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2000만원대 중반의 소형 해치백 폴로가 25일부터 국내 판매에 돌입하면서 자동차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폭스바겐 폴로는 그동안 한해 수십 종씩 들어왔던 다른 수입차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델이다. 폭스바겐의 브랜드 파워, 골프를 통해 입증된 퍼포먼스, 디젤엔진의 고연비에 국산 중형차 수준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 경쟁 수입차뿐 아니라 완성차 업체들까지 떨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사실 폭스바겐은 대중 브랜드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만큼은 BMW, 벤츠, 아우디 등 럭셔리 브랜드에 준하는 브랜드 파워를 지니고 있다.
폭스바겐코리아의 마케팅 역량 때문인지, 럭셔리 3총사와 같은 독일 브랜드라는 점을 배경으로 한 착시효과인지 모르지만,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이다.
소형차이면서도 1.6 TDI 디젤엔진을 장착한 것도 강점이다. 형님(준중형 해치백) 격인 골프의 디젤 하위 라인업과 동일한 엔진으로, 소비자들에게 골프 못지않은 퍼포먼스(힘은 비슷한데 무게는 가벼우니)를 낼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폭스바겐 디젤엔진의 또 다른 강점은 높은 연비다. '동급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준수한 편인 18.3km/ℓ의 복합연비를 공인받았다. 고연비를 앞세운 디젤엔진은 이미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가솔린의 점유율을 넘어섰다. 폴로 역시 이 분위기에 편승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골프를 닮은 단순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도 국내 시장에서 상당한 성공 케이스로 꼽히는 골프의 후광(혹자는 두 모델간 간섭 효과를 언급하기도 하지만)을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부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이 모든 걸 갖춘 모델이 2490만원에 팔린다. 이보다 높은 가격대의 수입차, 혹은 이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가격대의 국산차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어떤 모델들이 폭스바겐 폴로 출시의 후폭풍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을까.
피아트 500
폴로보다 최대 500만원 비싼 '피아트 500' 어쩌나
피아트와 시트로엥, 푸조 딜러들이 국내 소비자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폴로를 2490만원에 내놓은 폭스바겐을 원망해야 한다.
이들 비(非) 독일 유럽 3개 브랜드들은 폭스바겐 폴로 상륙 이전에 이미 소형 해치백 모델들을 3000만원 좌우의 가격에 내놓았다.
앞서 언급했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독일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는 상당히 높다. 프랑스 감성이고, 이탈리아 예술혼이고, 독일 엔지니어링 앞에서는 다 필요 없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차를 같은 등급의 독일차보다 높은 가격에 내놓아서는 경쟁이 안된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에 컴백하자마자 '죽을 쑤고' 있는 집안에 이런 말을 하기 미안하지만 피아트 500이 가장 위태로워 보인다(피아트의 지난달 판매실적은 3개 모델을 합해 고작 30대였다).
피아트 500은 폴로보다 사이즈도 작고, 엔진 배기량(1.4ℓ)도 낮은데다, 힘이나 연비에서 디젤 대비 강점을 보일 수 없는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폴로와 피아트 500의 연비 스코어는 18.3 대 12.8로 처참한 수준이다.
두 모델의 견적을 비교해 본 소비자라면 크라이슬러코리아가 왜 피아트 500의 가격을 2000만원대 후반으로 책정했는지 이해하기 힘들 듯 하다.
후방감지센서도 안 달리고 에어컨도 수동인 하위 트림도 2690만원으로 폴로(단일트림)보다 비싸다. 상위트림은 2990만원으로 3000만원에서 10만원 빠졌다. 그렇다고 편의사양이 화려한 것도 아니다.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키 등 고가 사양이 기본 장착되지 않은 건 피아트 500 상위트림이나 폴로나 마찬가지다.
도어가 3개밖에 없다는 것도 피아트 500의 한계다. 3도어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수요층이 한정돼 있다는 얘기다. 사실, 경차보다 짧은 피아트 500의 전장과 축거(휠베이스)를 감안하면 뒷문을 장착해도 우스꽝스러울 듯 하고 뒷좌석에 성인이 앉기도 힘들 테지만.
폴로는 좀 좁더라도 5명이 탈 수도 있고 어린이용 카시트도 쉽게 장착할 수 있지만, 피아트 500은 그렇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폴로는 국산 준중형차를 패밀리카로 활용할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이들도 조금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차지만, 피아트 500은 미혼 남녀나, 차를 두 대 이상 굴릴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가정에서만 살 수 있는 차다.
시트로엥 DS3(왼쪽)와 푸조 208
프랑스 소형차 형제 시트로엥 DS3·푸조 208도 직격탄
역시 3도어인 시트로엥 DS3도 수요층이 좁은 한계를 가지고 있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DS3 1.6 디젤 모델의 동력성능은 폴로와 비슷하고, 연비는 다소 앞서지만, 가격이 3190만원으로 무려 700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억'대에서 노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2000만원대 차를 알아보는 이들에게 같은 차급에서 700만원 차이는 결코 작은 게 아니다.
시트로엥 DS3와 쌍둥이 격인(동일 플랫폼과 파워트레인 적용) 푸조 208은 그나마 5도어 모델을 운영하고 DS3보다는 다소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지만, 여전히 폴로와는 500만원 차이다.
시트로엥 DS3와 푸조 208의 가솔린 라인업은 굳이 말해 봐야 피아트 500의 재탕 밖에 안되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쉐보레 트랙스
가격포지션 애매한 소형 SUV '쉐보레 트랙스'도 긴장해야
피아트 500, 시트로엥 DS3, 푸조 208이 폴로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이긴 하지만, 폭스바겐 입장에서 이들 3개 모델의 기존 수요층을 몽땅 끌어와 봐야 별 의미가 없다. 이들 3개 모델의 판매량을 합해 봐야 월 100대도 안된다.
폭스바겐이 밝힌 올해 폴로 판매목표는 2000대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완성차 고객도 끌어와야 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 한 영업사원은 "폴로는 가격대로는 국산 중형 세단 급이지만, 소형차인 폴로와는 차급이나 실내공간의 갭이 크기 때문에 중형 세단 고객층이 이동할 가능성은 적다"면서 "다만, 준중형 세단이나 소형 SUV의 경우 상대적으로 폴로와 갭이 작아 이들 상위 트림을 살 만한 소비자들이 조금 예산을 늘려 폴로를 선택할 가능성은 높다"고 말했다.
가장 만만한 상대가 한국지엠의 쉐보레 트랙스다. 트랙스는 출시와 가격 공개 당시 소비자들로부터 "아베오(한국지엠의 소형차)에 터보 달고 지붕 높여놓고 2000만원 넘게 받아먹는다"는 혹평을 들은 모델이다.
물론 소형이라도 SUV인 만큼 실내공간은 트랙스가 폴로보다 넓다. 하지만, 저배기량 가솔린 엔진의 한계로 SUV라면 마땅히 높아야 할 토크도 떨어지고, 연비는 3등급인 12.2km/ℓ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가격은 1940만~2289만원에 달한다. 최고트림 기준 폴로와 불과 200만원 차이다. 200만원 정도면 수입차 프리미엄(그게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건 과시성이건 간에)에 디젤엔진 프리미엄(보통 동급 모델이면 디젤이 가솔린보다 200만원 정도는 비싸다)으로 붙여줄 만 한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예산을 감안해 차를 고를 때 중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모델이나 트림이 있으면 상위 차종으로 쉽게 올라간다.
이를테면, 소형차를 사러 갔다가 이거저거 옵션을 붙이고 트림을 높이다 보니 준중형차 가격까지 올라가고, 그럴 바엔 준중형차를 사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식이다.
폭스바겐 입장에서 쉐보레 트랙스는 국산차 소비자들이 저가 수입차 폴로로 쉽게 넘어오도록 하는 가장 유용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모델일 수 있다.
쉐보레 크루즈
국산 준중형차 수요층…"차급 낮추더라도 수입차 타볼까?"
앞서 국내 완성차 업체 영업사원이 언급한 대로 국산 준중형 세단 수요층이 폭스바겐 폴로로 넘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형에서 소형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지만, 준중형에서 소형으로의 이동은 상대적으로 갭이 작기 때문에 수입차 프리미엄을 쫓아 차급을 한 단계 낮추는 것을 감수할 이들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국산 준중형차 가격은 적어도 가솔린 모델이라면 최상위 트림도 2000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폭스바겐 폴로와는 가격 장벽이 큰 편이다. 2000만원 이하의 예산을 쥔 사람에게 500만원의 가격차는 큰 부담이다.
하지만, 준중형차 중에서도 폭스바겐 폴로의 존재가 껄끄러운 모델이 있다. 바로 쉐보레 크루즈 디젤 모델이다.
그동안 크루즈 디젤은 국산 준중형차 중 유일하게 디젤엔진을 장착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틈새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폴로의 등장으로 시장 유지 여부가 미지수다. 200만원 이내의 가격차면 "차급을 한 단계 낮추더라도 수입차 쪽으로 이동하겠다"는 소비자가 나올 수 있다.
크루즈는 지난해 2만대 이상 팔렸고, 그 중 20% 이상이 디젤 모델이었다. 2000만원대 중반에 디젤 준중형차를 살 소비자가 4000명 이상 존재한다는 얘기다. 폭스바겐으로서는 군침이 돌 만한 시장이다.
물론, 2.0ℓ급 디젤엔진을 장착한 크루즈는 1.6ℓ급인 폴로에 비해 동력성능이 월등하지만, 연비는 13.8km/ℓ에 불과해 디젤의 고연비 장점을 충분히 어필하지 못한다.
더구나 폭스바겐은 이미 골프를 통해 '1.6 TDI 엔진만으로도 충분히 달 잘리고, 잘 서고, 잘 돈다'는 이미지를 국내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킨 바 있다.
크루즈가 상당히 노후된 모델이라는 점도 폴로에 시장을 내주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크루즈는 한국지엠의 전신 지엠대우 시절인 2008년 11월 풀체인지된 라세티 프리미어에서 크게 바뀐 건 엠블럼밖에 없는, 이미 4년이 넘은 모델이다.
폭스바겐 골프
폴로-골프 간섭효과? 시너지 효과?
일각에서는 폴로가 형님 격인 골프의 판매량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소형 해치백인 폴로와 준중형 해치백 골프는 차급이 다르긴 하지만, 같은 해치백에 디자인도 비슷하고, 일부 트림에서는 엔진도 동일하다는 점에서 간섭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충 비슷한데, 가격은 600만원 이상 차이나니 골프를 살 사람들이 폴로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폴로가 폭스바겐 브랜드 전체에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저가 모델을 라인업에 추가할 경우, 일단 고객 유인효과가 커진다는 분석이다.
완성차업체 한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 영업사원들이 경차부터 모든 라인업이 갖춰지길 원하는 이유는 엔트리 모델(생애 첫 차)의 고객 유인효과가 크기 때문"이라며 "일단 경차를 사러 왔다가 영업사원의 설득으로 소형차나 준중형차를 살 수도 있고, 경차를 사더라도 나중에 차를 바꿀 때 같은 영업사원을 통해 동일 브랜드의 상위 차급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스바겐 딜러들도 폴로 출시를 계기로 폴로를 보러 온 고객들을 대상으로 딜러 할인이나 옵션 등 각종 혜택을 제시하며 골프나 파사트 같은 상위 차종으로 유도할 여지가 생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올해 폭스바겐 골프의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주춤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건 폴로와의 간섭효과라기보다는 7세대 모델로의 모델체인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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