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여운 깊은 영화가 제격
숀 펜-나오미 왓츠 열연도 좋지만
베니시오 델 토로의 순수 연기에 ‘흠뻑’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은 사람의 마음에 큰 지배력을 지닌다. 계절 역시 그러하다. 날씨만 바뀐 거라고 넘겨버릴 수 없게 봄이면 설레고 가을이면 생각이 깊어지는 구석이 분명 있다. 처음 맞는 가을도 아닌데, 어김없이 이번 가을에도 여운이 긴 영화들을 찾는 나를 발견한다. 여운은 어쩐지 가을과 어울린다.
그렇게 다시 본 게 ‘21그램’이다. 볼 때마다 새로운 질문이 주어지는 영화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건, 제목 ‘21그램’의 의미다. 물론 영화 마지막에 폴(숀 펜 분)의 독백에, 영화 내내 언급 한번 없었던 21그램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몇 번의 삶을 사는가? 우린 몇 번 죽는가? 우리는 모두 죽음의 순간에 21그램을 잃는다고들 한다, 누구나. 21그램은 얼만큼일까? 얼만큼을 잃는 걸까? 언제 21그램을 잃을까. 얼만큼이 그것과 함께 사라질까? 얼만큼이 얻어질까? 21그램, 5센트 동전 5개가 쌓인 무게, 벌새 한 마리의 무게, 초콜릿바의 무게. 21그램은 얼만큼의 무게일까?”
도교식 선문답도 아니고, 몇 번을 곱씹어 봐도 깊이 알지 못하겠다. 일단 이 독백은 온통 의문문이다,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단정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우리는 모두 죽는 순간에 예외 없이 21그램을 잃는다는 것과 21그램이 미국 5센트 동전 5개, 벌새 한 마리, 초콜릿바 하나의 무게와 맞먹는 아주 가벼운 무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는 순간 사라진 21그램은 무엇일까. 막연히 영혼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21그램이 우리 영혼의 무게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폴의 독백에 단정된 바는 없다.
굳이 관련 정보를 끌어오자면 미국 메세츠세츠 주의 의사 던칸 맥두걸이 1907년에 출판한 학술연구에 ‘21그램 실험’이 등장한다. 죽음의 고비를 앞둔 환자 6명의 질량 변화를 측정했는데 6명 중 1명이 사망 시점에 정학히 21.3그램을 잃었다. 던칸은 무게가 줄었다가 회복되거나 줄었다가 사망 전보다 더 많은 무게가 나간 나머지 다른 환자들의 결과는 장비의 눈금을 조정하는 중 사망했다 등의 이유를 대며 무시했다. 또 어느 개도 사망 시 무게를 잃지 않았다고 보고하며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보았고,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다는 증거라며 영혼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영화가 2004년 작인 걸 감안하면, 약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과거 비판받았던 실험결과를 인용한 셈인데. 그래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영혼’이라는 표현을 직접 적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누구나’라는 표현은 마음에 걸린다. 정말 누구나 죽는 순간 21그램을 잃는가? 21세기 더욱 발전된 장비로 21그램 실험을 다시 해보기라도 해야 할까? 해외 포스터를 보면 인물별로 ‘사랑의 무게’ ‘죄의 무게’ ‘복수의 무게’를 묻고 있다.
다시 폴의 독백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 처음엔 사람이 죽을 때 21그램이 줄어든다는 부분에 귀가 솔깃하지만, 다시 들으면 독백의 앞부분에 마음이 쏠린다. 우리는 몇 번의 삶을 사는가? 우린 몇 번 죽는가?
이 말을 읊조린 폴의 인생에 이 말을 대입해 보면, 폴은 두 번 살았다. 대학교수인 폴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심장이식 외에는 살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행운아다. 심장을 이식받고 두 번째 삶을 선물 받는다. 정말 선물이었을까. 남편의 죽음 앞에 마지막으로 남편의 정자를 이용해서라도 남편과의 아이를 가지려는 아내 메리(샤를로뜨 갱스부르 분). 이제 남편도 살았으니 부부에게는 행복만 남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임신을 둘러싼 서로의 속내를 확인하며 두 사람은 멀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폴은 자신에게 심장을 준 남자의 아내 크리스티나(나오미 왓츠 분)를 사랑하게 되지만, 크리스티나가 살인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최악의 선택을 감행한다. 두 번째 삶에서 맞이한 새로운 사랑, 기쁨도 잠시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병상에 누운 폴이 죽지 않기를, 다시 살기를 바라던 순간들에 원했던 삶일까.
폴에게 새 심장이 갈 수 있었던 건 한 남자가 교통사고로 죽음에 처해서다. 그 사고를 낸 장본인 잭(베니시오 델 토로 분)의 아내 메리(멜리사 레오 분)의 ‘삶은 계속되는 거야’라는 말 역시 ‘우리는 몇 번의 삶을 사는가? 우린 몇 번 죽는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처음 볼 때는 메리의 말이 단지, 남편 잭에게 “이제 그만 사고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나 가족을 돌봐라, 살아남은 자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다시 보니 잭에 국한된, 한 인간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영겁의 시간 속에서 계속되는 인간의 삶을 얘기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윤회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동물계 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포유강-영장목-인간과-인간속-인간종에 속하는 우리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내가 숨 쉬는 공기,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에 먼저 살다 간 누군가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인간 삶의 엄숙한 무게가 새롭다.
‘21그램’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크리스티나의 남편이 죽고, 그 죽음으로 폴이 다시 살고, 교통사고를 냄으로써 폴에게 역설적으로 새 삶을 준 잭은 바로 그 폴로부터, 크리스티나의 슬픔을 대리한 폴로부터 목숨을 위협을 당한다. 끔찍한 악연으로 얽혔던 세 사람 그리고 세 가족은 다행히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폴이 남긴 두 번째 삶에서의 선택 덕이다. 잭은 집으로 돌아가고 크리스티나는 생명을 잉태한다. 그렇게 인간은 지속할 것이다.
절대 가볍지 않지만, 절대 우울하지만도 않은 이야기, ‘21그램’. 볼 때마다 혼자일 수만은 없는 나의 삶, 서로 얽혀있는 우리의 삶, 그렇게 악연으로 선연으로 이어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안기는 영화일 수 있는 건 배우들의 열연 덕이 크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가 동시에 흘러가고, 서로 다른 가족의 이야기가 따로 흐르다 교통사고로 한데서 만나는 구조다 보니 처음엔 좀 당황할 수 있다. 숀 펜이 1인 2역을 하나, 아니 3역인가 추론도 해 보고. 잭이나 크리스티나의 도플갱어가 나오는 영화인가 엉뚱한 상상도 한다. 하지만 곧 상황 파악을 하게 되는데 배우들이 시간대별, 심리와 신체 상태별 차이를 섬세하게 연기했기에 ‘머릿속 정리’가 이루어진다. 시간 순서에 따라 편집되지 않은 덕분에, 동일인물이지만 다른 시간 다른 상황 속에서 표정과 몸짓이 달라지는 그 차이를 세밀하게 연기해낸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를 동시다발적으로 비교하며 만끽할 수 있다.
또 간단치 않은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를 배우들이 너무나 깊이 표현해 준 덕에 우리는 이들의 얽히고설킨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치 내 얘기인 양 체험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힘이 쪽 빠지고, 좀처럼 쉽게 이야기를 밖으로 밀어내 버릴 수 없는 이유다.
모두가 잘했지만, 칭찬의 소리가 유독 큰 배우가 있다. 베니시오 델 토로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숀 펜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역시 잘하고, 나오미 왓츠는 신체 조건만 좋은 게 아니라 깊은 감성을 리얼하게 연기하는 배우라는 걸 이번에도 확인시킨다. 강인한 아내상을 보여 준 멜리사 레오와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호연도 돋보인다. 베니시오 델 토로는 당시로부터 4년 전 영화 ‘트래픽’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자연기자상을 받았으나 꽃미남 외모 덕에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짧은 영어에도 할리우드에 데뷔한 배우, 브래드 피트의 뜨거운 열정 버전 외모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진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21그램’에서 베니시오 델 토로는 인간의 깊은 고뇌를 설득력 있게 연기, 실력파 배우로 거듭 각인된다. 기대 그 이상일 때 우리의 만족도는 배가 된다.
또, 베니시오 델 토로가 맡은 잭이라는 역할 덕도 있다. 과거의 잘못, 전과를 지우고 새 삶을 살아보려 문신을 가리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문신이 보기 불편하다는 고객 항의에 직장에서는 잘리고 하나님이 주셨다며 행복해하던 트럭으로 한 가족을 치고 만다. 부족한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발버둥 쳐도 자꾸만 원점으로 돌아가는 삶 앞에 좌절한 경험, 크기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많은 이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여기서 잭은 도망가지 않고 솔직하게 삶을 정면돌파한다. 자수와 수감, 그리고 출소 후 다시 시작된 참회의 삶. 하지만 이런 과정을 모르는 크리스티나와 폴은 그를 해하기 위해 주변을 맴돈다. 사적 복수를 응원하기보다 잭의 괴로움에 공명하는 우리가 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에 답하지 않아도 좋다. ‘체 게바라’로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기 이전, ‘신시티’ ‘시카리오’ 등 하드보일드액션 속이 아닌 베니시오 델 토로의 순수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을이 가기 전에 볼 만한 영화 ‘21그램’이다.