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마더스'는 되고 '뫼비우스'는 안되고?
결국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뫼비우스’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사실 거듭된 위헌 소송을 통해 영등위가 영화와 관객의 만남을 원천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게 됐다. 다만 일반 대중이 보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영화에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판정할 수 있다. 이 등급을 받으면 일반 대중 극장에서의 상영은 불가능하지만 제한상영가 전용관에선 상영이 가능하다. 다만 현재 대한민국에 제한상영가 전용관을 갖춘 극장이 없는 터라 사실상 영화와 관객의 만남이 원천 봉쇄되는 셈이다.
이에 김기덕 감독은 두 번이나 영화 속 논란이 되는 장면을 자체 검열해 삭제한 뒤 재심의를 받아 겨우 일반 극장 개봉이 가능해졌다. 문제가 된 근친상간 장면 등 영등위가 지적한 5가지 부분을 바탕으로 김 감독은 21장면, 1분 40여 초를 삭제한 뒤 겨우 제한상영가를 피할 수 있었다.
영화 '뫼비우스'는 영등위로부터 다양한 지적을 받았지만 역시 가장 문제가 된 장면은 근친상간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극장가에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근친상간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지 않았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아니 한국 영화는 미국 영화계에서도 일반 극장에서의 개봉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영화가 버젓이 개봉해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바로 그 영화가 '올드보이'다. 스포일러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본 영화인만큼 '올드보이'에 대해 조금 깊이 언급하자면 이 영화는 근친상간으로 쌓인 원수를 근친상간으로 갚는 영화다. 두 쌍의 근친상간 커플이 등장하는 데 한 쪽은 부녀사이이며 또 한 쪽은 남매사이다. 부녀 사이의 근친상간은 상당한 수위의 노출이 가미된 강도 높은 베드신이며 남매 사이의 근친상간 장면은 가슴 부위가 노출되는 등 노출 수위는 높지만 베드신은 아니고 애무를 하는 수분에서 그친다. 국내에서 '올드보이'가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린 데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까지 수상해 세계무대에서도 엄청난 흥행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제한상영가에 해당되는 등급을 받아 전용관에서만 상영됐기 때문이다. 적어도 '올드보이'의 사례만 보면 한국 영등위의 등급 심사 기준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 영화계는 거듭된 영등위와의 대결을 벌여왔다. 우선 외화의 경우 지나친 가위질이 기본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한한 배우나 감독이 한국에서 개봉된 편집본을 본 뒤 격분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은 아시아권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 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제 1회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영화 '크래쉬' 역시 개봉 당시엔 10여분이나 삭제된 버전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대한민국 영화계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영등위와 영화계의 싸움은 거듭된 소송으로 이어졌고 지난 96년 검열이 위헌 판결을 받은 뒤 영등위는 ‘등급 보류’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노랑머리'가 등급보류 첫 영화였다. 2000년대 들어 '거짓말' '죽어도 좋아' 등의 영화가 영등위와 대립했다.
결국 거듭된 위헌 소송을 거쳐 등급보류 제도도 사라지고 제한상영가 등급이 생겼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통해 더 이상 영등위가 특정 영화의 개봉을 막을 수는 없게 됐다. 다만 문제는 제한상영가 전용극장의 상업성이 떨어져 시장이 제한상영가 영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영등위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올드보이'를 통해 근친상간 정사신으로도 등급을 받아 극장 개봉을 시킨 데 이어 '박쥐'에선 성기가 그대로 나오는 장면이 있음에도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박쥐'를 통해 한국 영화의 표현 수위가 성기 노출 허용으로 높아졌다고 보면 안 된다. 다른 영화에선 여전히 음모노출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영등위는 ‘작품성 있는 영화가 예술적인 표현을 위해 과감한 노출 등을 사용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상업적인 목표로 의도적인 노출을 하는 것은 안된다’는 기준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인터넷 다운로드 시장 등이 활성화 되면서 다시금 과거의 에로영화 열풍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거 에로 업계에서 활동했던 관계자들도 속속 모여들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에 따르면 ‘에로’로 분류되는 영화에 대한 영등위의 노출 수위 기준은 1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에로 영화에선 성기가 나오면 안 되며 근친상간도 안 되는 까닭은 작품성 있는 영화가 아니며 예술적인 표현도 아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영화 '뫼비우스' 역시 같은 논리일까. 이는 영등위 심사위원들이 칸 영화 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 영화의 작품성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대상(내지는 작품상)에 해당되는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 영화의 작품성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매혹적인 불륜’이라는 문구를 내세운 '투 마더스'가 개봉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투 마더스'는 제목처럼 두 엄마의 이야기인데 마치 자매인 양 절친한 사이인 두 여성은 각각 아들이 있고 함께 아들들을 키운다. 그리고 아들들이 장성한 청춘이 된 뒤 두 엄마가 각각 절친의 아들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의 영화다. 모자 사이의 정사가 아닌 만큼 근친상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피가 섞인 가족의 정사신만 근친상간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뫼비우스'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한 표현의 자유는 제한받지만 외화 '투 마더스'의 엽기적인 설정의 사랑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받고 있다.
사실 2000대 중반 이후 영등위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 관련 논란은 크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영화계가 상업화되면서 관객 몰이에 도움이 되는 청소년 관람이 가능한 등급을 받느냐 청소년 관람이 불가한 등급을 받느냐에 영화계는 더욱 집중해왔다. 예를 들어 최근 흥행 대박을 일구고 있는 영화 '설국열차'가 15세 이상 관람가 정을 받느냐, 아니면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느냐가 더 큰 관심사가 돼 버렸다는 얘기다. 이런 잊힌 화두를 '뫼비우스'가 다시 던진 것이다.
부가판권 시장 활성화에 따라 에로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의 제작이 다시 붐을 이룰 것으로 보이는 요즘, 다시 한국 영화는 표현의 수위를 두고 영등위와의 분쟁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작품성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매몰된 영등위의 기준 없는 심의는 계속된 논란만 양성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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