'백설공주'가 부딪힌 역풍을 딛고 '다름을 껴안는 세계'를 설득력 있게 완성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토피아 2'는 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수 210만 6882명을 기록해 2025년 개봉 첫 주말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달성한 작품이 됐다. 올해 박스오피스 흥행 1위, 2위를 차지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개봉 첫 주말 누적 164만 9079명), '좀비딸'(개봉 첫 주말 누적 186만 8709명)보다 빠른 흥행 속도다.
'주토피아2'는 주디(지니퍼 굿윈 분)와 닉(제이슨 베이트 분)이 도시를 뒤흔든 정체불명의 뱀 게리(키 호이 콴 분)를 추적하며 새로운 세계로 뛰어드는 수사 어드벤처다.
게리 역의 키 호이 콴은 지난 18일 진행된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다른 존재를 불편해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름도 괜찮다고 말한다. 그 다름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만든다”고 작품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새롭게 합류한 캐릭터 게리는 주토피아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안으로 들어온 파충류다. 위협적인 외형의 푸른 살모사지만 유쾌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진 캐릭터로, 키 호이 콴 특유의 개구지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뱀에 대한 거부감을 풀어준다.
게리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주토피아에 다시 들어오게 된 이유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다. 주토피아의 사막·툰드라·열대우림·도심 등 서로 다른 기후를 유지하는 거대한 장벽 시스템을 처음 설계한 건 살쾡이 링슬리 가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게리의 증조할머니인 살모사 애그니스 디 스네이크 즉 포유류가 아닌 파충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대 링슬리는 자신 명의의 특허로 바꾼 것뿐만 아니라 진실을 알리려던 하녀 거북이를 죽이고 애그니스에게 누명을 씌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뱀을 포함한 파충류는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혀 주토피아에서 쫓겨나고 파충류들의 서식지는 툰드라 타운 확장 공사 명목으로 눈 속에 묻힌다.
콜롬버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이 원래부터 그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 인디언들을 내쫓은 미국 건국 초기와 닮아있는 게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자신의 편견을 되돌아보게 된다.
닉과 주디가 게리를 돕는 과정에서 익숙한 주토피아 다운타운을 떠나, 눈덮인 툰드라 타운, 사하라 광장 그리고 반수생 동물과 해양 포유류, 파충류까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 '습지 마켓'으로 무대를 옮긴 것도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습지 마켓'은 물 위와 아래를 분주히 오가는 동물들, 컨베이어 벨트와 보트 액션이 뒤엉킨 그 자체로 거대한 놀이동산이다. '습지 마켓'에서 서커스 공연을 하는 물개가 돈 대신 생선을 달라고 분노하는 모습, 지하 라이브 카페에서 도마뱀이 닉과 주디에게 지렁이를 내놓고 "사실 나도 이건 안 먹는다"며 부리토를 주문하는 장면은 "다른 몸을 가진 존재들이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지니퍼 굿윈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1편과 2편 중 고르라면 감히 말하건대 2편이 더 재밌다"고 자신 있게 전했는데 이는 스토리의 퀄리티 뿐만 아니라 영화가 주는 메시지 역시 1편보다 확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즌 1의 주토피아는 초식·육식, 소동물·대형 동물 사이의 보이지 않는 위계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종 사건을 쫓으며 만난 주디와 사기꾼 여우 닉은 양 부시장 벨 웨더(제니 슬레이트 분)가 포식자에 대한 공포를 부추겨 권력을 쥐려 했다는 음모를 밝혀내고 벨 웨더는 결국 감옥에 갇힌다. 언뜻 보면 악당을 잡고 닉과 주디가 그 공으로 경찰 듀오가 돼 해피엔딩 같다. 그러나 극단적인 방법임에도 초식동물과 소동물들의 권리를 바로잡고 싶어한 초식동물 양 캐릭터를 악당으로 설정하고 그가 감옥에 잡혀들어가면서 다시 '정상적이고 평화로운' 주토피아가 됐다는 결말은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의 뿌리 깊은 위계질서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일부 관객에게 씁쓸함을 남겼다.
'주토피아 2'는 보다 확실한 'PC(정치적 올바름)'의 방향을 택한다. 마을에서 내쫓긴 원주민 게리를 다시 공동체 안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계급 구조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그쳤던 전작과 달리 이번엔 차별받던 이웃을 되찾아야 한다는 해법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이는 전작을 보완한 것뿐만 아니라 디즈니의 대표적 PC 영화인 '인어공주', '백설공주'에서도 발전한 모습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23년 개봉한 영화 '인어공주'는 원작 애니메이션 속 빨간 머리 백인 주인공의 이미지를 벗어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를 에리얼로 캐스팅하며 인종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결말 역시 에릭 왕자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파트너로 그리며 전통적인 왕자-공주 구도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원작을 벗어난 스토리라인과 귀엽지 않은 실사 물고기들, 특히 주연 배우의 피부색을 둘러싼 인종차별적 공격이 전 세계에서 이어졌고, 특히 한국에서는 최종 관객 수 64만 7668명을 기록, 흥행에 참패했다.
올해 개봉한 '백설공주' 역시 라틴계 배우 레이첼 제글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뿐만 아니라 일곱 난쟁이를 다양한 인종·성별의 ‘마법 존재’로 바꿨고 주인공 스노우가 왕자의 키스가 아닌, 스스로 여왕과 맞서 왕국을 되찾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등 다인종, 주체적인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월드 박스오피스 2억 500만달러 선에서 그치며 손익분기점은 커녕 제작비도 회수하지 못하며 디즈니 실사화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PC라는 요소는 분명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 서사에 어떻게 녹이느냐가 관건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PC가 원칙으로 존재할 때는 건강할 수 있지만 그게 교조적인 '이즘'(ism)이 돼 'PC주의'가 된다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그는 "PC는 이념이다, 그리고 이념이라는 것은 문화를 통해서 발견된 것들 중 가장 고도로 잘 정리돼 있는 인식이나 주장이다. 그런데 문화는 이념보다도 훨씬 폭넓고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이 쌓아온 지혜다"라며 "이념은 너무 정제돼 있기 때문에 일상 속에 투영될 때는 다양한 해석을 전제로 하지만 문화는 굉장히 오랜 기간 직관적으로 인지돼 왔기 때문에 해석할 필요가 거의 없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백설공주'를 예로 들며 "'백설'이라고 하는 건 그 친구가 아름답다는 걸 백설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하얀색을 뜻한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적인 단어가 되고, 하얗지 않은 피부색의 인종이 백설공주를 해야 한다는 흐름으로 가면 관객들이 보기에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며 "'예쁘다'는 건 하나의 비유적 표현인데 그것이 마치 원관념인 것처럼 돼버렸다. 사실은 보조 관념인데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다 보니 원작 백설공주가 쓰여진 당시, 혈연이나 결혼 제도 안에 들어가야만 가족이 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 같은 건 사라져 버린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주토피아 2'는 보조 관념을 적극 활용했다. 김 평론가는 "'주토피아 2'의 경우 보조 관념으로 인종 차별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영화를 보면서 인종과 성별을 놓고 싸울 부담은 덜어지고 '나한테도 저런 친구가 있었지' 혹은 '저런 친구들이 불필요하게 비교 당하거나 소외되면 안 되지'하고 느끼게 만든 것이다"라며 "문화적인 방법, 다양한 삶의 비유를 통해 자기 이념을 풀어내면 이해도 잘될 뿐만 아니라 그걸 두고 불필요한 논쟁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디즈니가 PC 요소를 영화에 넣는 건 계속될 것이다. 이에 김 평론가는 "디즈니가 PC와 PC주의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본질적인 측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PC 요소를 살리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하면 '주토피아 2'와 같은 긍정적인 사례가 계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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