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새로운 체험' 내세웠지만, 관객은 “재밌는 영화·표값이 먼저” [D:영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5.12.11 08:51  수정 2025.12.11 08:53

연말 극장가 침체 속에서 CJ CGV와 제작사 아리아 스튜디오가 관객 참여형 ‘인터랙티브 시네마’를 극장 부흥 카드로 꺼내 들었다. AI 에이전트가 관객의 목소리와 선택에 반응해 영화 전개를 바꾸는 새로운 포맷이다. 제작진과 배우는 ‘극장만이 줄 수 있는 체험’을 내세웠지만 관객이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재밌는 작품과 저렴한 표값이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9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CGV에서 열린 ‘인터랙티브 시네마’ 라인업 쇼케이스에서 아리아 스튜디오와 CJ CGV는 관객이 직접 영화 스토리에 개입하는 형식의 작품을 3편을 소개했다. 애니메이션 ‘인터랙티브 신비아파트: 극장귀의 속삭임’, 버추얼 아이돌 문보나를 내세운 ‘버추얼 심포니: 더 퍼스트 노트’, SF 미스터리 스릴러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가 그 주인공이다.


‘신비아파트’ 시연에서는 도깨비 신비가 스크린에서 “왼쪽이 좋냐, 오른쪽이 좋냐”고 묻자 관객석에서 “왼쪽”, “오른쪽”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악령 ‘극장귀’가 “나를 쫓아내고 싶으면 소리를 질러보라”고 하자 “나가!”라는 고함이 극장을 메웠다. 관객의 외침 크기에 따라 에너지 볼의 크기가 바뀌는 장면은 AI 음성 인식과 실시간 연출이 결합된 인터랙티브 포맷을 잘 보여준다.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는 2080년 ‘쌀(ARI)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관객은 미제 아파트 모자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뇌 속으로 들어가는 ‘자원자’가 된다. AI 간호사 아리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의 발화·선택은 실시간 영상으로 생성돼 기억의 한 조각으로 배치된다. 채수응 감독은 “캐릭터가 관객 데이터를 재학습해 회차마다 더 똑똑해지는 구조”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선택지에 따라 장면과 결말이 달라지는 구조는 이미 게임이나 OTT 인터랙티브 콘텐츠에서 익숙한 방식이다. 이에 대해 채 감독은 “게임이 1대1 스토리텔링이라면 극장은 다수와 함께 선택을 주고받는 구조”라며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이게 살인이냐, 정당한 수사냐’를 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과정 자체가 극장의 사회적 체험”이라고 답했다.


그는 “극장까지 부지런히 나오는 관객이라면 단순히 보기만 하기보다 무언가 하고 싶고,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고 봤다”며 “그 욕구를 받아줄 수 있는 집단 체험형 스토리텔링을 설계했다”고 말했다.


개인의 취향에 맞춰 콘텐츠가 자동 추천되는 OTT 시대에, 극장을 여전히 ‘타인과 소통하는 집단 경험의 공간’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지하철 자리 다툼과 사소한 갈등 영상이 SNS를 도배하는 요즘, “모르는 사람들과 한 극장 안에서 생각을 공유하는 경험”이 얼마나 넓은 층의 관객에게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채 감독은 인터랙티브 시네마를 ‘극장 부흥을 위한 시도’라고 소개했다. 이처럼 영화계가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극장가의 침체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 한국영화 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관객 한명이 지불한 평균 관람 요금은 9702원으로, 2023년(1만80원)보다 3.8% 낮아졌다. 이는 멀티플렉스 3사의 성인 정가(1만 5000원, 일반 2D 기준)의 64.7% 수준이다.


관객 수와 관람 횟수는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2024년 전체 극장 관객 수는 1억 2313만명으로 2019년(2억 2667만명)의 54% 수준에 그쳤다. 박스오피스 매출은 1조 1945억원으로, 팬데믹 직전의 절반 가량이다. 한국 국민 1인당 연간 극장 관람 횟수는 2.40회로 2023년(2.44회)보다 소폭 줄었다.


올해 상반기 성적은 더 어둡다. 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상반기 한국영화 산업 결산’ 자료를 보면 올해 1~6월 극장 매출액은 4079억원으로 전년 동기(6103억원) 대비 33.2% 감소했다. 같은 기간 관객 수는 4250만명으로 32.5% 줄었다. 상반기 평균 관람 요금은 9599원으로 지난해 상반기(9698원)보다 다시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올 여름 추가경정예산 271억원을 들여 영화관람 6000원 할인권 450만장을 배포했다. 7월 25일 1차로 배포된 할인권은 전국 멀티플렉스와 독립·예술영화관에서 사용됐고, 9월에는 사용 기한 내 소진되지 않은 잔여분 188만장이 추가로 재배포됐다.


ⓒNEW

할인권이 풀린 주말에는 관객 수가 일시적으로 크게 늘기도 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월 1~3일 사흘 간 극장 관객수는 219만명으로 전주(173만 1167명) 대비 26.8% 급증했다. 7월 30일 개봉한 영화 ‘좀비딸’은 할인권 배포의 최대 수혜를 받아 관객수 563만6018명 기록, 2025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영화표 값이 내려가면 극장에 가는 관객 수가 늘 것이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24년 11월 발표한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도 비슷한 결과다. 극장 관람 빈도가 줄었다는 응답자를 대상으로 감소 이유를 물었을 때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24.8%)와 함께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24.2%)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향후 1년간 극장 관람을 줄일 계획이 있다고 답한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도 ‘영화와 극장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라는 응답이 31.8%로 1위를 차지했다. ‘극장 개봉 후 조금만 기다리면 OTT 등 다른 관람 방법으로 볼 수 있어서’라는 응답은 16.6%에 그쳤다.


OTT 경쟁이 영향을 미치고는 있지만 관객이 체감하는 영화와 극장의 1차적인 문제는 만족스럽지 않은 콘텐츠와 높은 표값이다. 인터랙티브 시네마는 관객의 목소리에 따라 이야기 갈래가 열리고 그 기록이 다시 AI 캐릭터와 세계관을 키우는, 지금까지의 극장 관람과는 분명 다른 시도다. 다만 극장 침체의 ‘해결책’으로까지 기대를 걸기에는 무리가 있다. 관객이 극장에 바라는 건 색다른 체험이 아닌, 합리적인 가격에 볼 수 있는 재밌는 영화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면 극장과 관객의 ‘동상이몽’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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