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록 같은 ‘퍼석한’ 모습 좋아해 줄 줄은… 차기작 선택 때도 과감히 고려할 것”
191cm의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외모. 그간 배우 문상민을 수식하던 단어들은 주로 ‘재벌 남주’나 ‘순정 만화 주인공’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속 문상민은 다르다. 화려한 겉모습을 지우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방황하는 청년 경록이 돼 우리 앞에 섰다.
ⓒ넷플릭스
2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문상민은 인터뷰 내내 답변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랐다. 정작 본인의 어머니는 “저 장면은 아쉽다”, “얼굴이 좀 부었네”라며 냉정하게 모니터를 해주신다며 웃어 보였지만, 질문을 던지면 고개를 깊이 숙이고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떼는 모습에서 그가 이번 작품에 쏟은 진심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울컥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첫 장면에서 어린 경록이 저로 바뀌며 아빠를 보는 눈빛, 그리고 나레이션이 들리는데 문상민이 보이지 않고 그저 영화 속 인물이 너무 짠해 보였어요. 특히 미정(고아성 분)과 행복하게 웃는 장면에서 더 눈물이 나더라고요.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슬퍼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죠”
감정의 진폭이 컸던 오열 신에 대해서는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극 중 아빠의 영상을 본 뒤 무너지는 장면은 문상민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사실 그렇게까지 엉엉 울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감정이 올라오니 발음이 뭉개질 정도로 눈물이 나더라고요. 신인 배우인 저의 첫 테이크에 담긴 날것의 진심을 믿고 오케이 해주신 감독님 덕분에 더 과감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항상 '너의 진심이 담겨 있으면 뭐든 좋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문상민은 이번 작품을 ‘세 명의 청춘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정의했다. 특히 고아성, 변요한이라는 든든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경록이 숨 쉴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아성 누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지만 현장에서는 커리어 격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게 저를 경록으로만 대해주셨어요. 제가 고백하는 신에서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데도 끝까지 제 눈을 맞춰주며 환경을 만들어주셨죠. 요한이 형과의 키스신은 형의 아이디어였는데, 그 묘한 분위기를 확실히 끊어주신 덕분에 라이브한 장면이 나왔어요. 미정과의 서툰 키스신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제가 능숙하게 한 줄 알았는데, 영화로 보니 너무 서투르더라고요(웃음). 그게 오히려 경록다워서 좋았습니다”
작품 속 경록의 방황을 상징하는 세라와의 모텔 신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석을 내놓았다. “미정이 떠나면 경록은 다시 ‘0’으로 돌아가 희미해지는 인물이에요. 그 장면은 경록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황이었죠. 결코 비극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마지막 아이슬란드 장면에서 경록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사랑해’라는 말을 전하며 자신의 최종적인 얼굴을 찾았으니까요”
실제로 경록처럼 깊은 사랑을 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한 청년의 답변이 돌아왔다. “돌이켜보니 그런 사랑을 했던 적이 있더라고요. 근데 사실 그 당시에는 그게 사랑인 줄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게 사랑이었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런 서툰 경험들이 이번 영화에서 사랑을 배워가는 경록이를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넷플릭스
문상민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매끈한 면봉이 아니라 까슬까슬한 얼굴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열심히 해봤어요. 근데 저는 연기하면서 굉장히 거친 늑대인 줄 알았는데, 막상 화면 속 저를 보니 ‘아기 늑대’나 ‘멍뭉이’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스스로를 ‘아기 늑대’라 칭하며 쑥스러워했지만 극 중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경록을 소화할 때만큼은 남다른 자신감을 드러냈다. “저희 학교가 움직임으로 유명하거든요. 입시를 준비할 때부터 무용 연습을 많이 했어요. 무용수들처럼 전문적이진 않아도 선을 잡거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는 익숙했죠. 실력에 비해 무용에 대한 자신감이 너무 넘쳤던 것 같아요(웃음). 경록에게 무용은 상황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하지만 그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오브제였기에 정말 열심히 준비했죠”
재학 중인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입시 비결을 묻자 그는 웃으며 뒷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첫 입시 선생님이 성대 출신이셔서 그 영향이 제일 컸고요. 많은 분들이 제 얼굴이 성대 이미지랑 잘 어울린다고 해주셔서 고2 때부터 성대를 1순위 목표로 삼았어요. 제가 이런 말 한다고 혼나지 않을까 싶긴 한데(웃음), 정말 그랬어요”
지독한 케이팝(K-POP) ‘덕후’의 면모도 가감 없이 드러났다. “연습생을 했던 건 아니고요. 원래 케이팝을 좋아했어요. 근데 뮤직뱅크 MC를 하며 아티스트들의 에너지를 직접 보고 더 푹 빠진 거 같아요. 멜론(음원 사이트)으로 듣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요즘은 엔시티 위시랑 라이즈를 좋아해요. 아 세븐틴도요. 꼭 써주세요. 세븐틴(웃음)”
마음 한켠에 아이돌을 향한 ‘추구미’가 있다는 그는 팬들이 원한다면 개인 유튜브 채널도 열어보고 싶다고 한다. "브이로그 같은 것도 하고 싶어요. ‘상민이의 일상’ 이런 느낌으로요. 제가 케이팝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그런 소통이 즐거울 것 같아요"
배우라는 역할 너머 문상민으로서 대중과 마주할 갈증도 느끼고 있었다. “목표가 있다면 팬분들, 대중분들과 좀 더 많이 만나 뵙고 싶다는 거예요. 드라마나 영화는 찍고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니까 그 공백을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예능이 될 수도 있고요. 최근 유튜브에 나가보니 제 모습 그대로 나가는 게 새로운 경험이더라고요”
연초부터 ‘열일’ 중인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뷰티 인 더 비스트’를 촬영 중이다. 유독 선배들과 호흡을 맞출 기회가 많았던 그는 이번 현장에서 느끼는 색다른 에너지를 전하기도 했다. “사실 데뷔 때부터 선배님들과 함께하는 환경이 익숙했어요. 선배님들 옆에서 질문하고, 그분들의 연기를 보고 배우며 따라가는 게 제 습관이었거든요. 이번 ‘파반느’에서도 아성 누나나 요한이 형의 배려 덕분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 촬영 중인 ‘뷰티 인 더 비스트’는 ‘방과 후 전쟁활동’ 이후로 오랜만에 저와 나잇대가 비슷한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선배님들과의 현장이 묵직한 배움의 장이었다면 지금은 또래들만의 넘치는 에너지와 활기가 가득해서 그 분위기가 새롭고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워요”
마지막으로 문상민은 대중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대해 신기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표했다. “기존에 했던 왕자님이나 재벌 남주가 아닌, 제 안의 ‘퍼석한 이미지’를 좋아해 주시고 ‘맞는 마스크를 찾았다’고 해주시는 반응들을 봤어요. 저도 제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고, 또 이걸 좋아해 주실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이런 모습까지 좋게 봐주시니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도 더 과감하게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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