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 추천 후보 찬성 27.9%로 부결, 최윤범 측 후보 81.8%로 선임
檢·국세청 등 4대 사정기관 수사 속 '독립 감사' 요구 컸지만… 족쇄는 대주주가 차
"지분 크기 아닌 쪼개기 경쟁 변질"… 소유·경영 분리된 자본시장의 입법 맹점 노출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가 9일 서울 용산구 몬드리안 호텔에서 열린 제53기 임시주주총회에서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고려아연
지분 41%를 쥐고도 감사위원 한 자리를 얻지 못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MBK파트너스 얘기다.
지난달 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영풍·MBK가 추천한 박유경 후보는 찬성률 27.9%로 부결됐다. 최윤범 회장 측이 내세운 백인규 단국대 교수는 81.8%의 찬성을 얻었다. 승부를 가른 건 지난 7월 시행된 개정 상법의 '합산 3%룰'이다.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묶인 반면, 여러 계열사로 나뉜 제3자 우호 지분은 법인마다 3%씩 살아남았다. 재계에선 "지분을 많이 가진 쪽이 아니라 잘게 나눠 가진 쪽이 이기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 41% 대 18%, 숫자 뒤에 숨은 셈법
이번 결과를 읽으려면 지분율보다 주식을 쥔 '사람과 법인의 수'를 봐야 한다. 영풍이 8월 12일 공시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참고서류에 따르면 영풍 측 지분은 와이피씨 25.21%, 한국기업투자홀딩스 8.25%, 장형진 영풍 고문 3.46% 등 모두 41.13%다.
최 회장 측은 8월 6일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서 최 회장 본인(1.55%)과 특별관계자 지분을 합쳐 17.72%로 신고했다. 지분율로는 영풍 측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다만 미국 테네시 프로젝트 합작법인 크루서블JV와 한화, LG화학 등 백기사들을 더하면 전체 우호 지분은 늘어난다.
그러나 표결장에서는 지분 크기보다 주식을 쥔 '보유자 수'에 따른 셈법이 위력을 떨쳤다. 최 회장 측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친인척과 재단·법인은 53명(곳)에 이른다. 3%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피23파트너스(2.01%)와 케이젯정밀(2.00%), 최 회장 본인(1.55%)이 큰 편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0.01~1% 안팎으로 잘게 쪼개져 있다.
이 차이가 감사위원 선출에서 힘을 발휘하는 건 개정 상법의 '3%룰' 때문이다. 상법 제542조의12 제4항은 감사위원을 뽑을 때 발행주식의 3%를 넘는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한다.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쳐 3%를 따지지만, 나머지 주주는 주주별로 3%씩 인정받는다.
주총을 앞두고 시장 일각에선 "잘게 나뉜 최 회장 측 지분 17.72%는 3%룰을 피해 고스란히 행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지분을 쪼갠 효과는 뚜렷했다. 최 회장 측 우호 주주로 꼽히는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한화는 한화에이치투에너지(4.76%)와 한화임팩트(1.79%), ㈜한화(1.14%) 등 세 계열사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7.69%를 갖고 있다.
정리하면 3%룰은 지분 규모뿐 아니라 보유 주체와 합산 여부에 따라 다르게 작동했다. 공시상 41.13%를 가진 영풍·MBK 측에는 최대주주 합산 제한과 MBK 측의 별도 3% 제한이 적용됐다. 최 회장 측 일부 지분도 최대주주와 함께 묶였다.
반면 한화 세 계열사는 법인별 제한을 적용받아 합산 5.93%의 의결권을 행사했고, LG화학의 약 1.87% 지분은 개별 한도에 못 미쳤다. 공시상 '41% 대 18%'의 구도가 표결장에선 통하지 않은 이유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 감사가 절실한 때, 열쇠는 경영진 우호 지분에
이번 표결은 제도의 취지와 결과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합산 3%룰은 최대주주가 감사위원 선임을 좌우해 감사 기능을 무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최대주주와 경영진이 맞서는 회사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견제를 받아야 할 쪽은 경영진인데, 족쇄는 최대주주에게 더 무겁게 채워졌다.
고려아연이 바로 그런 경우다. 최 회장과 고려아연은 지금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원의 조사를 한꺼번에 받고 있다. 영풍·MBK 측도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 손실과 미국 폐기물 처리업체 인수, 유상증자 추진 과정을 줄곧 문제 삼아 왔다.
독립적인 감사위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41%를 쥔 최대주주가 3%룰에 묶인 사이, 감사위원을 고를 열쇠는 합산 규제 밖에 흩어진 경영진 우호 지분으로 넘어갔다. 고려아연은 이에 대해 소액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현 경영진 후보의 손을 들어준 결과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지분을 친인척과 여러 법인에 잘게 나눠 둔 쪽이 유리한 구조라면, 앞으로 경영권 분쟁을 앞둔 회사들 사이에서 우호 지분을 여러 법인에 흩어 두는 전략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모든 선한 정책이 항상 선한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며 "경영권 분쟁처럼 최대주주와 경영진이 갈라선 특수한 상황에 대한 고민도 일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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