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안도미키 초인적 생존기…호사다마 전형
아이 출산 고백 후 주변 압박 딛고 고군분투
토리노올림픽 실패 이후의 겪은 좌절 없어
'주위에서 물어뜯어도 나의 길을 가련다’
하루아침에 정상에서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등 독한 시련 속에 성장한 미혼모 피겨스타 안도 미키(25·일본)는 호사다마-전화위복의 전형이다.
피겨인생의 시작은 달콤했다. 지난 2002년 세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당시 15세’ 나이로 쿼드러플 살코(이하 4회전)를 소화, 전 세계 피겨 평론가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21세기 신 채점 기준으로 판정하면 ‘회전수 부족’이지만, 여자 선수의 4회전 시도 용기 자체가 가상했다는 평가다.
안도 미키는 2006년 일본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토리노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자신을 스타로 이끈 4회전이 부메랑이 됐다. 4회전을 소화하기엔 신체가 완전히 변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착빙 과정에서 달라진 키와 체중을 두 무릎이 견뎌내지 못해 처참히 고꾸라졌다. 결국, 4회전 실패로 토리노올림픽 15위권으로 밀려난 안도 미키에겐 슬럼프가 엄습한다.
팬들은 소심해진 안도 미키를 등진 채 하나둘 ‘샛별’ 아사다 마오(23)에게 갔다. 일본 언론도 예민해진 안도 미키보다 서글서글하고 천진난만한 아사다 마오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아사다 마오는 트리플 악셀(3회전 반)을 간판으로 내걸어 ‘필살기’에 목마른 일본 피겨 팬들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줬다.
물론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은 속칭 ‘꽈배기 악셀’이다. 몸을 비틀어 도약하고 착빙도 과격한 스크래치의 연속이다. 3회전 반이 아닌, 도약과 착빙에 모자란 회전수를 집어넣는 ‘꼼수’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팬들이 아사다 마오를 애지중지한다. 주먹구구 트리플 악셀이라도 현역 여자 선수 중 유일하게 계속 시도한다는 점을 들어 “역시 아사다 마오는 일본인다운 도전정신(?)을 갖췄다”고 자평한다.
토리노올림픽 이후 아사다 마오가 일본 유력 일간지 스포츠면을 장식하자 안도 미키로선 견디기 어려웠다. 잊힌 유명스타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안도 미키의 방황은 제법 길었다. 전담코치가 자주 바뀌고 경기력도 들쭉날쭉했다. 설상가상, 매년 안도 미키 근황을 캐묻던 북미, 러시아 언론도 하나둘 관심이 흐려졌다. 2000년대 중후반 ‘세계 피겨여왕’ 김연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김연아 성인 데뷔 이후 여자피겨 화제는 일본도, 안도 미키도, 아사다 마오도 아닌, ‘대한민국 김연아’다. 남녀불문 기라성 같은 톱 선수들은 김연아와 아이스쇼를 함께 하길 원했다. 북미 피겨 취재진은 열악한 한국 빙상장을 취재하고 불모지에서 성장한 김연아의 근성을 높이 평가했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자, 안도 미키는 전략을 바꿨다. 김연아와 정면승부 해선 승산이 없다고 판단, 실수 부담 적은 중·저난이도 B~C급 기술 전략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대표적 예로 시작점프 3회전-2회전 콤비(이하 3-2)가 있다. 여자 현역 ‘톱 10위권 이내’ 선수들은 3회전-3회전(이하 3-3)을 성공확률을 떠나 무조건 시도한다. 기본점수가 높기 때문이다. 반면, 안도 미키는 3-3마저 포기하고 3-2로 난이도를 낮췄다. 실수 없는 연기를 하기 위함이다. 21세기 현대 피겨는 전체 연기 이미지도 중시한다.
안도 미키의 틈새 공략은 성공했다. 독보적 기술 없이 ‘2011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것. 그 사이 라이벌 아사다 마오는 꽈배기 악셀 짝사랑서 헤어 나오지 못해 정체 또는 후퇴를 반복했다.
일본 언론은 재기에 성공한 안도 미키에게 다시 애정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안도 미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1 세계선수권 우승 직후 지금의 안도 미키를 있게 한 니콜라이 모로조프 코치와 결별했다. 둘은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성격차이로 결별했다.
후유증은 예상외로 컸다. 2011년 안도 미키 입에서 “잠정은퇴 발언”이 나왔고 2년간 은반에서 안도 미키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다시 빙판으로 돌아온 안도 미키 가슴엔 조막만한 딸이 안겨 있었다. 현역 복귀 기자회견에서 뜻밖의 출산 사실을 밝히며 “피겨와 아이 모두 끌어안고 싶다. 올림픽까지 치른 뒤 명예롭게 은퇴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일본 언론은 안도 미키에게 미혼모 낙인을 찍은 채 가십으로 다뤘다. “남편이 누군가. 딸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사생활 캐기에 집착했다.
2006 토리노올림픽 직후의 ‘미성숙한’ 안도 미키였다면 견딜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안도 미키는 다부졌다. 초인적인 엄마의 힘, 농축된 시련이 더해진 안도 미키는 “근력 저하로 전성기 몸놀림은 아니다”면서도 “지금까지 물심양면 지원해준 가족과 전 세계 팬들에게 보답한다는 각오로 소치 올림픽 여정에 나서겠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리고 안도 미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안도 미키는 지난 26일 독일에서 열린 네벨혼 트로피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59.79점(기술 30.13, 예술 29.66)을 받아 러시아의 엘레나 라디오노바(64.69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쇼트 배경음악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와 함께 등장한 안도 미키는 이번에도 안정적 B급 기술 3-2를 구사하며 실수를 미연에 차단했다. 이후 점프에서도 깔끔하게 착지한 안도 미키는 현실이 반영된 감정표현과 안무를 곁들여 준수한 연기를 마쳤다.
경기 직후 눈가가 촉촉해진 안도 미키는 “딸이 이곳에 있다. 오랜만에 빙판에 서서 떨렸지만, 엄마이자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다. 쇼트 배경음악 마이웨이 가사는 지금의 내 모습과 같다”며 앞으로도 당당히 나의 길을 걷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안도 미키의 다부진 복귀에 일본 언론도 180도 달라졌다. 주요 일간지는 “소치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린 연말 일본선수권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미혼모 안도 미키의 부활을 반기는 눈치다.
미혼모로 거듭난 불굴의 아줌마 안도 미키가 자못 예뻐 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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