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무려 3차례나 거절했지만, '내부자들'은 천상 조승우(36)의 영화였다. 우민호 감독의 확신대로 이병헌 카리스마에 밀리지 않고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배우, 역시 조승우였다.
'내부자들'은 윤태호 작가의 미완결 웹툰을 원안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자들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드라마다. 조승우는 최고의 경찰이었지만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세가 막히자, 사법고시를 패스해 검사가 된 우장훈 역할을 맡았다.
어렵게 검사가 됐지만 이번에는 빽과 족보가 없어 늘 승진을 목전에 두고 주저앉는 우장훈은 근성 하나만 믿고 조직에서 '개'처럼 버틴다.
사실 조승우는 끈질길 정도로 이 작품을 자신의 손에서 밀어내려 애썼다. "검사 역할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는 조승우는 "너무 어려 보이고 왜소해서 검사 역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사회의 치부를 들춰내는 이 작품을 애써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세상을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이런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 굳이 여기 들어와서 몸으로 느껴가며 해야 할까, 이 작품이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조승우 본인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은 조승우의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조승우는 우민호 감독의 끈질긴 구애와 주위의 추천에 자신의 의지를 꺾었다.
"상상을 초월한 사람들이 이 작품을 추천했어요. 심지어 다른 투자사 분들까지 '그거 왜 안하느냐'고 물었죠. 지금까지 너무 내 주관만 가지고 작품을 선택해 왔나.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이유가 있을 테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조승우를 영화배우로서, 그리고 뮤지컬배우로서 정상에 올려놓은 두 작품, '말아톤'과 '지킬앤하이드' 역시 수차례 거절 끝에 수락한 작품이었다. 조승우는 "그때처럼 한 번 믿어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은근슬쩍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병헌과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점도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병헌의 필모그래피를 보며 작품 선택 기준과 영화에 대한 열정에 감탄하곤 했던 조승우는 "이 사람의 선구안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면, 분명 이 작품이 갖고 있는 파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조승우는 '내부자들'에서 사투리 연기는 물론 과감한 노출신까지 소화한다. ⓒ 쇼박스
"이병헌과 친해지기? 병 주고 약 주고"
'내부자들'을 통해 조승우는 이병헌과 둘도 없는 형 동생 사이가 됐다. 앞서 이병헌은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승우가 집에 찾아온다"며 남다른 친분을 과시한 바 있다. 하지만 '내부자들'로 인연을 맺기 전에는 만나면 인사하는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시상식이나 영화인 행사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둘 다 낯을 가리다 보니 친해질 기회가 없었죠. 그런데 작품에서 (이병헌을) 긁어대고 하대하고 이런 것들을 연기해야 하다 보니 친해지지 않고선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조승우는 특유의 넉살로 이병헌에 먼저 다가갔다. 이병헌이 "뭐 이런 놈이 다 있나"라고 할 정도로 '병 주고 약 주고'를 계속 하다 보니 어느새 둘 사이에 진한 우정이 싹 트기 시작했다.
"한 번은 미친 척 하고 먼저 반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병헌이) 미역 머리를 했을 땐 '스티븐 시X' 같다고 놀려댔죠. 심지어 집에 놀러 가서 집에다 토해 놓고 도망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커피를 사주거나 밥 먹을 때 기다려 주면서 달랬죠."
친해진 만큼, 연기 호흡도 발군이었다. 일각에선 두 정상급 배우의 기 싸움에 주목하기도 했지만 조승우는 "전체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찍었다. 애드리브도 엄청 많았다. 별별 애드리브가 다 나왔다"며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덕분에 조승우의 연기변신 또한 호평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지역을 알 수 없는 족보 없는 사투리 연기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오히려 공감을 더했다.
특히 적나라한 노출신은 보는이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과감했다. 노출 연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승우로선 큰 부담이었다. 평소보다 체중을 불린 채로 촬영에 돌입한 터라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노출신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촬영 현장에서 백윤식, 이경영 선생님들이 다 벗고 있고 어려운 결정을 해서 출연해주신 여배우들이 다 벗고 있는데 '내가 창피해 하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승우는 영화에서 꼭 필요하다면 어떤 노출도 불사하겠다. 준비는 돼 있다"며 의욕을 드러내며 과거 '타짜' '말아톤' '춘향전' 등에서 선보인 자신의 노출신을 자랑해 웃음을 자아냈다.
조승우는 여전히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고 있다. ⓒ 쇼박스
"30대 중반의 나이, 아직 불같은 사랑 원해요"
하지만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정확한 평가는 뚜껑을 열기 전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언론시사회로 첫 선을 보인 후 2주의 시간은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고. 특히 카메오로 출연한 '암살'을 제외하면 3년 만에 복귀작이라 더욱 부담이 컸다.
"흥행의 몫은 배우의 몫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솔직히 죽을 것 같아요."
조승우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허구 인물들이지만, 뉴스에 안 나온 내용은 아니다"며 "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끝나는 게 아니라 영화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야망과 야욕을 가진 남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더러운 야망들을 보여준다. 받아들이는 건 관객들 몫이다"고 애써 초연한 표정을 지었다.
한편, 조승우는 영화보다는 뮤지컬 배우로서의 입지가 더욱 탄탄하다. '뮤지컬 황제'라는 호칭을 붙을 정도로 독보적인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겸비한 스타 중의 스타다.
"어느날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공연을 마치고 센치해져 있을 때인데, 저를 '내 배우'라고 표현한 글을 보고 울컥했어요. '날 가지세요. 당신들의 배우입니다'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하지만 조승우는 "뮤지컬 팬들이 영화 팬들이다. 그 사람들은 뮤지컬, 영화, 드라마를 나누지 않는 조승우 팬이다"며 자신의 작품을 보러 와주는 모든 관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을 무모하다고 느낄 정도로 추구한다"는 자신의 연애관도 밝혔다. 어느덧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지만, 아직 결혼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보다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이 먼저다.
특히 조승우는 "'디스패치'가 잠복하며 찍을 수 있는 건 삽살개 데리고 똥 치우고 있는 모습일 것"이라며 운명의 여자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나이가 되면 연애를 해도 결혼을 전제로 만나요. 그것만큼 낭만적이지 않은 얘기가 없어요. 그런 건 이해를 못하겠어요. 불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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