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그 극성기에 몰락을 준비한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3.11 10:53  수정 2026.03.11 10:56

권력 장악한 대통령, 개혁보다는 관리와 안정이 중요

여당 내 개혁세력 욕심 앞서면 안돼

권력의 위엄 과시와 급진세력의 과도한 열정 결합은 민주주의 후퇴 초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202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2025.11.04.ⓒ데일리안 DB



“그냥 이렇게 싫어요. 이재명 지사 생각하는 자체가 싫어요. 이재명 지사 이야기하면 항상 분란이 일어나요. 너무 격렬하게 싸우고, 압수수색 받고 그러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도와주기 싫어요.”(mbn ‘판도라’·2018년 10월 22일)


“싸움은 제가 할 테니 대통령은 일만 하십시오. 궂은일, 험한 일, 싸울 일은 제가 하고 협치, 통합, 안정의 꽃과 열매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문화일보·2025년 8월 2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그의 인식이 7년 사이에 이처럼 확연히 달라졌다. 전자는 자신이 힘이 돼줄 수도 있는 위치에 있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사람이어서 도와줄 생각도 없다는 직설적 표현, 후자는 극진한 충성 서약이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파머스턴)더니 정 대표가 그걸 제대로 입증해 줬다.


웬만하면 서로 아주 등지고 살만도 한데, 정치의 장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익이다. 여당의 대표가 되려고 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맹세를 건너뛸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가졌든 이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이 아주 흡족하게 여길 말을 하는 게 정치적 생존전략이라고 하겠다.


민주당과 청와대 사이의 불협화음


대통령과 여당대표는 동지적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 정 대표는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다짐했던 대로 강성 정치를 이어왔다. 자신이 법사위원장을 맡았을 때도 그랬지만 대표가 된 다음에도 국회를 민주당의 법안 인쇄소, 야당 조롱무대로 만들었다. 압도적 거대여당과 그 우당을 자처하는 조국혁신당의 입법연대는 의회 내에서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과 청와대간 불협화음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특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전당대회 지도부 선출 1인1표제를 정 대표가 밀어붙이면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합당은 지방선거 후로 미뤄졌다.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우여곡절 끝에 중앙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그게 정 대표의 연임을 위한 장치라고 인식된 탓이다. 청와대도 같은 의심을 하고 있다면 장차 대통령과 정 대표의 갈등으로 비화할 법도 하다.


최근엔 검찰의 보완수사권 문제로 다시 청와대와 당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검찰개혁 및 사법개혁과 관련해 “필요한 개혁을 하더라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모두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결과가 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엑스(X:옛트위터)에 썼다.


7일에도 X를 통해 “나의 의견만이 진리이자 정의이고, 너의 의견은 불의이고 거짓이라는 태도는 극한적 대립과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올렸었다. 민주당의 강경파를 겨냥한 글이라는 글로 짐작됐다.


정부로서는 신설될 공소청이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반해 당 강경 의원들은 기어이 이 권한까지 박탈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야당 대표일 때와 대통령 때의 생각이 같을 수가 없다. 법제의 지나친 변경은 이에 대한 신뢰구조의 훼손을 초래한다. 집권을 위한 투쟁을 할 때는 현상 타파를 목표로 삼게 마련이지만 집권 이후엔 안정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강경일변도의 여당은 오히려 야당보다 더 부담스러울 수가 있다.


대통령은 안정, 당 대표는 격변 추구


정 대표의 뜻도 같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이 대통령은 안정을 우선적 가치로 인식하게 됐겠지만 그에게는 변화, 그것도 격변이 필요하다. 그걸 추진하려면 여당이 강력한 개혁(그들이 말하는)의지를 유지해야 하고 자신이 그 일을 진두지휘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지금처럼 여당이 강력했던 때가 없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자기들이 구상한 개혁작업이 미완에 그칠 우려가 있다. 정 대표나 추미애‧김용민 의원 등의 생각을 유추하자면 그렇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가 ‘일심동체’ 의식을 지켜간다면 지금까지 일관되게 강행해 온 징벌정치, 방탄입법에서 벗어나 민주상식의 궤도로 회귀할 수도 있다. 서로 폭주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당 외부의 지지세력들이 정부‧여당의 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되게 조장하는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유시민 작가가 민주당의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 결성에 대해 ‘미친 짓’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이 모임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잣대로만 세상을 재단하는 편협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유튜버 김어준 씨는 이 대통령의 SNS 글에 대해 “대통령은 보통사람으로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그런 객관 강박이 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직접 건드린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고위 검사들에게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를 요구했다”는 주장이 김 씨 방송의 출연자에게서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친명계인 민주당의 한준호 의원이 “이제는 찌라시(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음모론으로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느냐. 정말 어이가 없다. 이재명 대통령님은 윤석열 정권의 정치 검사들에게 집요하게 물어뜯기고 난도질당했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님은 버텨냈고 결국 이겨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력 나눠 갖기 원하는 민주당


정권출범 초기부터 청와대‧여당 사이에 알력이 표면화하고 있다는 것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걱정스런 현상이다. 권력다툼으로 비화될 소지를 안은 갈등이라는 점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은 이미 권력을 장악한 입장이다. 이제부터는 그 권력을 잘 관리함으로써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과제만 남았다. 그러나 여당의 입장에서는 정권재창출의 과제가 더 절실하다. 여전히 도전세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여당 측의 과욕과 과속이 아주 못마땅하고 위태로워 보일 것이지만 당내 비명계가 이미 세력화돼 있다면 대응하기가 마땅찮다. 현실적으로 정 대표의 당 장악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의 우군 세력도 만만찮다. 좌파진영 내에서는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다. 이제 위력으로 당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게 됐다.


당에 대한 장악력을 회복하려면 대리인을 파견하는 게 대안이 될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차기 당 대표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그래서 나오는 듯하다.


양측이 공동의 위기의식을 갖고 결속을 다시 다질 수도 있겠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의 맛을 만끽하게 된 당내 급진파가 다시 이 대통령에게 묶이고 싶어 할 리가 없다.


이 대통령은 말하자면 외래인이다. 그는 자수성가형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집요한 권력추구와 당내 대안의 부재라는 상황이 겹쳐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당 구성원들은 정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불가피하게 이 대통령을 받아들였고 기꺼이 그 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는 우리 차례라는 욕심을 낼 법하다.


정 대표가 앞서 있지만 그가 이 대통령과 같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일단은 그를 필두로 경쟁이 펼쳐질 것이고 이 대통령은 협조를 요청받는 처지가 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높이 올라 더 욕심내면 후회 남긴다


당장은 이 대통령이 지휘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해도 당에 대한 반대급부가 요구된다. 강경 개혁세력에 권력의 한 자락을 내줘야 하는 것이다. 정치의 장을 사냥터 삼게 하고, 거기에 사냥감을 풀어줌으로써 욕구불만을 해소시켜주는 게 하나의 해법일 수 있다. 징벌의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오히려 협력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적폐청산에서 기술을 연마한 민주당은 이재명 정권들어 내란청산에 몰두해왔다.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되게 법제와 정부조직의 대개편까지 곁들여졌다.


이 대통령은 권력자로서의 위력과 위엄을 과시하는 리더십에 심취하고 민주당은 완전한 좌파의 세상을 열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힐 경우 이 나라는 또 다시 장기집권의 악몽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의 연임은 당내 도전세력이 허용하지 않겠지만 민주당의 영구집권 꿈은 지속적으로 추구될 것이다. 세상을 개조하겠다는 욕구의 분출까지 겹치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는 심대하게 훼손되고 후퇴할 수도 있다.


이미 권위주의 재래(再來)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의 위세과시형 국정운영과 여당의 입법폭주가 그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경험을 핑계 삼아 경고하려고 한다. 권력의 위기는 그 극성기에 시작된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붕괴한다. 권력에 취하면 자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자제력이 없는 집단은 제동이 안 된다. 질주만 거듭할 뿐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잖다.


권력은 극성기에 몰락을 준비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유사한 경험을 해 왔다. 몰락을 면하려면 내적인 제동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제도와 의식에 그것을 확고히 심지 않으면 안 된다. ‘장기집권’, ‘영구집권’을 꿈꾸는 것만큼 어리석은 욕심도 없다. 권좌를 자신의 영광으로 채우려는 것만큼 무모한 허영도 없다.


주역에는 문외한이지만 건괘(乾卦) 여섯효(爻)의 효사(爻辭)가 아주 인상적이어서 그 중 두 개를 옮긴다.


다섯 번째 효사(九五)가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다.


‘능력과 덕을 갖춘 인물이 때를 만나 가장 높은 자리에서 그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형세를 가리킨다’라고 설명한다.


여섯 번째 효사는 항룡유회(亢龍有悔)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은 마침내 후회를 남기게 된다’는 뜻이다.


성공의 관리야말로 권력자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임을 명심하시라.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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