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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애플' 어메이징 메츠 꿈꾸는 씨티 필드


입력 2014.01.11 08:45 수정 2014.01.12 09:47        데일리안 스포츠 = 최영조 객원기자

[MLB 구장방문기④]뉴욕메츠 홈구장 씨티필드

씨티 필드 외관. ⓒ 데일리안 최영조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뉴욕 메츠의 홈구장 씨티 필드는 2009년 개장한 최신식 구장으로 기존 홈구장 쉐이 스타디움(1964~2008년)을 대체했다.

씨티필드는 쉐이 스타디움이 자리했던 바로 옆에 세운 4만여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천연잔디 구장이다. 미국 금융사 씨티그룹이 20년 동안 매년 2000만 달러씩 총 4억 달러의 거액을 지불하는 대가로 구장의 네이밍 권리를 획득, 씨티 필드로 불리게 됐다.

뉴욕 퀸즈의 플러싱에 위치, 지하철 또는 롱아일랜드를 가로지르는 철도 LIRR(Long Island Rail Road)를 타고 Mets-Willlets Point 역에서 내리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역에서 내려 유니폼을 입은 메츠팬들을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씨티 필드를 볼 수 있다.

오리지널 홈런 애플. ⓒ 데일리안 최영조 기자

씨티필드 앞 '홈런 애플'이 가장 먼저 팬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긴다. 잘 알려진 대로 'Big Apple'은 뉴욕 시를 의미하는 닉네임이다. 이 홈런 애플은 예전 쉐이 스타디움서 메츠 타자들이 홈런을 쏘아 올리면 중간 담장 너머에서 솟아오르던 바로 그 ‘오리지널’ 홈런 애플이다. 사진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라 사람들이 붐빈다.

로빈 벤추라의 1999년 NLCS 5차전에서의 역사적인 그랜드슬램 싱글에 대한 소개와 팬들의 메시지. ⓒ 데일리안 최영조

또 씨티필드 정면 앞쪽을 걷다 보면 바닥에 ‘FAN WALK’로 불리는 곳이 있다. 이곳은 뉴욕 메츠의 역사, 그리고 주요 경기와 선수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유심히 보면 메츠의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과 톰 시버, 마이크 피아자, 로빈 벤추라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과거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이곳에 메츠 팬들의 이름과 메츠의 승리를 염원하는 메시지가 벽돌에 새겨진 것이 인상적이다.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이 벽돌 구입 신청을 하면 씨티필드 앞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영광을 안을 수도 있다.

‘1969 어메이징 메츠’

메츠는 1962년 창단 이후 1968년까지 한 번도 5할 승률을 넘지 못했다. 당연히 1969시즌에도 우승 전력으로 평가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69시즌 마지막 49경기에서 38승을 올리는 질주로 시카고 컵스를 제치고 1위에 올라 모두를 놀라게 했고, NLCS에서도 3연승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제쳤다.

월드시리즈에서 '시즌 109승'의 최강 전력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만났을 때도 메츠는 언더독이었다. 볼티모어에는 마이크 쿠에야(23승)-데이브 맥널리(20승)-짐 팔머(16승)의 선발진과 '30홈런-100타점 듀오' 프랭크 로빈슨과 부그 파웰이 버티는 타선도 메츠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메츠는 1차전을 내준 뒤 내리 4연승, 예상을 뒤엎고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됐다. 3개의 홈런을 치며 '월드시리즈 MVP'가 된 돈 클렌데논, 3차전에서 두 번의 결정적인 호수비를 보인 중견수 토미 에이지, 2승을 거둔 좌완 제리 쿠스먼, 4차전에서 10이닝 완투승을 거둔 톰 시버까지 모두 제 역할을 했다. 결국, 1969시즌의 예상치 못한 선전과 월드시리즈에서 볼티모어를 물리치는 이변으로 '어메이징 메츠'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다(메츠는 1986년 보스턴을 꺾고 두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씨티필드에서는 종종 브라이언 아담스의 'Summer Of 69'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물론 메츠와는 전혀 상관없는 곡이지만, 올드 팬들이 1969년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한편, 지난 2009년 4월 13일은 뉴욕 메츠는 센디에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씨티 필드 개막전을 치렀는데 당시 시구자도 시버였다. 은퇴 전 메츠에서 포수로 활약했던 마이크 피아자가 공을 받았다.

시버의 이름을 딴 VIP 출입문. ⓒ 데일리안 최영조

시버는 메이저리그 통산 20년 동안 311승(역대 18위)과 평균자책점 2.86, 탈삼진 3640개를 비롯해 무려 61회의 완봉승(공동 7위-놀란 라이언)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다. 사이영상도 통산 3회 수상했다(1969·73·75).

시버는 1992년 역사상 최고인 98.84%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 입성한다. 만장일치 HOF 입성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그렉 매덕스의 득표율이 97.2%인 것을 떠올릴 때, 시버의 득표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특히, 1969년엔 25승을 수확하며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닉네임도 Tom Terrific. 메츠가 시버를 데려오지 못했다면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도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버하면 가장 먼저 메츠를 떠올리지만, 그의 메츠 입단 일화는 다소 특이하다. 시버는 1966년 1라운드 전체 20위로 자신을 지명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 당시 시버의 USC(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팀이 이미 2경기 치른 상황이었다.

MLB사무국은 이를 대학리그 기간으로 간주, 리그 중에는 계약할 수 없다는 조항을 들어 애틀랜타와 그의 계약을 무효화, 애틀랜타는 시버와 향후 3년간 계약할 수 없게 됐다. 대학으로 돌아가 시즌을 마치려고 한 시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로와 계약했던 선수는 아마추어 자격을 상실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도 뛸 수 없게 됐다.

당시 커미셔너는 시버를 일정액 이상 지불하고 데려갈 의사가 있는 다른 팀들(인디언스, 필리스, 메츠) 중 추첨을 했고, 결국 메츠가 시버를 데려가는 행운의 주인공으로 결정됐다.

메츠 영구결번. 좌측부터 케이시 스텡겔(37), 길 호지스(14), 톰 시버(41,팬들에 가려있음), 재키 로빈슨(42) 윌리엄 쉐이. ⓒ 데일리안 최영조

시버의 등번호 41번은 현재까지 메츠 선수로는 유일한 영구결번이다. 14번 길 호지스는 메츠에서 선수생활도 했지만 69년 어메이징 메츠를 이끈 감독으로서 영구결번 됐고 37번의 케이시 스텡겔 역시 마찬가지다. 잘 알려진 대로 42번은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다.


재키 로빈슨 로툰다(Jackie Robinson Rotunda)

씨티 필드에선 과거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의 추억도 되새길 수 있었다. 먼저 씨티 필드의 외관이 그렇다. 지금은 사라진 과거 브루클린 다저스 홈구장 에베츠 필드(1913~1957)와 현재의 씨티 필드의 외관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어렵지 않게 그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씨티 필드를 보면서 에베츠 필드에 대한 역사를 추억 내지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메이저리그팬들에겐 의미가 있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There used to be a ballpark'라는 노래로 에베츠 필드가 없어진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다(이 노래는 뉴욕 자이언츠의 폴로 그라운드에 관한 내용이라는 설도 있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재키 로빈슨 로툰다. ⓒ 데일리안 최영조

씨티 필드 중앙 게이트로 입장하면 '재키 로빈슨 로툰다'로 불리는 원형 홀이 있다. 이곳은 구장으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있다. 다저스가 아닌 메츠 홈구장에 재키 로빈슨 원형 홀이 있다는 사실에 의아할 수도 있지만 로빈슨은 브루클린, 즉 뉴욕을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했고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갖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 버나드 메이도프의 다단계 금융 사기극에 휘말리며 구설에 오른 적 있는 메츠의 프레드 윌폰 구단주가 브루클린 출신이라는 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위에서 본 재키 로빈슨 로툰다.ⓒ 데일리안 최영조

재키 로빈슨 로툰다에 들어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우측엔 메츠 명예의 전당&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메츠 구단의 역사를 한 눈에 훑어볼 수 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당일 경기 티켓만 있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와 공식 팀 마스코트 Mr. Met 동상이 가장 눈에 띈다. 메츠의 팀명은 메트로폴리탄의 줄인 말이다.

좌측은 공식 마스코트 Mr.Met, 우측은 1969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 ⓒ 데일리안 최영조

쉐이 브릿지. ⓒ 데일리안 최영조

씨티 필드 우측 펜스 뒤쪽에는 쉐이 브릿지가 있다. 물론 떨어져 있는 두 곳을 연결하는 사전적 의미의 다리는 아니고 통로에 다리의 구조물을 세운 것이다. 쉐이 스타디움의 향수를 떠올릴만한 장소다. 오히려 과거 쉐이 스타디움과 현재 씨티 필드를 연결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바닥에 지금은 사라진 쉐이 스타디움의 선명한 로고를 볼 수 있다.

쉐이 스타디움은 윌리엄 쉐이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변호사 출신인 쉐이는 1957년을 끝으로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각각 LA와 샌프란시스코로 떠나자 다시 뉴욕을 대표하는 야구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뉴욕 메츠의 창단(1962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쉐이는 1983년 메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현재 그의 이름은 좌익수 뒤쪽 영구결번들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오리지널보다 4배 큰 '뉴' 홈런 애플. ⓒ 데일리안 최영조

현재 씨티 필드 중견수 뒤쪽 전광판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새로운 홈런 애플이 있다. 이것은 씨티 필드 외부에 있는 오리지널 홈런 애플보다 4배 정도 더 크다고 한다. 메츠 선수들이 홈런을 쏘아 올릴 때마다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이 홈런 애플이 솟아올라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홈런의 기분을 고조시킨다.

씨티필드 전경(좌측펜스 102m, 중간펜스 124m, 우측펜스 100m). ⓒ 데일리안 최영조

지난해 씨티 필드의 방문을 마치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남았다.

좌익수 뒤 영구결번 앞에 관람석을 배치, 경기 중 관중들로 인해 영광스런 번호들이 가렸다. 물론 영구결번 앞의 자리에서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다른 구장을 봐도 팀을 상징하는 영구결번만큼은 언제 어디서든 잘 드러나게 해놓았다.

또 1루 측 좌석에서는 전광판 앞에 있는 깃대로 인해 라인업이 시야에서 가리는 자리도 있다. 무엇보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 건너간 상황임을 감안해도 다른 구장과 비교해서 홈팬들의 숫자와 열기가 많이 떨어진 것은 못내 아쉽다. ‘어메이징 1969’의 추억이 흐려져 가는 메츠 팬들이 ‘어게인 1969’를 외치기도 지친 듯하다.

다음편 = 필라델피아 홈구장 씨티즌스 뱅크 파크

최영조 기자 (choiyj2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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