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증가하던 3월보다 공연계 상황이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공연이 예정보다 일찍 막을 내리거나, 일시적으로 공연을 쉬어가기로 결정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암흑기다. 한 차례 폭풍을 견뎌내고, 피해를 회복하려던 찰나 또 한 번의 폭풍이 불어 닥치면서 다시 일어날 힘조차 없이 무기력한 처지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를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오는 불안감이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공연계는 고사 직전에 놓였다. 이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공연계 매출은 약 952억6800만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매출액(약 1900억원)의 반토막 수준이었다.
다만 지난달 매출액이 크게 반등하며 회복 조짐을 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연을 계속되어야 한다는 기조로 업계 관계자들이 힘을 모은 결과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집계를 살펴보면 지난 7월 공연계 매출은 171억여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 105억 가량에 비교해 62%가량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정부가 기존 국공립극장에만 적용하던 거리두기 좌석제를 민간 공연장에도 의무 적용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지난 16일 보내면서 8월 공연계 매출에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연극 출연진, 스태프 사이에서 연쇄 감염이 나타남에 따라 관객들의 불안감이 높아져 개인 관객들의 취소표도 이어지고 있다.
1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모차르트!’는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폐막일을 앞당겼다. 당초 23일까지 공연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30일 공연을 끝으로 조기 종료된다. M시어터에서 22일까지 예정됐던 서울시오페라단의 ‘세비야의 이발사’도 20일 폐막한다. 또 S시어터에서 10월 중순까지 진행하려 했던 뮤지컬 ‘머더 발라드’는 이달 31일까지 공연을 잠정 중단했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뮤지컬 대표 프로듀서 8인과 세종문화회관이 함께 추진했던 뮤지컬 갈라콘서트 ‘쇼 머스트 고 온!’도 잠정 연기됐다.
뿐만 아니라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23일까지 공연 예정이던 연극 ‘화전가’는 지난 17일 공연을 끝으로 폐막했다. 21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던 국립발레단 ‘허난설헌-수월경화’도 취소됐다.
하지만 민간 공연장과 제작사들은 객석 점유율이 70%가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데, 좌석 띄어 앉기를 적용할 경우 극장 전체 좌석의 절반도 판매할 수 없어 공연을 할수록 손실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객석 500석 이하의 소극장이 대부분인 대학로 극장들은 문을 닫아야 할 위기다. 더구나 지난 주말 확진자와의 2차 접촉으로 인한 공연 중단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현재 공연계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직간접 접촉자가 없음에도 예방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공연을 중단하고 있다. 뮤지컬 ‘광염소나타’는 지난 23일과 24일 공연을 취소했고, 뮤지컬 ‘빨래’와 ‘제이미’, 연극 ‘쉬어 매드니스’는 모두 30일까지 공연을 잠시 쉬어간다. 뮤지컬 ‘썸씽로튼’이 공연되고 있는 충무아트센터도 30일까지 문을 닫는다. 또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도 조기 종영을 결정했다.
28일 다시 막을 올리는 ‘킹키부츠’와 ‘어쩌면 해피엔딩’은 기존 예매분을 일괄 취소한 뒤 좌석 한 칸씩 띄어앉기를 적용해 재예매를 하기로 했다. ‘마리퀴리’도 새로 오픈한 티켓부터 거리두기를 적용해 예매를 진행하고 있고,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도 마지막 9일 간의 공연에 대해 객석 거리두기 지침을 따라 티켓을 재오픈했다.
‘오페라의 유령’ 제작사 에스앤코는 “코로나19 감염의 확산과 객석 거리두기 강화 지침을 이행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막대한 손실 예상으로 조기 종연이 불가피해 공연 중단을 결정했다”면서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확진자 발생, 확진자와의 2차 접촉으로 인한 공연 중단이라는 뼈아픈 상황을 겪고 있는 공연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발적으로 공연을 쉬어 가는 건, 정부가 이번 주를 코로나19 재확산의 고비로 보고 있는 만큼, n차 감염으로 인한 확진자 발생을 줄이자는 의도다.
하지만 공연계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산이 이어지고, 거리두기 3단계 격상까지 논의되면서 공연 관계자들을 무기력하게 했다.
한 관계자는 “지금도 최악의 상황이다. 공연이 중단되고, 조기폐막 사례도 늘고 있다. 지금처럼 거리두기 좌석제를 시행하면 막대한 손해가 따른다. 그럼에도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대를 포기하지 못하고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재 3단계 격상 이후 공연의 연기나 조기폐막에 대한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 사실상 ‘강제 셧다운’이나 다름없지만, 정부의 지침이 내려오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27일 신규 확진자 수는 441명으로 집계됐다. 신규 확진자 400명대는 대구·경북 중심으로 확산되던 2월 말 3월 초 이후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