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대거 발굴하며 유망주 발굴 장인으로 불렸던 네덜란드 출신 명장 루이스 판할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다.
판 할 감독은 지난 17일(한국시각) 네덜란드 매체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더 이상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5-16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판 할 감독은 휴식기를 거쳐 다음 커리어를 준비 중이었지만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선언 이유에 대해 판 할 감독은 "가족들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해 직접적인 은퇴 사유로 가족사를 언급했다. 무엇보다 지난달 사위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갑작스러운 은퇴 결정에 촉매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판 할 감독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명장 중 하나다. 아약스 암스테르담과 바르셀로나 등을 이끌며 여러 우승컵을 거머쥔 명장이다. 1987년 알크마르에서 현역 은퇴를 선언한 판 할은 이후 알크마르와 아약스에서 코치 생활을 이어가며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판 할 감독이 본격적으로 세계 축구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는 아약스 입성 후부터였다. 당시 판 할 감독은 아약스를 이끌고 세 차례 리그 우승은 물론, 1994-95시즌에는 팀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지도자로서의 한 획을 그었다. 이후 판 할은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 그리고 맨유 등을 거치며 커리어를 완성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탁월한 유망주 발굴 능력이다. 그는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그들이 수준급 선수들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줬다.
‘유소년으로 대박’ 아약스-네덜란드 대표팀의 기틀 마련
네덜란드 역대 최고 수문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반 데 사르는 판 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992-93시즌부터 팀 내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다. ⓒ 데일리안DB
1994-95시즌 아약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당시 멤버는 '네덜란드 최고의 올스타팀'으로 불린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들 모두 수준급 선수라는 평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판 할 감독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중용되면서 유망주에 불과했던 선수들이 비로소 커리어를 완성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반 데 사르다. 네덜란드 역대 최고 수문장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반 데 사르는 판 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992-93시즌부터 팀 내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고, 그다음 시즌부터는 아약스의 주전 수문장으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반 데 사르는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고, 1999년 여름에는 유벤투스로 이적, 빅클럽 입성에 성공했다. 아쉽게도 그는 유벤투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풀럼을 거쳐 2005년 여름 맨유에 입성했다. 현역 은퇴 전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며 자신의 커리어를 완성했다.
반 데 사르 뿐 아니라 판 할 감독은 아약스 유소년팀 소속의 에드가 다비즈와 클라렌세 세도르프를 발굴하며 중원의 기틀을 마련했다. 두 선수 모두 판 할 감독 부름을 받고 1군 무대에 입성했고, 아약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이바지하며 이름값을 높였다.
이후 다비즈는 유벤투스로 이적해 세리에A를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성장했고, 세도르프 역시 레알 마드리드와 밀란 등에서 활약하며 수준급 미드필더로 명성을 높였다. 특히 세도르프는 아약스와 레알 마드리드 그리고 밀란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세 클럽에서 챔스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썼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축구계를 호령한 공격수 클루이베르트도 빼놓을 수 없다. 판 할 감독은 1994-95시즌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클루이베르트를 1군 무대에 불러냈다. 클루이베르트는 데뷔 시즌 37경기에 나와 21골을 터뜨리며 아약스의 3관왕을 도왔다. 판 할 감독의 과감한 선수기용이 낳은 결과였다.
오베르마스와 라이지거도 주목해야 한다. 빌럼 II 소속의 오베르마스는 1992년 판 할 감독의 부름을 받고 아약스에 입성해 자신의 커리어를 완성했다. ‘총알 탄 사나이’로 불린 오베르마스는 아약스 입성 후 네덜란드 대표팀 명단에 발탁됐고, 이후 아스널과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커리어를 완성했다. 부상 때문에 제 기량을 100% 펼치지 못했지만 아약스 입성 후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외에도 프랑크 데 부어와 그의 쌍둥이 형제인 로날드 데 부어도 아약스가 낳은 대표적인 기대주였다. 트벤테 임대 생활을 보냈던 로날드 데 부어와 대조적으로 프랑크 데 부어는 감독으로서도 아약스 축구사의 한 획을 그었다.
사비 에르난데스부터 토마스 뮐러 그리고 래쉬포드까지
판 할 감독 체제에서 래쉬포드는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특급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 게티이미지
아약스에서 이미 검증받은 판 할의 다음 행선지는 바르셀로나였다. 판 할 감독의 바르셀로나는 두 차례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과 한 차례의 UEFA컵 우승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던 중 판 할 감독은 네덜란드 대표팀으로 돌연 자리를 옮겼다.
아쉽게도 판 할의 네덜란드 대표팀은 초호화 군단을 자랑하고도 2002 한일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맛봤다. 판 할 감독 역시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 탈락을 이유로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커리어는 짧았지만, 바르셀로나 시절 판 할 감독의 최고 작품은 단연 사비와 푸욜이다. 두 선수 모두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이다. 동시에 판 할의 부름을 받고 1군 무대에 소집되며 바르셀로나의 레전드가 됐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와 빅토르 발데스 역시 판 할의 부름을 받고 기용됐다.
지금이야 최고의 선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네 선수에 대한 의문은 상당했다. 그러나 판 할은 이들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고, 발데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선수는 바르셀로나의 진정한 별이 됐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토마스 뮐러를 발굴했다. 2009-10시즌 판 할 감독은 바이에른 유소년팀 출신 공격수 뮐러를 전격 발탁해 팀 공격의 새로운 중심축으로서 자리매김 하도록 도왔다. 덕분에 뮐러는 2009-10시즌부터 중용되면서 바이에른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간접적으로 이바지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독일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서 활약. 5골을 터뜨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판 할 감독의 정확한 안목이 뮐러의 성인 대표팀 발탁을 이끈 셈. 현재까지도 뮐러는 바이에른의 간판 공격수 중 한 명으로 활약 중이다.
맨유에서는 마커스 래쉬포드를 부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2015-16시즌 맨유는 주축 공격수들이 대거 이탈하며 공격수 기근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판 할 감독은 래쉬포드를 A팀으로 승격시키며 공격진 변화를 꾀했다.
뮐러를 비롯한 이전 선수들보다는 미미했지만 래쉬포드는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특급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맨유의 새로운 공격 중심축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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