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오리, 최고의 ‘클러치 슈터’였던 남자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9.09.05 09:46  수정

우승반지 7개 보유, 역대 최다 타이

결정적인 순간의 클러치 능력 과시

'1점차로 뒤지고 있는 종료 1초전, 마지막 슛 기회가 있을 때 당신이 감독이라면 어떤 선수를 택하겠는가'

열에 아홉은 마이클 조던, 레지 밀러, 코비 브라이언트, 래리 버드 등 전설적인 스타들의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이들에 비해 경력이나 네임밸류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역사상 최고의 ‘클러치슈터’를 놓고 봤을 때,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빅 샷 랍’(Big Shot Rob)으로 기억되는 클러치 타임의 대명사 로버트 오리(Robert Horry)다.

´최고의 클러치 슈터´였던 로버트 오리(왼쪽)가 함께 방한한 블라디 디박과 웃음을 짓고 있다.


스타는 아니었지만, 최고의 클러치슈터였던 남자

최근 ‘NBA 아시아 챌린지 2009’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한 NBA 올스타 멤버들 가운데 로버트 오리는 가장 명성이 떨어지는 선수다. 올스타전에 선정된 적도 국가대표 경력도 없고, NBA 퍼스트팀에 선정된 적도 전무하다. 오히려 그는 여러 팀을 전전하며 주전과 식스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리에게는 다른 선수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같은 올스타팀 동료인 블라디 디박이나, 팀 하더웨이, 도미니크 윌킨스는 단 한 개도 가지지 못한 심지어 ‘전설중인 전설’ 카림 압둘자바나 마이클 조던조차 능가하는 무려 7개의 우승반지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NBA에서 7개 이상의 우승반지를 보유한 선수는 모두 9명이 있다. 이중 1960년대 보스턴 셀틱스에서 플레이하지 않은 선수는 로버트 오리가 유일하다. 오리는 존 샐리(전 디트로이트)와 함께 무려 3개의 팀에서 우승반지를 거머쥔 유이한 선수다.

1992년 휴스턴 로케츠에서 NBA 생활을 시작한 오리는 94년과 95년 챔피언십 2연패를 일궈냈고, 피닉스를 거쳐 LA 레이커스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연패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2005년과 2007년에는 다시 샌안토니오 소속으로 두 번의 우승반지를 차지하며 7회 우승의 대업을 이뤘다. 90년대 이후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를 제외한 NBA 왕조들의 역사에는 모두 로버트 오리가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오리는 소위 말하는 ‘에이스’나 ‘톱스타’는 아니었다. 소속팀에서의 위상도 대개 베스트 5라기보다는 ‘주전급 식스맨’에 더 가까웠다. 이점은 후일 그의 우승기록을 폄하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내로하라는 슈퍼스타들도 시대의 운을 못 만나 우승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비해 하킴 올라주원,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던컨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과 함께했던 오리는 분명 ‘운 좋은 사나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리가 슈퍼스타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올려놓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강팀들이 오리를 필요로 했던 것은 그만큼 오리에게 남들보다 특별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승부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심장이었다.


적에서 동지로, 디박과 오리의 인연

오리는 화려한 플레이스타일을 지닌 선수는 아니었지만 승부처나 클러치타임에서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가장 많은 선수로 첫 손에 꼽힌다.

208cm의 장신에 정확한 중장거리 슛과 강심장을 겸비한 오리는 플레이오프, 특히 4쿼터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나 마이클 조던만큼 무서워지는 선수였다. 오리의 한방으로 경기의 향방을 넘어 NBA의 역사가 바뀐 장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 가운데 가장 팬들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순간은 역시 2001-02시즌 서부 컨퍼런스 결승 4차전에서 새크라멘토를 울린 한방이다. 여기서 최고의 조연이 됐던 선수는 바로 이번 올스타팀의 동료이기도 한 블라디 디박이었다.

당시 2승 1패로 앞서있던 새크라멘토는 4차전 종료 직전까지 99-97로 리드해 승리를 눈앞에 뒀다. 마지막 공격에 나선 레이커스는 코비와 오닐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고, 2초를 남겨둔 상황에서 디박이 공중볼을 외곽으로 쳐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디박이 쳐낸 공은 3점 라인 좌측에 서있던 오리에게 연결됐고 오리의 던진 마지막 3점슛은 버저비터로 이어지며 경기는 레이커스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났다.

결국 시리즈는 LA(4승 3패)의 승리로 끝났으며 4차전이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날 결정적인 어시스트(?)로 오리의 3점슛을 도운 셈이 된 디박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기회를 놓친 통한의 순간이기도 했다.

지난 3일 기자회견장에서 디박은 당시의 추억을 질문받자 “그때는 패스였다”고 농담을 하면서 장난스럽게 오리와 손가락질을 주고받으며 과거의 앙금을 벗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오리는 데뷔 이후 마지막 시즌까지 16년간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를 놓치지 않고 개근했으며, 플레이오프 통산 244경기에 출전하여 카림 압둘자바(237경기)를 제치고 최다 경기 출전기록을 세웠다. NBA 파이널 최다 3점슛(53개) 기록의 주인공으로 바로 그다.

해마다 뛰어난 스타들은 많지만, 오리 같은 경력을 지니기도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개인기량은 물론이고, 팀과 시대의 운도 잘 맞아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마지막 슛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자신감은 비록 최고의 슈퍼스타는 아닐지언정 가장 많은 우승을 부르는 사나이라는 영예를 안겨줬다.[데일리안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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